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에게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 있다. 저녁 8시경, 남편이 아이들 목욕을 시킬 때 30여분씩 밖에 나가서 걷고 온다. (이번 주는 비가 많이 와서 못 가고 있다ㅠㅠ) 걷는 코스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1~2분밖에 안 걸리는 곳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와 옆 단지에 산책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있다. 이 동네에 산지 1년 반이 넘었지만, 이 곳을 저녁 산책코스로 지정한 것은 한 달 정도 밖에 안 됐다. 그전까지는 이 곳이 그냥 동네 슈퍼를 가기 위해 지나가던 길이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던 날, 간식을 사러 슈퍼라도 갔다 올까 하며 집을 나섰다. 그런데 슈퍼를 가는 이 길목에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뜨문뜨문 보였다. 언제부터 나 몰래(?) 사람들이 걷고 있었지? 그 날부터 시간이 되면 30여분씩 걷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일이 많은 날, 너무 피곤한 날, 아이들이 떼쓰는 날 등 못 걷는 날도 있었지만 거의 주 3회는 꼬박꼬박 걸었던 것 같다. 처음엔 약간의 운동을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몸보단 마음이 즐거운 시간이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오늘 뭐했더라 되짚어보고, 내일 할 일을 생각해본다. 10년 뒤 내 모습도 그려보고 때로는 로또가 되는 한 방을 꿈꿔보기도 한다. 생각의 공은 동쪽으로 갔다가 남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갔다가... 한참을 요리조리 굴러다닌다. 멍하게 있는 시간도 필요했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도 필요했고, 나를 위한 시간도 필요했다. 30여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은 나의 이런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물론 이 시간이 만능키는 아니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작은 활력과 휴식을 주는 시간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걷고 돌아오면 아이들은 오랜만에 나를 만난다는 듯 "엄마~~~!!!" 하며 달려 나온다. 깨끗이 씻고 로션 냄새 폴폴 풍기며 나에게 폭 안기는 아이들을 보면서 "엄마 땀났어. 저리 가" 하면서도 기분 좋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장마가 지나고 조만간 행복한 시간을 누리러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