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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19. 2017

[베트남/하노이]D5_비포 테이크 어 버스 (상)

하노이에서 만난 그녀와 보낸 첫날 오전

3월 11일 금요일


호치민 중심부의 숙소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잠들면 보통 이른 아침부터 빵빵 울려대는 경적소리가 알람보다 빠르고 크게 울리곤 했었다. 지난밤에 창문을 열고 잠에 들었으나 경적소리보단 약간 스산한 기운과 침대 머리맡을 오가는 여행객들의 분주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 늦잠 자다가 천천히 체크아웃하고 싶은데... 이따가 야간 버스 타기 전까지 할 것도 없고 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하니 나도 늦잠 자긴 그른 듯하다. 대충 씻고 나가서 반미나 하나 먹으면서 시간을 때워야겠다. 후다닥 씻고 나와서 배낭을 정리하고 놀러 나갈 짐과 넣어둘 짐을 구분하고 있었는데,


한 동양 여자가 내 앞을 지나 샤워실로 가면서 인사를 건넸다.


“Hello~”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되게 애매하게 생겼다.

살짝 예쁜 듯? ㅎㅎㅎ


암튼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있는데 동양 여자가 다시 내 앞을 지나가면서 눈인사를 건넨다. 그러곤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침부터 설레게 하고선...


‘혹시 또 알아? 내려가서 만나면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는 마음에 배낭을 짊어지고 리셉션으로 내려왔다.

있다.

로비에 앉아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체크아웃을 하고 배낭을 맡기고 있는데 그 동양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Are you Chinese?”

“No, I’m not Chinese. I’m Korean.”


약간 엊그제 만났던 한국 청년의 상황이 오버랩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한국인이다 싶으면 한국말로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는데, 일본이나 중국인들은 영어로 먼저 물어본다. 그리고 중국인이냐고 물어보는 걸 보면 이 동양 여자는 중국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영어를 썩 잘하지 못한다. 간단한 의사소통? 문법은 꽝? 그냥 길 찾아가고 숙소 체크인하고 밥 시켜먹는 정도? 


그렇게 때문에 보통의 외국인들(영어를 잘하는)은 나랑 대화를 그리 길게 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내가 외국어 대화들을 자연스럽지 않고 직역식으로 풀어놓는 이유도 실제로 영어 등 외국어로 대화할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랄까? 같은 ‘Are you Chinese?’ 도 나에겐 ‘당신은 중국인입니까?’라고 들리고 해석이 된다.


아무튼, 이 동양 여자는, 아니 중국인은 나와 끈질기게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많이 심심하고 혼자 여행하기 외로운가? 아니면 그냥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나? 뭐 나쁘지 않다.


중국 상하이 인근 대도시에 산다는 그녀는 육로를 통해 어젯밤 하노이로 넘어왔고, 오늘 밤 훼로 간다고 한다.

훼는 하노이에서 호이안에 가는 길에 있는 도시이다. 


‘오 잘하면 같이 갈 수도?’


라고 생각했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같은 티켓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훼-다낭-호이안-달랏-무이네-호치민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는데 호치민에서 out 하는 날짜가 나랑 동일하다.


더 놀라운 것은, 하노이 첫날에도 살짝 언급했었는데 하노이에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신 투어리스트의 짝퉁 여행사가 어마 무시하게 많다. 정말 헷갈린다. 근데 그 많은 여행사들 중에 나랑 같은 티켓을 들고 있었다. 둘이 같은 짝퉁 여행사에서 구매한 것인지 제대로 신 투어리스트에서 구매한 것인지는 오늘 밤에 버스를 타봐야 알 것 같다.

그냥 여담이지만, 짝퉁 여행사라고 막 사기를 당했다거나 이상한 행선지로 가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같은 목적지로 데려다 주기는 하는데, 여행사가 다르다 보니 각 스팟의 터미널의 위치가 다르고 덜 유명한 여행사를 통해 여행하다 보면 한국의 네이버 블로그에 정보가 없거나 그럴 수는 있는데 도시들이 엄청 크지 않아서 길 헤맬 염려도 없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버스 기사님들이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타보면 안다) 목적지에는 잘 데려다준다.


이래저래 할 것도 없었던 두 청춘이 하노이를 걷기 시작했다.


“나 하노이 대성당에 가고 싶어. 가봤어?”


라고 그녀가 물어왔다.


“아니, 나도 아직 안 가봤어. 같이 가보자.”

하노이 대성당

호스텔을 나와 성당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이름도 나이도 묻지 않고 약간의 어색함만을 가진채 하노이 대성당에 도착하였다. 호치민의 노트르담 성당과 비교하면 살짝 기대에 못 미치는 규모와 외관이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 현지인들에게 물어봤는데 이곳이 맞다고 한다.


1858년 프랑스가 만든 이 성당은 성요셉 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호치민의 노트르담 성당과 비교하면 둘 다 프랑스의 원조 노트르담 성당을 모티브로 만든 것을 비슷한데, 아무래도 호치민의 노트르담 성당의 외관 때문에 호치민이 조금 더 화려한 듯하다. 호치민의 노트르담 성당은 외관이 붉은 벽돌로 쌓아져 있으며 이 벽돌 하나하나가 전부 프랑스에서 공수되었다고 한다.


한 가지 덧붙여서, 베트남을 여행 다니다 보면 사실 도시들의 랜드마크 가성당인 경우가 많고 시골을 가더라도 중심부에는 절보다는 성당이 더 많이 볼 수 있다. 보통의 동남아시아가 그렇듯이 베트남 역시 불교를 일찌감치 받아들인 국가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위아래로 긴 지리적 영향으로 북부 베트남은 중국의 대승불교를 남부 베트남은 인도에서부터 시작되어 캄보디아를 경유하여 넘어온 소승불교를 받아들였고, 이는 동남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물게 대소승 불교를 모두 받아들인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불교가 무럭무럭 성장을 했지만 프랑스 식민시절을 기점으로 불교가 탄압되고 가톨릭 성당들이 절 자리에 세워지고 승려들을 주축으로 독립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는 호치민이 베트남을 장악하게 되는데, 보통의 공산정권에서는 종교를 탄압하고 억제한다. 그러나 호치민은 모든 종교를 허용했다. 호치민 정권 초창기에는 물론 종교행사를 할 수 없었으나 현재는 종교 탄압이 없다. 그래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요일 교회, 성당, 절에 가면 각각의 예배를 드리고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성당 앞에 도착한 우리는 뭐 늘 그렇듯 셀카를 찍으며 인증샷 남기기 놀이를 했다. 오 이 여자 고프로 유저이다. 심지어 나는 3+인데 3을 사용한다. 나름 신문물도 사용할 줄 아는 타짜 여행자의 냄새가 살짝 났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아침 먹을래?”

“그래, 뭐 먹고 싶어?”

“음, 아무거나? 하하”

“나는 베트남 음식 다 잘 먹어서 아무거나 상관없으니 골라봐~”

“그럼 지금부터 앞으로 가다가 세 번째로 나오는 식당에서 먹는 거 어때?”


어라? 뭐지?

상큼한데?!

그렇게 우리는 정말로 앞으로 가다가 세 번째로 나오는 식당에 들어갔다. 간판도 없는 그냥 옹기종기 앉아서 쌀국수를 먹는 로컬 쌀국수 집이었다.


“포 보 모까이”


내가 능숙하게 소고기 쌀국수를 베트남어로 주문하자 자신도 베트남어로 주문해보겠다며 가방에서 수첩을 꺼낸다.

뭐라 뭐라 말하는데 나는 못 알아듣겠다. 그래도 현지인 아주머니께서는 천천히 경청하시더니 용케 알아들으시고 성조도 친절히 알려주신다.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올 때 옆좌석에 베트남 여자애가 앉아있었어. 그래서 간단한 회화 몇 가지를 배워왔는데 정말로 된다! 재미있어!”


나는 나름 베트남 출장을 몇 번 와봤다고 간단한 주문정도야 가능하지만 발음에서 성조를 생각해보고 말 한적은 사실 없다. 그런데 성조에 능숙한 중국인이 베트남어를 발음하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귀엽기도 하다. 발음 표기를 영어로 해놓아서 약간 영어스러운 발음이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아침을 먹고 호안끼엠 호수를 산책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호치민보다는 거리에 차량과 오토바이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심가라 그런지 교통량이 없지는 않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섰다. 우리 옆에는 서양 노부부도 계셨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가 아닌데 우리 넷 중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움직였다.

베트남의 도로에 딱 서면 일단 건너기가 두려울 수 있지만 사실 의외로 간단하다. 딱 세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첫째, 운전자들과 아이컨텍할 것.

둘째, 뛰거나 멈추지 말 것.

셋째, 뒷걸음질 치지 말 것.


운전자들과 아이컨택을 하면서 일정한 속도로 지나가면 수많은 오토바이들과 차들이 알아서 멈추고 피해 간다. 


참 쉽죠?


내가 선두로 나서니 중국 여인과 서양 노부부가 종종종 날 따라온다.

호안끼엠 호수는 15세기의 왕이 호수의 거북이에게 받은 검으로 명나라를 물리치고 다시 검을 가지고 호수로 갔더니 거북이가 다시 검을 물고 물속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이 있다. 호안끼엠의 뜻 자체가 한자로 하면 ‘환검’ 즉, 검을 돌려주었다 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호수 한편에 응옥손 이라는 섬이 있는데 그 안에는 원나라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웠던 성인들을 기리는 옥산 사당이 있고, 본전 옆에는 실제 호안끼엠 호수에서 잡혔다는 큰 거북의 박제가 있는데 입장료를 받아서 난 들어가지 않았다. 


산책을 하고 내 사랑 카페 쑤다를 한 잔 하기 위해 길거리의 카페로 들어갔다. 목욕탕 의자 같은 낮은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자신이 한글을 읽을 수 있다며 한글을 보여 달라고 한다. 휴대폰을 꺼내 이것저것 보여주다가 내친김에 한글을 가르쳐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여행을 오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내 방 서랍 속에 있던 잠자던 갤럭시 노트2를 가지고 와서 유심을 끼워 사용 중이었는데, 실제로 노트2를 사용할 때도 잘 사용하지 않던 펜으로 메모하는 기능을 이 날 제대로 사용해 본 듯하다. 


마치 내가 한글을 처음 배울 때처럼, 한글의 자음과 모음에 대해 알려주었다. 


발음을 알려주는데 곧잘 따라 한다. 유치원 때를 생각하며 노트2에 깍두기공책처럼 네모 박스에 점선을 그어놓고 음절을 설명해주었다. 이것도 이해를 한다.


된소리도 알려주었다. 발음에서 구별을 해낸다.

학생이 훌륭하니 가르치는 재미도 솔솔 했다. 


이것도 이해를 할까 싶어서 

‘안양’과 같이 두 번째 음절이 이응으로 시작하는데 첫음절에 받침이 있으면 그 받침을 첫음절에서 발음하지 않고 두 번째 이응을 대신하여 ‘아냥’이라고 발음한다고 설명을 해주었는데 이것도 이해한다.

언어에 대한 인지 능력이 상당하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세종대왕님께서 만든 한글의 위대함이 생각났다. 불과 두시간여만에 제법 한글을 읽는 능력이 상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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