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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19. 2017

[베트남/하노이]D5_비포 테이크 어 버스 (하)

하노이에서 만난 그녀와 보낸 첫날 오후

오래간만에 집중해서 머리를 썼더니 둘 다 배가 고파졌다.


“점심은 어떤 걸 먹을까?”

“쌀국수만 빼고? 하하”


베트남에 1년간 거주했던 지인에게 소개받았던 식당이 하나 있어서 사진을 보여줬더니 좋다고 한다. 그렇게 선택된 오늘의 점심은 ‘스팀 라이스 롤’

스팀 라이스 롤과 수제햄을 주문했더니 느억맘 소스가 먼저 나왔다. 

그녀가 냉큼 마시길래 비위가 대단한가? 아님 중국에도 흔한가? 라고 생각하려던 찰나에 얼굴을 찡그린다.


“맛없어”

“그냥 먹으니깐 그렇지, 이따 롤 나오면 찍어서 먹어봐.”


메뉴가 나오고 느억맘을 찍어서 먹는데 정말 맛이 있었다. 그녀도 만족했다.


“어제 오늘 먹은 거라곤 쌀국수뿐이었는데 이거 정말 맛있다!”

“나도 오늘 이 음식 처음 먹어보는데 정말 잘 온 것 같아.”


각종 고수와 어우러진 스팀 라이스 롤을 거리낌 없이 먹는 걸 보면 이럴 땐 또 영락없는 중국인이다. 아무튼 잘 먹어주니 소개해 준 사람 입장에서도 뿌듯하다.

점심을 먹고 거리로 나왔다. 아직도 반나절은 더 있어야 야간 슬리핑 버스를 탄다. 목적지 없이 걷는데 그녀가 질문했다.


“몇 살이야?”


서로의 나이가 오픈되었다. 나보다 2살이나 많다. 적당히 나이가 있겠다고는 생각했는데 동안이었다. 나보다 많다.


“내가 나이가 더 많은 여자니깐 ‘누나’인 거지? ‘남동생’?"

“하하, 네 누나. 근데 ‘남동생’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동생’이라고 하면 됩니다.”

“좋아 동생! 지금부터 우리 영어 쓰지 말자. 누나는 중국어로 할 테니 동생은 한국어로만 말해. 알겠지?”


라고 말하더니 나의 왼팔을 끌어당기면서 팔짱을 낀다.


‘뭐지? 이 대륙의 패기는?’


남은 오후에 무슨 일이 펼쳐지려고 이러는 것일까?

결코 따뜻하지 않았던, 거짓말 조금 더 보태어 스코틀랜드스러울 정도로 우중충하고 쌀쌀한 날씨의 하노이 한복판에서 포근한 핫팩 하나가 나에게 장착된 것 같았다.


“동~생~ 블라블라~”

“뭐라는 건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내가 연신 못 알아듣겠다는 대답과 제스처를 취하자 자신이 질문하면 긍정이면 고개를 끄덕이고 부정이면 절래 저으란다.


“Okay!”

“동생~ 블라블라? 블라블라~”


하더니 씨익 웃으며 내 대답을 기다린다.

일단 끄덕였더니, 엄청 웃기다는 듯이 리엑션 하며 웃더니 나를 갑자기 여자 속옷가게 앞으로 끌고 간다.


“잠깐잠깐, 여기는 왜?

“동생이 여자 언더웨어 입고 싶다고 고개 끄덕였잖아 하하하, 한 세트 고르러 들어가 볼까?”

“응? 하하하 미안 미안, 내가 잘못했어!”


2001년 개봉했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엽기적인 그녀의 중국판, 아니 베트남판이 이제부터 상영되려는 것 같았다.

이번엔 내가 질문할 차례다.


“솔직히 나한테 관심 있어서 아까 말 걸었지?"


그녀가 고개로 yes or no를 표현할 차례이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젠장 ㅋㅋㅋㅋ


“왜? 뭐라고 질문했는데?”


나는 그대로 번역을 해서 말해주니깐 이번에도 폭소를 터트렸다.

뭔가 말리는 것 같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 후로도 한국 남자와 중국 여자는 하노이 거리를 각자의 언어로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며 걸어 다녔다. 

나는 베트남 유심을 샀기 때문에 현지 번호가 있지만 누나는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의 SNS를 통한 방법 외에는 여행기간 내에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핑계로 둘 간의 합의하에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한국은 주로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중국은 위챗이라는 앱을 많이 사용하는데 둘 다 있는 것을 찾다가 페이스북으로 결정했다. 중국 내에서는 페이스북이 막혀있다고 하지만, 여기는 중국이 아니기 때문에 페이스북을 이용하는데 전혀 불편함도 없다.

시간만 때우다 떠날 줄 알았던 하루가 뭔가 알차게 흘러갔다. 어느덧 시간은 여행사와 약속한 시간의 1시간 전이되었고 우리는 짐을 찾고 픽업 차량을 기다리기 위해 호스텔로 돌아왔다.

소심하게 몰래 찍어본 그녀

간단히 씻고 픽업 차량이 언제 올지 몰라서 리셉션에서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약속된 시간이 10여분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다. 베트남은 시간 엄수가 생명인 비행기 조차 일찍 뜨기도 하고 늦게 뜨기도 해서 나는 ‘뭐 언젠가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중국 누나는 사기당했을까 봐 야단법석이다. 기어코 리셉션 직원에게 여행사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통화가 끝나고 돌아온 대답은, 아까 시킨 짜장면 언제 오냐고 물어봤을 때 돌아오는 대답과 동일했다.


“아직 안 갔어? 아까 출발했는데~ 차가 막히나 보네 곧 갈 거야.”


그렇지 뭐, 오겠지.

그리고도 한 20여분이 흘렀을까? 오토바이 헬멧을 쓴 청년 하나가 호스텔에 들어왔다. 그리고선 우리를 찾는다. 중국 누나가 또 따진다.


“우리는 차량이 픽업 온다고 들었는데, 왜 오토바이가 왔지?”

“이거 타고 차량이 픽업 올 장소까지 이동해야 해. 싫으면 걸어가던지.”

“걸어가면 얼마나 걸리는데?”

“말하면 찾아올 수 있어?”

“아니…”

“그럼 타 얼른, 늦었어.”


타국에서 그저 힘없는 여자 외국인이었다. 


‘따져서 뭐하나, 때 되면 데려다주겠지.’


하고 넋 놓고 구경하고 있는데, 나도 타란다.


순간 당황했다. 그냥 셋이 타는 게 아니고 우리 둘의 배낭 사이즈가 있는데도 그냥 타라고? 근데 뭐 되니깐 타라고 했겠지? 누나 가방은 운전석 발아래, 내 배낭은 내가 짊어지고 탔다. 오토바이가 차량과 오토바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닐 때마다 누나가 깜짝깜짝 놀란다.


‘중국도 오토바이 많지 않나? 차만타고 다녔나?’


누나와는 달리 야간에 오토바이를 처음 타본 나는 그저 신나 있었다. 짧은 라이딩 시간을 뒤로하고 교차로 한복판에 우리를 내려준다. 그곳에 우리의 픽업 포인트였다.

픽업 포인트에는 서양인 4명과 동양인 1명이 미리 와 있었다. 다들 불안에 떨고 있었다. 


‘여기에 있으면 과연 차가 올까?’라고 생각하는 말풍선이 모두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서양인들 4명이 블라블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누나가 동양인 남자를 쳐다본다. 그리곤 나에게 속삭였다.


“한국 사람 같은데 말 걸어봐 네가.”

“어딜 봐서 한국인이야? 딱 봐도 일본인인데?”

“우와 그게 구별이 돼?”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누나는 구별이 안돼?”

“응, 다 비슷하게 생겼어. 그럼 일본인 인지 아닌지 동생이 물어봐바.”


딱 봐도 일본인인 동양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곤방와~”

“하잇, 곤방와. 아나따와 니혼징 데쓰까?”

“쓰미마셍, 와따시와 강꼬꾸징데스.”


내가 아는 일본어의 80%를 사용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누나가 흥미롭게 지켜본다.

일본 도쿄 출신의 이 청년은 하노이부터 호치민까지 40시간 이상을 버스로만 갈 예정이라고 한다. 나나 중국 누나처럼 중간중간 도시에 들려서 즐기다가 가는 것이 아니고 계속 버스만 쭉 탈 예정이라고 한다. 대단하다. 나 역시 베트남 여행을 준비하면서 육상교통 이동과 항공편 이동을 놓고 한참을 고민했던 터라 이 일본 청년이 계획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멋지게 보였다. 독하게 비교하면 닭장차와 별다를 것 없는 슬리핑 버스에서 본인이 목표로 했던 것을 꼭 얻어가기를 희망해본다.


한중일의 배낭 여행객들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진짜 우리를 픽업해 갈 미니밴이 도착했다. 처음에는 ‘설마 이걸 타고 밤새 가는 건 아니겠지?’라고 잠깐 끔찍한 상상을 하긴 했지만, 배낭들과 사람을 태운 이 미니밴은 하노이 시내를 또 이리저리 돌아 슬리핑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도로변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버스 주변에는 우리 미니밴에서 함께 내린 여행객들 외에도 이미 많은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왜 누구는 타고 누구는 못 타지?”

“이거 못 타면 우리 오늘 밤에 이동 못하는 거 아냐?”


나와 중국 누나가 대화를 나누는 찰나에 검표원이 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같이 미니밴에서 내린 여행객들의 표는 모두 같은 디자인의 신 투어리스트였는데 모두 앞에 있는 버스에 타라고 했다. 일단 기쁜 마음에 타긴 했는데...


버스에 붙어 있는 이름이 신 카페, 신 투어리스트가 아니다.

‘퀸 카페’

그냥 저냥 탈만했다 퀸카페

나는 뭐 솔직히 이거나 그거나 데려다 주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중국 누나는 완전히 속았다며 분해한다. 분해하면 모하노, 이거 아니면 오늘 못 갈 텐데...


“이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자 누나!”


우리가 버스에 올랐을 때는 이미 절반 이상이 탑승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슬리핑 버스는 1,2층 구조에 3열로 배치되어 있는데, 맨 뒤에는 보통 화장실이 있으므로 앞쪽이 좋다고 들었다. 티켓에 좌석번호 따위는 빈칸이었기에 빈자리가 그냥 내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도 나는 2층 가운데 열 제일 앞자리가 걸렸고 누나는 우측 창가 쪽 1층 제일 앞자리가 걸렸다.


“나쁘지 않은데?”


라고 말하자마자 나보고 1층으로 내려오란다.


“신캄언!”


그리하여 우리는 1층 중앙과 우측 열의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다.

자리를 옮기자마자 버스는 출발했고, 누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에서 간식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탕, 젤리, 땅콩, 말린 대추, 오징어, 귤


모두 중국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간식들이라며 나에게 베트남에서 중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어깨에 힘을 팍 주며 말했다.


“너 베트남에서 중국 음식 먹을 거라고 생각해봤어? 나 만나길 잘했지?”


누나지만 귀엽네, 여자는 여자구나. 천생 여자!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다들 자리가 협소하고 힘들 텐데 잘도 잔다. 그런데 버스 기사가 줄 담배를 피워댄다. 목이 너무 아프다. 베트남에서는 시내버스에서도 흡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만 봤지, 이 창문도 없는 버스에서 필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나는 그나마 앞자리인데, 뒤쪽에 있는 서양 여자들이 연신 콜록콜록 재채기를 하는데도 기사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아무 말도 안 하는 베트남 현지인들이 있기에 말도 안 통하는 힘없는 우리 외국인들은 그냥 버틸 수밖에 없었다.


‘아, 이래서 신 카페 버스 타는 건가? 최악의 버스다.’


바람막이 자크를 코까지 올리고 손수건을 꺼내어 또다시 입과 코를 막았다.

자긴 자야 할 텐데, 잠들 수는 있을까?

하루 종일 불평하던 중국 누나는 또 잘잔다. 담배연기에는 또 익숙해져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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