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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Jul 27. 2021

나는 네가 무섭다

아이 방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을 주섬주섬 주워 담다가 멈칫했다. 저게 뭐지?


“아아아아악!!!”


나는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과 남편이 그 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뛰어왔다. 괜찮아? 무슨 일이야? 엄마 왜 그래요? 다들 걱정과 흥분, 궁금함이 담겨 있는 물음을 건넸다. 가족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가슴속 방망이질 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떨린 목소리로 손가락을 들어 대답했다.


“저... 저거 좀 어떻게 해봐.”


내가 가리킨 곳에는 엄지손톱 길이의 길쭉한 벌레 한 마리가 놓여있었다. 순간 벌레가 다시 움직였다. 나는 다시 한번 비명을 내질렀다. 으악! 저거 움직이잖아! 빨리, 빨리 잡으라고! 흥분한 나와 달리 남편은 한없이 침착하다. 그는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돌돌 말은 뒤 벌레에게 다가갔다. 나는 차마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눈을 꾹 감아버렸다.


그렇다. 나는 벌레를 정말 무서워한다. 특히 집 안에서 마주하는 벌레는 종류 불문 다 무섭다. 바깥에서 만나는 벌레는 내가 피하면 그만이지만, 집에서 만나는 벌레는 그럴 수 없으니까. 벌레와 한 공간에서 공존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내쫓든지 죽이든지.


벌레를 마주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다. 벌레의 모습을 눈에 담을수록, 그 두려움은 배가 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공포감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아주 큰 소리로, 외침으로.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벌레들도 화들짝 놀라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여러 종류의 벌레들을 만나지만, 이름을 기억하는 벌레는 없다. 인터넷에 생김새만 간단하게 입력해도 벌레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찾고 싶지 않다. 알고 싶지 않다. 사진으로 다시 보는 것조차 두렵다. 또한, 김춘수의 시 '꽃'처럼,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릴 것 같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아무개'처럼, 그 벌레도 다시 마주하지 않을 '벌레'로만 남겨두고 싶다.


*


예전에 회사 동료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혼자 집에 사는 데 커다란 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동료 또한 벌레가 너무 무서워 잡기조차 두려웠단다. 그래서 부리나케 빈 컵을 들어 컵 안에 벌레를 가뒀다. 가두긴 가뒀는데, 이러면 어떻게 죽이지? 동료는 굶겨 죽이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간 벌레와 동침을 하니 마음이 불편하더란다. 결국, 벌레 잡는 약과 파리채로 무장을 하고 컵 뚜껑을 확 열었다.


“그런데 그 안에, 벌레가 없었어.”     


악!!! 나는 그 이야기를 듣던 카페 안에서 전력으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내 비명에 주변 사람들이 들썩였다. 그리곤 우리 쪽으로 날카로운 눈길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고개를 연거푸 숙였다. 사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황이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그 벌레는 어디 간 거야? 글쎄,라고 대답하는 동료의 얼굴에서 또 한 번 공포감을 느꼈다.     


나 또한 혼자서 살 때 벌레를 마주한 적이 있다. 옆에 누군가가 없으니 무조건 내가 처리해야 했다. 나의 무기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소프트커버의 가벼운 책을 좋아하는데, 그때만큼은 양장판의 묵직한 책이 나의 든든한 아군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벌레 위로 가장 두껍고 묵직한 책을 내 던졌다. 간혹 벌레를 죽인 책 표지에는 영광의 흔적이 남았다. 그 책을 보면 벌레를 잡던 그 순간이 생각났다. 그래서 임금이 충신을 내치듯, 그 책을 구석진 곳에 꽂아두었다.



*


내가 부엌으로 피신해서 과거의 벌레를 추억하는 동안, 남편은 벌레를 처리했다고 한다. 잡아서 어떻게 했어? 쓰레기통에 버렸어? 변기에 흘려보냈어?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의 걱정은 그치지 않는다.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그러면 쓰레기통에서 다시 나오면 어떡해?


“걱정하지 마. 완전 꾹 눌러서 죽인 다음에 확인까지 해서 버렸으니까.”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남편에게 수고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사실 결혼하고 나서 종종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뭐든 내 마음대로 했던 자유가 그리웠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남편이 옆에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남편도 벌레가 무서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 꾹 참으며 잡아주는 건 아닐까? 훈훈한 대답을 떠올리며 남편에게 묻는다.


“당신은 벌레 안 무서워?”

“음, 난 당신이 소리 지르는 게 더 무서워.”


그렇게 우리에겐 무서운 존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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