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족의 출근길
3월 9일 수요일
집 떠나온 지 겨우 3일 차, 만 48시간쯤 되었을까?
벌써 나는 요일과 날짜를 잊고 여행에 몰입하고 있었다. 다만, 몸은 아직도 출근시간에 반응하여 눈이 떠진다는 사실...
게다가 오늘은 마당에서 개들이 으르렁 거리며 싸우는 소리가 귓가에 참 거슬린다. 뒤엉켜 있는 개들을 나무 작대기로 훈계하는 홈스테이 집 막내아들 옆을 지나 뜨거운 물이 24시간 끓이지 않는 샤워실로 직행했다.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는데 홈스테이 집 10살짜리 딸내미가 머리카락에 무언가를 바르고 있다. 일회용 샴푸 팩 같은 것에서 모발 영양제 같은 것을 바르고 있는 것 같다.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관리하고 싶은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 같다 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이 산골 오지에도 이런 문명이 들어오고 이 홈스테이 집은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 이길래 이 아이가 이런 것을 바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주인아주머니께서 밥 먹으라고 부르신다.
아침은 또 저녁과 다르게 계란 프라이, 바나나, 베트남 커피를 주셨다. 맛있게 먹고 슬슬 정리하고 시계를 봤는데 아침 8시다. 그렇다 아직 8시다. 늦장을 부리다가 늦은 체크아웃을 하고 싶었지만(빨리 나가봐야 다른 숙소 체크인이 힘듦) 얼른 나가라는 눈치다.
짐 정리를 끝내고 배낭을 메고 마당으로 나왔다. 방명록에 프랑스 아저씨랑 나란히 글도 남겼다.
아주머니는 어느새 출근복장인 전통의상을 입고 계셨고, 아저씨는 오토바이에 앉아서 헬멧을 쓰고 계셨다.
“오늘은 우리 둘 다 사파에 가야 하니깐 타고 갈래?”
이럴 때는 베트남어로 답을 드려야 예의다.
"신캄언!"
아주머니는 해맑은 대답하는 나를 보시고 손에 들고 있던 헬멧을 나에게 건네주셨다. 그리고 아저씨-나-아줌마 순으로 작은 오토바이에 셋이 올라탔다.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따라 오토바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든 생각인데 내가 안개라고 말했던 것이 사실 구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이랄까?
아침부터 사파로 향하는 오토바이와 차량,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여행객들로 산길 도로가 붐볐다. 그리고 오토바이는 단 15분 만에 사파에 도착했다. 세상에 2시간 정도 걸었던 길인데... 문명이 좋긴 좋구나
이윽고 오토바이는 사파 시내에 도착했다. 오늘 뭐할 건지 물어보셔서 깟깟 마을이나 폭포를 생각하고 있다니깐 오토바이 투어를 하고 싶으면 아저씨가 싸게 해주신다고 고새 또 흥정을 하신다. 장사 참 잘하시는 듯.
이제 계산을 해야 한다.
사실 25불을 쉽게 생각하면 500,000동이다. 근데 하노이에서는 정확한 환율을 계산하여 몇만 동을 더 요구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홈스테이, 내가 생각한 공정여행이라면, 그리고 내가 만족했다면 그에 합당한 금액을 지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파는 아직 사람들이 순수해서 25불짜리를 내밀면 500,000동이 이 곳의 시세이지만, 나는 감사의 마음을 살짝 담아서 550,000동을 드렸다. 큰돈은 아니지만 더 큰돈을 드리면 이 곳의 물가가 오르는 데에 기여하는 것 같아서 조금 더 드렸다.
“오 고마워, 근데 너는 가족이 몇 명이니?”
“저 4명이요, 왜요?”
“이 팔찌 5개 줄 테니깐 가족들 주고 너 하고 여자 친구도 주렴.”
“하하 괜찮아요 이렇게 많이 필요 없어요.”
라고 말하고 제일 마음에 드는 색의 팔찌 하나만 집어 들었다. 그랬더니 또 고맙다고 하시면서 직접 채워주신다. 그리고 나는 이 팔찌를 여행이 끝나고 (사랑니 발치) 수술을 하기 전까지 내 왼팔에서 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