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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Sep 14. 2021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동료에게

얼마 전 회사 동료와 커피를 마셨다. 동료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를 낳고 나니 본인의 시간이 사라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운동도 하고 싶고, 책도 읽고 싶은데 도통 시간이 나질 않는단다. 퇴근하고 저녁에 아이와 놀아주다 보면 몸이 녹초가 된다고 했다. 잠든 아이 옆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잠시 만지작거리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나가는 게 서글프다 했다.


나도 첫째를 낳고 복직을 했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의 아침을 먹이고, 출근하고, 정신없이 일한 뒤, 퇴근해서 아이를 씻기고 나면 하루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아이가 잠들면 내 시간을 가져볼까 했지만, 아이는 늦은 밤까지 말똥말똥했다. 정말 더럽게도 잠이 없는 아이였다.


겨우 아이를 재웠지만, 내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잠자리에 들곤 했다. 혹은 잠을 깨운답시고 뭘 좀 먹어볼까 하며 냉장고를 뒤적였다. 냉동 치킨 한 봉지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자고 있던 남편도 깨어나 슬그머니 합세했다. 그렇게 배만 불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몸이 배로 피곤해졌다. 아이와 잠 씨름을 해서 피곤하고, 소화되지 않은 야식이 쌓여서 피곤했다.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에 앉아있으니 또 피곤해졌다. 악순환이었다. 계속 이러면 안 되겠다.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방법이었다.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새벽 요가를 등록했다. 눈을 겨우 비비고, 옷을 대충 챙겨 입고 요가를 하러 갔다. 요가실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부스스한 나와 달리 예쁜 요가복을 갖춰 입고, 깔끔한 모습으로 요가 매트 위에 앉아 계셨다. 한 동작 따라 하기가 버거운 나와 달리, 어떤 동작도 거침없이 해내는 분들이 부러웠다.


처음엔 새벽 5시 반에 눈을 뜨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시간이 유일한 내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번쩍 눈이 떠졌다. 그렇게 꾸준히 요가를 다니기 시작했다. 땀을 흘리고 나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걸어왔다. 몸이 가뿐했다. 회사에서도 덜 피곤했다. 저녁엔 일찍 잠을 청했다. 내일 새벽 요가를 가야 하니까.


쭉 이어질 것만 같았던 나의 새벽 요가는 둘째를 임신하면서 중단되었다. 한동안 임신과 출산, 아이 둘 육아를 하며 정신없이 보냈다. 복직하니 아이들뿐 아니라 회사도 나의 삶을 차지했다, 내 몸과 시간은 공공재가 되어버렸다. 이따금 예전의 새벽 요가가 그리웠지만 그럴만한 체력도, 시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간에 대한 갈망은, 내 시간이 더 심하게 부족해지면서 피어올랐다. 어쩌다 보니 직장 일과 더불어 대학원을 병행할 상황에 놓였다. 어떻게든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이미 저녁 시간을 만드는 데 실패한 경험이 있던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방법을 택했다. 일주일 2~3일의 새벽 기상 덕분에 시간을 확보하고, 무사히 개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나의 새벽 기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5시경 일어나 책도 읽고, 스트레칭도 하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쓴다. 두 시간의 새벽 시간은 촘촘하고 빠듯하다. 대신 저녁 시간은 무척 헐겁게 쓴다. 퇴근하면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소파 위에 널브러진다. 10시가 되기 전에 이부자리를 편다. 때로는 아이들보다도 내가 먼저 잠이 든다. 죄책감은 없다. 최소한 아침 두 시간은 나를 위해서 알차게 보냈으니까.


동료에게도 넌지시 일찍 일어나 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지금도 너무 피곤한데 무슨 소리냐고 손사래를 친다. 생각했던 반응이긴 했다. 지금 그 동료에게는 해결책보다는 위로가 필요해 보였다. ‘다들 그래,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아이가 좀 크면 낫지 않을까? (일이) 바쁜 시즌이 지나가면 좀 낫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됐다.


사실 새벽 기상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간을 채우는 방법이 서로 다른 것처럼, 시간을 쓰는 방법도 다를 수 있다. 뭐든 본인의 상황에 맞게 하면 된다. 그래도 그 동료가 다시 간절하게 시간을 꿈꾸는 날이면, 내 이야기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일단 한 번 해보는 거다. 며칠 해보고 그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렇지만 새벽 기상이 본인이 발견하지 못한 정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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