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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Jul 23. 2021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

약은 약사에게, 사람은 사람에게

내가 8살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했다. 엄마는 그곳에서 동네 친구를 사귀었다. 한 아주머니가 우리 딸이랑 동갑이라며 유독 반가워했다. 아주머니 옆에는 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눈이 컸고 머리카락이 유독 까맸다. 그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 우리 친구 할래?"      


그 아이는 잘 웃고 싹싹했다. 자기주장도 분명했다. 어른들은 그 아이를 칭찬했다. 어쩜 그리 야무지냐고. 소심한 나와 달리, 매사에 적극적인 그 아이가 멋있어 보였다.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다. 그래서 친구 하자는 말이, 함께 놀자는 말이 너무 반가웠다. 만약 그때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나는 절대 그 아이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는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겉으로는 그렇게 좋은 친구일 수가 없었다. 나에게 다정하고 친한 친구처럼 굴었다. 그 아이의 괴롭힘은 마치 잡초와도 같았다. 눈에 확 띄진 않았지만, 촘촘하고 빼곡했다. 그리고 질겼다. 그 괴롭힘은 무려 5년 넘게 지속됐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같이 미술교실을 다녔다. 하루는 내가 새 크레파스를 들고 갔다. 무려 금색과 은색이 들어있는 36색의 크레파스였다. 다들 우와, 감탄을 내뱉고 있는데 그 아이의 표정이 뭔가 묘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다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런데, 내 크레파스들이 다 또각또각 반으로 부러져 있었다.     


"어쩌지? 내가 모르고 떨어뜨렸어. 정말 미안해."     


그 아이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처음 갖고 온 건데. 아빠에게 졸라 선물로 받은 건데.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 아이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실수로 그랬다는데, 용서해주자.’ 아이들이 다 나를 쳐다보았다. 눈물을 겨우 참고, 그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어쩔 수 없지. 괜찮아.’     


실은 괜찮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보았다. 그 아이가 내 크레파스를 부러뜨리고 있는 모습을. 다른 친구들을 시켜 함께 부러뜨리자고 말하는 모습을.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서웠다. 부러진 크레파스로 도화지를 색칠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그 애는 왜 그랬을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 아이가 나를 괴롭힐수록, 나는 그 아이에게 잘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그 아이가 잘못했어. 나는 그 아이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놀이터, 학원, 친구 등 그 아이와의 연결고리는 전부 다 끊어냈다. 내 주변엔 새로운 친구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자꾸 부러진 크레파스가 떠올랐다. 그건 그 아이 혼자 부러뜨린 게 아니었다. 사람은 함부로 믿으면 안 되었다. 친구들과 ‘우리 우정 포레버(forever)!’를 외치면서도 마음으로는 견고하게 벽을 쌓았다.     



*


시간이 흘러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처음 만나는 친구와 짝이 되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둥그런 안경을 쓰고 있었다. 차분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말수가 많았다. 그 친구는 대뜸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거슬렸다. 예전의 그 아이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 친구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안녕! 등교해서 자리에 앉으면 그 친구의 목소리가 제일 먼저 들려왔다.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그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펜 새로 샀어? 나도 있는데. 그 펜 좋지?’ 응. 내가 단답형으로 대답해도, 그 친구는 꿋꿋하게 서술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나에게 편지도 자주 써줬다. 편지 끝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넣어 'OOO 부인'을 빠짐없이 써놓았다. 그리고 덧붙였다. “답장 쓸 땐 받는 사람에 꼭 이렇게 써줘. 알았지?”     


어느 날은 그 친구가 눈이 퉁퉁 부어서 왔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신경이 쓰였다. 이유를 물었더니 전날 밤에 슬픈 글을 읽어서 그랬단다. 그런 일은 계속 일어났다. 어제는 슬픈 책을 읽었어. 어제는 드라마를 봤거든. 그리고 나에게 벅찬 감정을 공유해 주고 싶어 했다. 너도 볼래? 제목이 이건데, 진짜 슬퍼. 그리고 남자 주인공이 너무 멋있어….     


하루는 선생님께 크게 혼났다. 친구는 열변을 토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참을 수가 없다고. 나중엔 분노에 차올라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사실 혼난 건 그 친구가 아니라 나였다. ‘어휴 좀 참아. 나 정말 괜찮다니까?’ 그 친구를 말리느라 나의 억울함 마저 잊어버렸다. 황당해서 웃음이 났다.      


그 친구가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종종 그 친구를 타박했다. 그만 좀 말하면 안 돼? 너 정말 철없다. 그러면 그 친구는 나에게 눈을 한 번 흘기고는 입을 다문다. 그리고 오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야기를 한다. 여리고 감성적인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본인이 나쁜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씩 웃고 말았다. 그런 모습이 어른스럽기보다 어린아이 같았다.      


점차 그 친구에게 막았던 귀를 열고, 그 친구에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깔깔 웃었다. ‘이건 비밀인데’, ‘이건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하면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나중에 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왜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냐고. 친구가 대답했다. “넌 좋은 사람이니까.”     



*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이 어렵다. 특히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면 한없이 조심스러워진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언젠가 나를 공격하지는 않을까, 하며 나의 안위를 우려한다. 반대로 상대방을 걱정하기도 한다. 내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는 건 아닐까, 나 때문에 괴로워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누군가와 나 사이에 조심스럽게 선을 긋는다.     


그러다가 가끔 그 선을 지워버리는 사람이 생긴다.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나는 곧 그 사람에게 내 모습을 편하게 내보인다. 시답지 않은 개그도 하고, 푼수 같은 모습도 보인다. 옆에서 끊임없이 조잘거리기도 하고, 상대방의 일이 내 일인 것처럼 오지랖도 부려본다. 그 사람은 말한다. “와, 네가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어. 그래도 지금 모습이 더 좋은 것 같아.”     


사람 때문에 괴롭고 힘들었다. 사람은 다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로 인해 그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 덕분에 행복하다. 사람에 대한 나쁜 기억은,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덮어졌다. 나도 중학교 때의 그 친구처럼,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해주고 싶다. 그래서 세상엔 아직 믿을만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말해줄 것이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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