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 이렇게 손이 차요?”
나에게 악수를 건넨 상대방이 화들짝 놀란다. 내 손은 여름엔 땀으로 축축하고, 겨울엔 찬물에 담갔던 것처럼 차가워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친한 친구들과도 손잡기를 꺼린다. 그런데 요즘처럼 누군가의 손을, 여러 명의 손을 잡은 적이 있나 싶다. 최근의 나는 세 명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산다.
그중 내 손을 잡는 가장 빈도가 적은 사람은 남편이다. 결혼 전에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연애할 때의 남편, 당시 내 남자 친구는 내 손이 축축하든, 차갑든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손을 잡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그의 손을 꾹 잡았다. 아직도 그와 손을 잡지만 반응은 전과 사뭇 다르다. 남편이 슬그머니 손을 잡아 오면 좋으면서도 괜히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왜? 왜 그러는데?”
손잡기의 빈도가 가장 많은 사람은 둘째 아이다. 둘째는 항상 내 손을 있는 힘껏 잡는다. 특히 처음 가는 장소에서, 저만치서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보면, 그 강도는 더욱 세진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도 내 손이 아프지는 않다. 뼈마디도 가늘고 조그마한 손이 내 손에 잡히면 배시시 웃음이 먼저 나온다. 이 손을 놓고 싶지 않다.
요즘 둘째는 엄마보다 아빠에게 푹 빠져있다. 내 손을 잡고 있다가도 아빠가 보이면 아빠 손으로 냉큼 갈아탄다. 아쉬운 마음에 둘째를 불러본다. 비어있는 내 손을 휙휙 흔들고 울상까지 지으면서. 그러면 둘째가 선심 쓴다는 표정으로 아빠 손을 잡지 않은 반대 손을 내밀어온다. 뭔가 독차지할 수 없음에 아쉽지만, 그 손을 거둘까 봐 얼른 둘째의 손을 잡는다.
비어있는 내 반대 손은 첫째 아이가 잡고 있다. 첫째와는 전보다 손잡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첫째의 손 잡기는 누구보다 풍성한 의도가 담겨있다. 첫째와 손을 잡을 때마다 그 의도는 아이의 손에서 내 손을 타고 전해진다.
잠시 출근 시간이 조정되어서 일주일간 남편 대신 내가 첫째의 등교를 맡게 되었다. 첫째가 웃으며 내 손을 잡는다. 잡은 손을 붕붕 흔들어댄다.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등교해서 한껏 신이 나 있다. 걷다 보니 점점 학교가 가까워진다. 문득 첫째가 슬그머니 내 손을 놓는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요 녀석, 혼자 등교하는 친구들을 마주하니 엄마와 함께 등교하는 자기의 모습이 부끄러운 모양이군.
“뭐야? 왜 엄마 손 놔?”
“아, 그냥….”
“흥. 엄마 섭섭해. 민이가 엄마 손도 막 뿌리치고.”
나는 이유를 알면서도 괜히 첫째에게 토라진 듯 말을 한다. 이렇게 휙 뿌리쳤다고, 과장된 손짓까지 덧붙인다. 첫째는 약간 당황해하다가 다시 내 손을 잡는다. 이번의 손잡기는 나에 대한 미안함과 엄마를 달래고자 하는 귀여운 마음이 담겨있다.
종종 첫째는 자면서도 내 손을 잡는다. 손을 잡고는 손가락과 손등을 연결하는 뼈마디를 꾹꾹 눌러댄다. 이게 은근 신경이 쓰인다. 잘못 누르면 아플 때도 있다. 솔솔 불어오는 잠에 취해 있는데 첫째의 손 꾹꾹이를 받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난다.
“그만하면 안 돼? 엄마 불편해. 좀 자자.”
첫째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놓는다. 나는 아이의 손을 놓고 스마트폰을 찾는다. 문득 사야 할 물건이 생각났기에. 잠시 하려던 온라인 쇼핑은 뉴스 검색으로, SNS 확인까지 이어진다. 어느새 첫째가 잠이 들고, 나는 잠이 깬다. 잠이 든 첫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이가 잠이 오지 않아서, 엄마 옆에 누워서 좋아서 그런 행동임을 알면서도 왜 짜증을 냈다 싶다. 결국, 이렇게 스마트폰만 할 거였으면서 말이지.
동그랗게 오므린 첫째의 손을 잡아본다. 둘째만큼이나 조그마했던 손이 언제 이렇게 커졌나 싶다. 언젠가는 내 손보다도 더 커져서, 남편 손만큼이나 커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첫째의 이만한 손은 지금, 이 순간뿐이겠구나.
다시 한번 첫째의 손을 꼭 잡는다. 이번엔 나도 첫째만큼이나 많은 의도를 담아서. 짜증 내서 미안한 마음과, 이렇게 잘 크고 있어서 기특하다는 마음과, 언제 이렇게 커버렸냐는 아쉬운 마음을 담아본다. 오늘 밤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꿈에서라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