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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Aug 03. 2021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한동안 J를 만나지 못했다. J는 대학 때 만난 친한 후배다. 졸업 후에도 우리의 인연은 계속됐다. 지역도 다르고, 회사 때문에 바빠도 삼 개월에 한 번 정도는 만났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서로 조심하다 보니 얼굴을 못 본 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가는 듯하다.


대면으로 만나지 못하면 온라인으로라도 보자! 토요일 저녁 6시에 줌(Zoom)으로 만나기로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며칠 전부터 뭘 먹을지 고민했다. 이미 내 결정은 치킨이었다. 다만 ‘굽네 고추바사삭’을 먹을 것인지, ‘교촌 허니콤보’를 먹을지가 고민이었다.


남편에게는 전날부터 말해두었다. J를 만나니까 아이들 좀 봐주라. 남편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에 저녁은 내가 챙겨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도 잘 먹을 수 있는 달콤한 치킨이 낫겠네. 교촌 허니콤보와 순살치킨, 감자튀김까지 야무지게 주문했다.


저녁 6시. 설레는 맘으로 치킨을 받았다. 치킨과 치킨 무, 소스, 음료수를 노트북 앞에 정갈하게 세팅했다. J가 조금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치킨을 픽업하러 가는 길이란다. 괜찮다고, 천천히 오라고 했다. 마음은 괜찮은데 내 배는 괜찮지 않은 모양이었다. 눈앞에 치킨을 보니 갑자기 꼬르륵 소리가 났다.


드디어 J와 줌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온라인이라 좀 어색했지만, 어색함은 아주 잠깐이었다. 서로 저녁 메뉴가 뭔지 공개했다. J는 매콤한 자코바 치킨을 사 왔다. 우리의 이야기는 치킨을 만나게 된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부터 시작한다.


“늦어서 미안해요. 치킨집을 찾느라 한참 애를 먹었지 뭐예요. 분명 그 사람이 거기로 가라고 했는데 치킨집이 안 보이고. 게다가 날이 쨍쨍한데 왜 비는 쏟아져서….”


각자 근황을 이야기했다. 사실 문자로, 전화로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들었던 내용에 살이 붙으니 새로운 이야기 같다. ‘정말?’, ‘와,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서로 감탄사를 만발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분명 별일 없다, 잘 지내고 있다고 했었는데. 듣다 보니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별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는 근황을 지나 속에 담아둔 마음으로 발전했다. 남몰래 꼭꼭 숨겨두었던 꿈,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 답이 없는 고민. ‘이걸 누구한테 말할 수 있겠어?’ 싶었던 이야기들이 J만 보면 쏟아진다. J도 나와 비슷한 마음인 듯하다. ‘언니니까 솔직히 말하는 건데요’ 하면서 말문이 열리곤 했다.


J는 자신이 가진 꿈이 허무맹랑한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J의 꿈은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이었다. 친한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J의 능력과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J 성격에 좀 더 준비해야 마음이 편할 테지. 시간이 지나면 그 꿈에, 최소한 그 꿈에 언저리에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내가 내년에 그리는 내 모습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J는 남편 다음으로 이 이야기를 하는 두 번째 사람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J에게 좀 더 솔직하게 말하게 된다. 남편과 말할 때는 가족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J는 가족보다 나를 중심으로 말해준다. J는 객관적이면서도 참 주관적이다. 상황은 객관적으로 보는데, 내 마음은 주관적으로 읽는다. 나는 그게 너무 고맙다.


이야기하다 시계를 봤다. 세상에. 시계는 저녁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장장 5시간을 끊임없이 떠든 셈이다. 중간에 지루할 틈이 없어서 시계를 볼 틈도 없었다. 화장실 한 번을 안 갔다. 서로 시간을 확인하고는 빵 터졌다. 우리 진짜 대단하다. 어쩜 이렇게 오랫동안 쉬지 않고 말할 수가 있지?


‘잘 지내자, 잘하고 있다, 잘 될 거다’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줌을 껐다. 거실에 나오니 남편이 아직 안 자고 있다. 남편도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하는 말이 ‘대단하다’다. 푸스스 웃음이 나온다. 그래, 나 대단한 사람이야.


후딱 씻고 누웠다.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피곤함은 없고 기운이 넘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고 온 느낌이다. 이렇게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다니. 개운한 솔직하고 깊은 생각을 들을 수 있다니. 이런 인연이 있음에, J가 있음에 감사하다.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또 만나도 우리는 몇 시간 거뜬하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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