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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19. 2017

[베트남/사파]D2_몽족 홈스테이 탐구생활

소수민족 들여다보기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집은 생각보다 좋았다. 직업상 베트남의 시골에 벽돌 살 돈이 없어서 나뭇잎으로만 지은 집부터 기둥에 폐천막만 둘러놓은 집, 물가에 별도의 정화시설이 없는 밑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화장실을 나무로 지어놓은 집까지 열악한 집들을 참 많이 봤었고, 그런 집에서 하룻밤 지내는 것을 상상하고 왔기에 지은 지 몇 년 안된 말끔한 이 집에 새삼 놀랐다.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면 거실, 우측에 부엌, 좌측과 복층 2층에 침실이 있다. 

마당을 거쳐 집 내부 중앙 문으로 들어가면 좌측에는 주인집 가족이 자는 침실이 있고 가운데는 티비가 있는 응접실, 우측에는 부엌이 있다. 이 세 공간은 별도의 문 없이 사람과 강아지와 닭들이 공존하는 형태로 부엌에서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지피면 장작 타는 냄새가 응접실과 침실까지 모두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름 홈스테이를 염두하고 지은 것인지 복층 형태의 2층 공간이 있는데 싱글 매트리스와 개별 모기장이 쳐진 도미토리도 갖추고 있다. 화장실은 내가 베트남 건축 봉사를 다니면서 지어주었던 집의 화장실보다 깔끔하고 넓었으며, 화장실과 샤워실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었다. 동남아와 인도 등을 여행 다니면 흔히 볼 수 있는 변기 옆 물총(수동 비데)의 용도를 몰라도 물총으로 샤워할 일은 없는 형태였다. 심지어 물만 틀면 뜨거운 물이 펄펄 나왔다. 가끔은 샤워를 할 때마다 온수보일러를 수동으로 켜주고 뜨거운 물을 사용해야 하는 숙소도 있는데 여긴 전부 자동이다.

집 뒤편에서 바라본 모습

집 구경을 끝내고 집 앞 그늘에 앉아서 집 앞 풍경을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오후이다.

부엌에서 막내 딸이 첫째 딸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

해는 어느덧 판시판 산 줄기를 넘어가고 있고 홈스테이 집 꼬맹이들은 저마다의 놀이를 즐기고 주인아주머니와 큰딸은 저녁을 준비하며 손님맞이를 준비하고 있다. 

인도차이나반도 최고봉 판시판 산의 일몰

띄엄띄엄 보이는 집들의 굴뚝에서도 저녁을 준비하는 연기가 한창이다. 포근한 공기와 이따금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여행자인 나에게는 너무나 아름답고 기대했던 그런 풍경이지만,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어제와 비슷했던 그리고 내일 또 펼쳐질 익숙한 하루일 것이다. 나에게는 새롭고 신비롭고 너무나 정겨운 그런 모습이지만 이들에겐 그저 평범한 하루 중의 하루일 것이다. 


이러한 모습과 이렇게 생각을 하고 먼 산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내가 꿈에 그리던 사파와 사파에서의 홈스테이가 아닐까 싶었다.


혼자 이런 사색에 점점 심취 해갈 즈음, 초록눈의 서양 아저씨가 오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오길래 정체가 뭘까 하고 궁금했었는데, 나보다 하루 먼저 온 프랑스인이라고 소개를 했다. 어제 홈스테이를 시작해서 2박을 이 집에서 하는 중이고, 오늘은 주인아저씨에게 오토바이를 렌트해서 라오차이 깊은 곳을 구석구석 보고 오셨다고 한다.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시는데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어서 나갈 수는 없지만, 내일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로 일한다는 프랑스 아저씨가 어제는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등 유럽 젊은이들이 많이 있어서 복잡했는데 오늘은 다 떠나고 본인 혼자 남았다고 알려주셨다.


이 집 장사 잘되는 집인가 보다 ㅋㅋㅋㅋ


프랑스 아저씨가 사진 자랑을 마치고 샤워를 하러 가셨다.

홈스테이 집에 큰 개 두 마리랑 새끼 강아지들 서너 마리가 있는데 오후 내내 나를 신경도 안 쓰던 이놈들이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하더니 제일 큰 놈이 다가와 장난을 치며 자꾸 물려고 했다. 큰 진돗개 만한 개가 장난을 치는데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물어야 얼마나 아프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봉사 프로그램 담당자로써 해외에서 개나 고양이 함부로 만지지 말고 물리면 약도 없다고 가르치던 버릇이 있던 터라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었다.

와이파이는 닥터 스트레인지만 네팔 산자락에서 쓰는것이 아니다

개를 피해 집 안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데이터가 터져서 지인들과 안부인사를 나누고 오늘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하더니 집 안 제일 가운데에 무언가를 설치한다.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는데, 세상에나 저것은 공유기가 아닌가?

와이파이 공유기를 설치하는데 다 끝나고 나니 주인아저씨가 나한테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접속해 보라고 한다.


현지 유심으로 사용하는 3G보다 빠른 와이파이다 ㅋㅋ

심지어 유튜브가 끊김 없이 재생이 된다. 오후 내내 나에게 관심도 안주던 아이들이 신기한 듯 내 주위로 몰려왔다.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를 찾아서 영상을 틀어주자 아예 내 양 무릎에 자리를 잡으셨다. 뽀로로는 베트남에서도 통하는가 보다 ㅋㅋ

주인 아저씨가 주셨던 차. 녹차 였던것 같다
레알 오리지날 현지식 한끼 식사

뽀로로를 보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부엌으로 부르신다. 그리고 거실에는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하신다. 


사실 블로그나 인터넷 등에서 저녁때 BBQ 파티 등을 한다는 이야기를 조금 봤던 터라, 저녁 식사를 살짝 기대했었는데 오리지널 전통 현지인들의 일반적인 저녁 식사이다. 


된장국 비슷한 국에는 두부와 버섯, 약간의 돼지고기와 채소들이 들어있다.

동남아의 흔한 모닝글로리는 볶음이 아니고 뭐랄까 데침? 열무김치처럼 국물에 담겨있다. 브로콜리 볶음과 데친 버섯, 볶은 돼지고기가 반찬으로 나왔다. 


동남아 음식을 좋아하고 입에 맞는다고 스스로 생각해왔었는데, 솔직히 먹기 조금 힘든 반찬도 있다. 가방에서 고추장을 꺼낼까 생각도 몇 번 했었다. 그래도 그건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일단 입에 맞는 반찬 위주로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주인아저씨께서 반찬을 이것저것 나랑 프랑스 아저씨 밥 위에 올려주신다. 


먹어야 했다.


음식이라는 게 시각, 미각 그리고 청각과도 상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생각과도 그 맛이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음식 역해”라고 스스로 결정을 내버리면 그 음식은 역한 음식이 된다. 하지만, “음먹을만 한데?” 혹은 “어차피 사람이 먹는 음식인데 다르면 얼마나 달라?”라고 생각을 하면 곧장 먹을만한 음식이 되는 것 같다.


보통의 한국인들이 힘들어하는 ‘고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첫 고수를 먹을 때 사실 살기 위해 먹었다.


13년도 여름에 베트남 첫 출장 때, 함께 동행했던 두 명의 한국인들과 이미 현지에 파견 나와 있던 인턴 한 명 모두가 고수를 즐겨 먹었었는데, 인턴 학생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간사님 고수 많이 드셔야 해요. 이거 먹어 버릇해야 모기도 덜 물리고 더위도 안 먹고 여러모로 좋아요. 처음엔 좀 역할수 있는데 먹다 보면 고수 마 다맛도 다르고 우리가 김치 먹는 것처럼 이들이 고수 먹는 거니깐 결코 못 먹을 음식은 아니에요.”


그래, 다 먹는데 왜 나만 못 먹어?

이건 샴푸 맛, 이건 비누 맛, 이건 주방 세제맛, 오 이건 레몬맛!

그렇게 난 고수를 먹기 시작했고, 살기 위해 그리고 현지에 적응하기 위해 현지 음식들을 거부감 없이 먹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동남아시아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일몰은 언제 어디서 봐도 참 멋스럽다

식사 종료와 함께 주인아주머니가 프랑스 아저씨한테 수공예품을 팔기 시작했다. 딱히 사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조용히 마당으로 나왔다.


와이파이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젊은이들 몇몇이 모여서 유튜브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화면은 분명 한국 드라마인데, 더빙은 베트남어로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예전에 명절에 더빙된 외국 드라마나 영화들 참 많이 보여줬었는데 요새는 다 자막으로 대신하는 것 같다. 


베트남 티비를 틀어보면 종종 한국 드라마들이 더빙되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베트남어가 전혀 들리지 않기에 화면을 보더라도 사실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한류가 이곳 베트남 산골짜기까지 들어와 있는 것을 보면 새삼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요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노란색 백열등 아래 서너 집 사람들이 모여 앉아 휴대폰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모습.

예전 우리네 아버지 세대가 이장님 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티브이를 보던 모습을 외국인이 봤으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십여 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는 하루하루 일기를 일기장에 적고 있었는데, 오늘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오늘 있었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10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여행을 하고 있을까?


불빛조차 드문 라오차이의 밤은 별을 구경하기에 제격이다.

안 그래도 고도가 높은 동네인데, 주변에 불빛은 없고 공기까지 맑으니 참 많은 별들이 보인다.


한참을 별을 보다 보니 주인집 꼬맹이들이 하나 둘 잠자리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나만 더 놀다 늦게 잠자리로 들어가면 아이들이 깰까 봐 서둘러 잠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거실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게스트용 침상들이 있다.

집이 2층으로 지어진 건 아니고 동남아의 흔한 높은 지붕 집의 복층 구조인데 아래층은 주인집 식구들이 사용하고 위층은 게스트들을 위해 개인 매트릭스와 개인 모기장이 쳐져있다.


옆자리의 프랑스 아저씨는 클래식하게 일기장에 무언가를 메모하고 계셨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도 사라지고, 바깥에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던 소리도 사라지고, 풀벌레들 우는 소리만 남았다. 그렇게 내가 꿈꾸던 가장 베트남다운, 그런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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