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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19. 2017

[베트남/사파]D4_안개비 속 사파 내려오기

사파에서 다시 하노이로

3월 10일 목요일


원래 아침식사는 잘 하지 않는다.

여행을 다닐 땐 아침부터 급하게 놀러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느긋하게 늦잠을 잤다.


고사파 호스텔은 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각 침대마다 커튼과 전기 콘센트가 있는 꽤 훌륭한 숙소이다. 게다가 (나는 창문이 있는 방) 창문 커튼을 열면 사파의 전경까지 바로 코앞에 보이는 가성비 최고의 숙소이다.

창문 아래에는 학교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일어나 보니 우연찮게 내 옆 침대에서 자고 있던 스위스 출신의 오토바이 여행 중인 청년이 이미 체크아웃을 했는지 안 보인다.


전날 속옷만 입고 열심히 샤워실을 오가던 유럽 처자 두 명은 간밤에 무얼 하고 노셨는지 침대에 커튼이 쳐져있다.


어제부터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던 내 위층의 청년도 언제 일어났는지 보이지 않는다.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테라스로 나왔더니 어제 만난 한국 청년이 다음 여행 계획을 위해 웹서치를 하고 있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청년과 함께 또다시 리틀 베트남 식당을 찾았다.


오늘은 파인애플 새우 볶음밥. 


아, 이 집 진짜 맛있다.

삼시세끼를 이 집에서만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사파를 온다면 이 집에 제일 먼저 올 것이다.

노스페이스 백팩과 바람막이

점심을 먹고 어제 구입한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입고 어제 그 가게에 다시 들어갔다. 주인이 알아보는지 씨익 하며 웃어 반긴다.


오늘의 위시리시트는 백팩. 


짐을 넣고 다니는 큰 배낭만 들고 왔다니 여행을 다닐 때 지갑이나 고프로 등을 넣고 다닐 작은 백팩이 필요했다. 호치민을 여행 및 출장으로 오갈 때 도대체 이 더운 나라에 노스페이스는 왜 이렇게 많은가 하고 항상 의문을 품어왔었는데, 사파에 오고 나니 참 적절한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간지대이다 보니 (아무래도 짝퉁이겠지만) 노스페이스가 엄청 많다. 


고프로 폴대까지 들어갈만한 사이즈의 백팩을 오늘도 흥정을 통해 7불에 구입했다.


넘나좋은것!

카페 쑤다에서 사파 한 잔
카페 인 더 클라우드에서 바라 본 안개 낀 사파

쇼핑을 맞혔는데도 버스 시간까지는 아직 좀 시간이 남았다.

청년과 함께 카페 인 더 클라우드까지 슬슬 걸어가서 카페 쑤다를 한 잔 마시고 어제보다 자욱한 안개를 배경 삼아 사진도 몇 컷 남기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서로의 여행과 안전, 안개처럼 자욱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이지만 안개가 걷히면 곧 나올 저 사파의 절경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앞날을 기약하며 서로의 이름조차 묻지 않고 지냈던 이틀간의 시간을 뒤로하고 하노이 행 사파 익스프레스 우등버스에 몸을 실으러 갔다.

아침보다 안개가 더 심해져 창문 아래 집들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여전히 저 자리를 지키며 수공예품을 팔고 계시겠지?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해보니, 사파행 버스에서 만났던 미국 아저씨가 왜 나보고 2박밖에 하지 않느냐며 물어봤던 그 말이 생각이 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좋은 곳.

바다, 강, 휘향 찬란한 리조트 하나 없어도 좋은 곳.

그곳이 바로 사파였나 보다.


해발 1,700여 미터쯤 되는 사파를 떠나 버스는 꼬불 길을 따라 안개를 헤집고 달린다.


사파를 오가는 교통편을 검색하다 보면 심심찮게 멀미약을 준비하라는 글들이 보이곤 했었는데, 나야 뭐 멀미를 하지 않기에 준비하지 않았다. 지난 라오스 여행 때,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영국 처자 둘이 심하게 멀미를 했었는데 오늘도 영국 아주머니가 멀미를 하신다.


영국 사람들은 멀미를 잘하는가 보다.


버스기사님은 이 서양 아주머니가 멀미를 하든말든, 익숙한 일인 양 절대 차를 세우지 않는다. 덕분에 (방금 식사하셨으면 죄송합니다) 버스 안은 멀미 냄새로 가득 찼고, 같이 멀미할 뻔했으나 겨우겨우 꾹꾹 참아냈다.


버스는 약속된 휴게소에 정확히 정차했다.

소시지, 바나나 튀긴 것, 그리고 오래 간만에 그린 망고를 샀다. 옐로 망고와 다르게 덜 익은듯한 그린 망고를 소금에 찍어먹으면 시큼 짭조름 한 것이 꽤 맛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소금을 주지 않는다.


“소금 좀 주겠니?”


라는 나의 요구에 씨익 웃더니 소금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준다.


“깜언”


다시 버스는 달렸고, 해가 저물 때쯤 하노이에 다시 도착했다. 호치민 처럼 클랙슨 소리가 도시를 점령하고 수많은 호객꾼들과 어마 무시한 양의 오토바이들은 없지만, 어둠이 깔리는 하노이는 나름의 매력이 있는 도시 같다.


미리 예약한 블루 스카이 호텔 2를 찾아갔다.


호치민에서는 택시를 자주 애용하는데, 하노이에서는 단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거꾸로 말하면 도심이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아고다 앱을 통해 예약한 바우처를 리셉션에 보여주고 약간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나의 도미토리로 갔다.


침대와 락커, 샤워실을 안내받고 아저씨께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봤다.

정확하게 영어로 나에게 답했다.


“I love you”

“What?”


아저씨는 다시 나에게 속삭였다.


“I love you”


얘 뭐래? 하는 표정으로 내가 쳐다봤더니 내 휴대폰을 가져간다.

그리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또박또박 입력했다.


ILOVEYOU


분명히 이용후기가 좋아서 선택한 숙소였는데, 순간 오해할 뻔...

험상궂은 외모에서 알러뷰를 속삭이다니, 오해할 뻔했잖아요.


간단히 샤워를 하고 아까 먹다만 바나나 튀김을 먹으며 침대에서 내일부터 시작될 여정을 검색하고 있는데, 어제 사파에서도 속옷만 입고 방을 활보하던 자유로운 영혼들이 있었는데 이곳에도 계신다.


살짝살짝 문화충격을 느끼며 시선을 휴대폰에 집중했다. 옆 방에 한국인으로 100% 확신되는 청년 둘이 있었지만 오늘은 말을 섞고 싶지 않다. 제법 날이 쌀쌀한데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들 잔다.


얼른 하노이를 떠나 따뜻한 지역으로 이동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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