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떡 Mar 23. 2021

멀티가 안 돼서 생긴 습관들

나름 멀티가 잘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문제를 풀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컴퓨터 화면에 숫자를 확인하고, 한 번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다 과거형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새로운 습관들이 생겼다.



1. 외국 노래를 듣는다


운전하면서, 산책을 하면서 노래를 듣는다. 요즘 유행하는 한국 노래는 별로 없다. 뉴에이지, 일본 노래, 태국 노래가 대부분이다. 누군가 내 플레이리스트를 본다면 외국어를 엄청 잘하는 줄 알겠지만, 실상은 정 반대다. 그나마 아는 게 영어랑 중국어 몇 마디인데, 일어와 태국어는 전혀 모른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찮게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태국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노래가 괜찮았다. 그 가수의 노래를 찾고, 유사한 스타일의 추천곡을 듣다 보니 듣게 됐다. 일본 노래도 같은 연유로 듣게 됐다. 처음에 들을 땐 가사를 찾아본다. '음, 대충 이런 내용이구나' 정도만 파악하고 계속 반복해서 듣는다.


노래들이 괜찮은 게 가장 큰 이유기도 하지만, 내 생각엔 가사를 못 알아들으니 뭔가 할 때 듣는 음악으로 제격인 게 아닌가 싶다. 가사의 내용을 잘 알아들으면 자꾸 따라 부르거나, 내용에 신경을 쓴다. 그런데 그런 행위를 할 수 없으니 그냥 잔잔한 배경음악처럼 함께 하는 느낌이다.



2. 죄송한데, 잠시만요


회사에서 전화를 받고 있으면 급한 일이라며 메신저가 함께 깜빡일 때가 있다. 누군가 이것 좀 봐달라며 문서를 내밀고는 '그런데요, ' 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외쳐줘야 한다. "죄송한데, 잠시만요."


누군가의 말을 가로막는다는 게, 상대방에게는 민망할 수도 있겠다 싶어 동시에 해보려고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그럴수록 '뭐라고 하셨었죠?' 하며 더 실례되는 질문을 내놓기 마련이었다. 어쩔 수 없이 멋쩍게 웃으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STOP 사인을 던진다. 내 우려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이해해 준다.(.. 고 생각해 본다.)


이 표현을 자주 쓰게 되다 보니, 약간의 텀만 생겨도 무의식적으로 이 표현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커피 메뉴를 고민하면서, 관련 자료를 안내하면서, 질문을 받았을 때 등등. 나와 친한 한 동료는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넌 뭐가 그렇게 자주 미안한 거니?'. 나는 'Excuse me' 같은 느낌으로 쓴다고 생각했는데 듣는 사람은 내가 무척이나 간절하고 슬픈 사람 같단다.



3. 일단 적고 본다


일을 함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높은 일을 먼저 하라고 한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도, 그걸 순서대로 하는 일도 쉽지가 않다. 차라리 내가 해야 할 일이 한 번에 주어지면 순위를 정해서 할 텐데, 대부분의 일들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A를 하고 있으면 B가 주어지고, 또 그 사이에 C, D가 주어진다. 분명 A가 급하다고 했는데, 하다 보니 C가 더 급하단다. 누군가는 B는 간단한 일이니까 그것부터 해 주면 안 되냐고도 한다.


멀티가 됐던 시절엔 나름 괜찮았다. A를 하면서 C를 하다가, B를 잠시 병행해서 하고, C, A, D를 마저 끝내면 됐다. 하지만 멀티가 힘든 요즘은 정신이 없다. A를 했다가 중단하고, C를 했다가 중단하고, D를 했다가 중단한다. 일단 B를 하기로 하자. B를 끝내고 나면? '뭐부터 해야 하는 거지?' 헤매기 시작한다.


그래서 해결방안으로 고안한 것이 메모다. 내 회사 수첩은 메모들로 빼곡하다. 회사 수첩이 나름 두꺼운 편인데, 일 년에 두어 권 정도 쓴다. 예전에는 회사 수첩 1권을 다 써본 적이 없다. 내 생각엔 아이를 낳고 기억력의 감퇴와 멀티 능력이 급속도로 떨어진 것 같다. 그렇게 뭔가를 기억하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하기 위해 메모를 한다. 물론 이 방법도 절대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뭘 적었더라? 어디다 적었더라? 왜 적은 거지?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



얼마 전에 큰 실수를 하고 자책을 하고 있었더니 누군가 와서 '한꺼번에 너무 일이 많이 생겼잖아요'라고 위로를 해 주었다. 그래요, 그래도 전엔 괜찮았는데... 이제는 정말 인정할 때다. 나는 멀티가 안 된다. 근래에도 신경 쓰는 일이 있어서 다른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더 슬픈 사실이 있다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도 잘 못한다는 것일 테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료가 퇴사하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