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선 트래킹 후 오토바이
시계를 봤다. 아직 아침 8시 20분.
근처 카페로 들어가서 망고 쉐이크를 하나 시켜놓고 한참 웹서핑을 했는데 시계는 겨우 오전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지루해서 안 되겠어서 배낭을 메고 '고사파호스텔'로 향했다. 역시나 몽족 아주머니들은 나에게 호객행위를 하지 않으신다.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구글 지도를 보며 어렵지 않게 찾아갔다. 다만 지도에는 표시 안된 계단이 포함된 오르막길이었다는 사실.
리셉션은 오전 관광을 나가는 여행객들과 오토바이 렌트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 그리고 나 같이 체크인을 원하는 사람들로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안녕? 나 예약했어, 체크인 할 수 있을까?”
“안녕! 우리는 12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해, 대신 가방은 맡아줄 수 있어.”
그렇게 나의 얼리 체크인은 실패로 돌아갔고, 가방을 보관대에 올려놓고 조용히 숙소를 둘러봤다. 가격 대비 정말 훌륭하고 깔끔하다. 침대마다 개인 커튼도 있다. 혼자 스윽 둘러보곤 사파의 전경이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있는데 한 청년이 말을 걸어온다.
“혹시 한국사람 이세요?”
항상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면 한국말로 꼭 물어본다. 긴가민가하면 영어로 할 법도 한데 꼭 한국말로 물어본다.
홀로 배낭여행 중이라는 청년은 엊그제 라오스에서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이곳 사파로 왔다고 한다. 남자 둘이 뭐 길게 할 이야기는 없었고 단지 한국 사람이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며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한다. 약속을 잡고 리셉션으로 나와서 오토바이를 렌트했다.
100,000동에 오토메틱인데 매뉴얼도 가격이 같다. 매뉴얼이 더 저렴하면 매뉴얼을 빌릴까 했는데 같은 가격이길래 편하게 오토메틱을 선택했다. 주유 표시등에 불이 들어온 상태에서 4리터를 넣으면 게이지가 풀이된다. 4리터의 기름값은 역시 100,000동. 한국돈 1만 원에 오늘 하루 나의 발이 되어줄 녀석의 세팅을 끝냈다.
자, 그럼 한 번 달려볼까?
사파를 블로그에서 검색하면 누구나 다 간다는 깟깟 마을을 가봐야겠다.
호스텔을 나와 왕복 2차선이 될까 말까 한 좁은 길에 양방향을 오가는 차들과 무심하게 주차되어 있는 차들,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얽혀있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그리고 각종 동물과 보행자까지 어마 무시하게 몰려있다. 그러나 사고는 일절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베트남이다.
다운타운을 살짝 벗어나 내리막길을 조금 달렸는데 ‘사파’를 검색어로 블로그와 인스타에 검색하면 곧잘 나오는 '카페 인 더 클라우드'를 발견했다. 당 충전이나 할 겸 시원한 콜라를 한 잔 마시러 들어갔다. 사파의 절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출출해졌다. 옆 테이블에서 서양인들이 쌀국수를 먹고 있었다. 결국 나도 볶음밥을 주문하고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배가 고파지니 배경을 감상하기보다는 (사실 보다 보면 그게 그거이기도 하다) 자꾸 시선이 주방으로 간다.
수시로 오가는 손님들 사이에서 엄마와 딸로 예상되는 두 여인이 주문을 받고 메뉴를 만들고 서빙을 하고 계산을 하며 테이블을 정리하는 패턴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그 옆 한쪽에 아저씨 한분이 누워서 주무신다.
이방인이 현지 문화를 평가하기는 그렇지만 조금 아쉽고 씁쓸한 풍경이다. 베트남을 여행하며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오늘따라 씁쓸하다. 베트남 출장을 오가며 혹은 여행을 다니다 보면 대낮에 아저씨들은 그늘에 누워서 낮잠을 즐기거나 장기 같은 놀이를 하는 풍경을 곧잘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열심히 일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여성들이 있곤 했었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주방, 쉴 새 없이 주문하며 계산하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는 카운터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며 주무시는 아저씨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종이 박스 한쪽을 찢어서 적어두고 물어보면 말 대신 종이 박스를 내밀고, 계산을 할 때는 말보다는 계산기를 먼저 내밀던 아주머니에게서 어머니의 위대함을 생각하다 보니 급 엄마 생각이 났다.
사진 몇 장을 전송하고 잘 있다고 카톡을 보냈다.
엄마에게서 답장이 왔다.
“시골 마을이니? 뭐 하는 건데? 암튼 보람된 여행 되길 바란다 ^^”
보내는 사진이라곤 계단식 논두렁과 산과 푸르른 수풀밖에 없었으니 엄마 말이 정답이다.
밥을 먹고 엄마와 카톡을 하고 멍하니 저 멀리 보이는 판시판 산을 감상하고 있는데 테라스 꽃 화분에서 놀던 벌 한 마리가 기어코 내 콜라캔 속으로 입수를 하셨다. 캔 속을 보니 콜라 위에서 소금쟁이처럼 유영을 하고 계셨다.
“벌 좀 들어가면 어때? 이것도 자연이고 여행인데”
라고 생각을 하고 빨대를 통해 콜라를 한입 마셨다.
OMG…
친구를 불렀나? 한 마리가 더 입수하셨다.
콜라의 잔량은 1/3 정도. 빨대로 잘 못 마셨다가는 톡 쏘는 맛의 콜라를 경험할 것 같아서 콜라를 포기했다.
“그래, 너네나 배 터지게 마셔라. 이빨 다 썩어라”
이런 내 모습이 웃기는지 옆 테이블의 잘생긴 서양 청년이 말을 건넨다.
“괜찮아? 하하 너 꽤 재미난 경험을 했구나”
“그래, 벌 두 마리... 귀여운 나의 애완동물들이지 하하”
“굿, 훌륭해 하하. 어느 나라에서 왔어?”
“나는 한국에서 왔어, 너는?”
“나는 스위스”
“오 그렇구나, 아까 보니깐 고프로를 헬멧에 장착하고 산악용 오토바이를 타고 오던데, 어디서 오는 길이야?”
“라오스에서 지금 막 넘어왔어”
“오 멋지다. 혹시 나 지금 영상 좀 보여줄 수 있어?”
육로 여행을 계획하면서 대중교통만 생각하고 버스를 택했는데, 이 친구뿐만 아니라 여행을 다니다 보니 소형 오토바이를 일일 대여해서 타는 것이 아니라 중고 산악용 오토바이를 구매해서 여행을 다니는 오토바이 배낭 여행족들도 속속들이 보이곤 했었다. 그리고 라오스에서 국경을 넘어 이곳까지 왔다고 하니 그 풍경들이 궁금해졌다.
고프로를 휴대폰에 연결하고 영상을 보여주는데,
음, 산속 도로를 계속 달린다.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도 안 해준다. 5분째 산속을 달리고 있다.
“대단하다. 잘 봤어!”
하고 인사를 건네고 다시 깟깟 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을 입구가 뭔가 어수선하다. 썩 당기지 않는다. 결코 입장료를 받아서가 아니다. 솔직히 어제 다녀온 라오챠이가 훨씬 더 내 상상 속의 사파와 더 닮아 보였다.
‘그래, 다운타운과 가까운이 마을은 개방의 물결 속에 상업화되었다던데 가지 말자’
하고 사랑 폭포로 오토바이를 돌렸다.
일단 호스텔로 다시 가야겠다.
햇살이 뜨거운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 몇 시간을 더 오토바이를 탔다간 살이 다 타버릴 것 같았다. 흐린 날 더 탄다고 누가 그랬던가.
암튼 호스텔에 들어와서 얼굴, 목, 팔까지 선크림을 다시 바르고 손수건을 마스크 삼아 얼굴이 두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구글 지도를 한 번 훑어보고 이쪽이다 싶은 방향으로 굽이 굽이 정처 없이 달렸다. 간간히 외국 여행객들이 타고 달리는 오토바이들이 보인다. 이 길로 달리다 보면 뭔가 나오긴 하나 보다.
좁은 길들을 지나니 제법 큰 도로가 나온다. 큰 차들이 클랙슨을 울리며 무섭게 지나간다. 그 많던 다랭이 논도 보이지가 않는다.
“재미없어”
그래, 난 논두렁 보러 왔지 폭포 보러 사파에 온 것이 아니니깐!
그렇게 난 방향을 돌렸고, 사파 중심지 서북쪽에 위치한 사랑 폭포와 깟깟 마을을 포기하고 남쪽에 위치한, 어제 2시간 동안 걸어서 갔던 라오챠이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어제와 달리 오토바이가 있으니 조금 더 깊이 갈 수가 있다.
중간중간 가까이에서 보려고 내려갔다 올라왔다를 반복하며 이동했다.
마을 깊은 곳으로,
논 가까운 곳으로.
좋다.
이 자연이.
한가로이 소몰이를 하는 소년들 옆에서 셀카도 찍고, 나무 그늘에 앉아 사색에 빠져있는 외국인 여행객 옆자리에 앉아도 보고.
이 여유가 너무나 좋다.
어제 일몰 사진을 찍었던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5시 언저리였다.
그 말인즉슨 오후 5시 이후에는 급속히 어두워진다는 것.
4시 반까지만 놀고 이후에는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괜히 야간에 오토바이 운전했다가 사고를 당하면 낭패기에 적당히 안전을 고려해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다 똑같은 논이라지만 제각기 매력들이 있다.
한 번은 정말 좁은 곳을 내려가다가 물 웅덩이 근처에서 고프로를 떨어트렸다. 논과 집과 소들이 어우러져 있는 기가 막힌 포인트를 찾아 한참을 내려갔는데 나의 고프로가 보이지가 않았다. 황급히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길 초입 물 웅덩이 근처에 아주 잘 떨어져 있었다.
아직 여행 초반이다. 구경하고 노는 것도 좋지만, 내 물건 챙기는 것도 잘 신경 써야겠다.
어제 1박을 했던 홈스테이 집을 지나 더 멀리까지 슝슝 달려가서 실컷 구경하고 촬영하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기름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서 조금 돌아서 왔는데 호스텔에 와서 보니 팔이며 목이며 완전히 다 익었다. 얼굴은 그래도 흙먼지를 피할 겸 손수건을 둘렀더니 조금 나은데 팔이 조금 쓰라린다. 날이 서늘하고 흐리긴 했지만 역시 고지대는 고지대인가 보다.
오토바이를 반납하고 오전에 만났던 청년과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오늘 저녁 메뉴는 분짜.
나름 검색을 하고 ‘리틀 베트남’이라는 곳을 찾아 나섰다.
한참을 걸어서 기어코 찾아냈다.
분짜의 맛을 아시는 분이라면 이 집은 진짜 꼭 가보시길 권한다.
위치는 다운타운에서 Sapa stunning view hotel 가는 길에 있는데 Sapa stunning view hotel 거의 가기 직전에 있으니 멀리멀리 쭉쭉 가야 한다.
보통의 분짜는 쌀국수 면에 차가운 육수 국물, 그리고 바비큐 불고기, 그리고 각종 고수와 채소를 같이 주는데, 여기는 특이하게 국물이 따뜻하다.
정말 맛있다. 내가 먹어본 분짜 중에 최고인 듯하다.
아 물론, 이곳 날씨가 쌀쌀하니깐 따뜻한 국물이 어울리는 것 일수도 있다.
저녁을 먹으러 나올 때 반팔만 입고 나왔는데 날이 제법 쌀쌀해졌다.
긴팔이라곤 서울에서 입고 온 야구점퍼 한 벌밖에 없다. 어차피 이 점퍼는 버리려고 마음먹고 가져온 것이고, 남부지방에 가면 입을 일이 없다. 가벼운 놈으로 한 벌 장만해야겠다.
사실 하노이에서부터 눈 독 들여놨던 노스페이스 바람막이가 하나 있는데 가격이나 물어봐야겠다.
오, 하노이에서 25불 불렀는데 여기서는 20불 부른다.
바로 가격 흥정에 들어갔다.
“300,000동”
“안 팔아”
“330,000동”
“350,000동”
결국 350,000동에 샀다. 한국동 17,500원!
개이득
청년과 호스텔로 돌아와 콜라를 한 캔씩 사들고 옥탑 라운지에 앉았다.
휴학생인데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갔다가 현재 정처 없이 여행 중이라고 한다. 나도 같은 여행자의 신분이지만 참 부러웠다. 나는 저 나이 때 왜 이런 걸 모르고 바로 현실이라는 세상에 뛰어들었는가,
학자금과 장남으로써의 무게.
어쨌든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이 모든 빚을 다 갚았고, 늦게나마 내 삶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이 나름 기특했다.
아, 그런데 이렇게 놀다가 장가는 언제 가지? ㅋㅋㅋ
청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 주변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오고 있었다.
독일 뮌헨 출신의 청년이 구시렁 거린다.
“무슨 놈의 동네가 밤에 술을 안 팔아?”
술에 관심도 없던 터라 영문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숙소에서는 일절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설령 밖에서 사서 들어왔더라도 공식적으로 보이는 곳에서는 마시면 안 되는 것 같았다.
독일 청년과 콜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데 캐나다 청년 둘이 다가왔다.
“친구들, 같이 앉아도 될까?”
알고 보니 이 캐나다 청년 둘은 부산에서 영어 강사를 하다가 계약기간이 끝나서 한 달간의 동남아 여행 중이라고 한다.
나보다 부산 사투리를 더 잘한다. 부산 갈매기 노래도 완곡으로 부를 줄 안다.
유쾌한 청년들이다.
남자 다섯이 모여서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포츠 이야기로 흘러갔는데, 재밌는 것은 뮌헨 청년은 축구가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스포츠라며 자신을 미식축구가 가장 재미있다고 한다. 이 말을 듣던 캐나다 청년이 어떻게 축구를 싫어할 수 있냐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의 한국인 박지성을 모르냐고 독일 청년에게 물어본다.
두 명의 한국 청년인 대체 이놈들이 무슨 말은 하는 건지 신기하게 쳐다만 봤다.
축구 불모지라 불리는 북미 출신의 두 명이 한국인 축구선수에 열광하고 축구 강국 독일 청년은 북미의 미식축구 광팬인이 장면에서 승자는 박지성의 나라에서 온 두 한국인이었다.
부산 사직구장의 야구 이야기를 하는데, 역시 강민호 선수의 응원가 인기는 국적 불문하고 최고인 듯하다. 캐나다 사람 두 명이 어찌나 맛깔나게 부르시는지 ㅋㅋ
한창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옆에 놓여있는 손으로 하는 축구게임을 시작했는데, 생전 처음 하다 보니 영 어려웠다. 캐나다 친구들이랑 독일 친구의 승부욕에 이런 것 잘 안 해본 나랑 한국 청년만 중간에서 눈치 보느라 힘들었다. 우리가 구멍이다 보니 엄청 눈치 보였다. 그래도 그냥 열심히 했다.
뭣이 중한디? 이런 것도 인연이고 이런 것이 여행 아니겠는가?
즐거웠어 친구들,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