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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19. 2017

[베트남/훼]D6_My friend는 사기꾼

훼 터미널에서 사기당한 썰

3월 12일 토요일


잘 잤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생전 처음 타보는 슬리핑 버스, 너무나 협소하다. 키 큰 서양 친구들은 곧게 눕지도 못한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무릎을 구부린 친구들도 간간히 보인다. 언제 닦았을지 모를 목베개와 색이 바랜 담요의 냄새는 운전기사의 담배 연기에 묻힌 지 오래다.


게다가 간밤에 웃픈(?) 해프닝도 하나 있었다. 하노이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첫 번째로 도착한 도시가 있었다. 거기 터미널 같은 곳에서 이탈리아 청년 한 명이 뭐라 뭐라 말을 하더니 탑승을 했다. 물론 자리가 없었고 앞문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1시간도 되지 않아서 휴게소에 들어갔고 이탈리아 청년은 이곳에서 다음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어떤 버스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영어를 못하는 버스 기사님과 보조 아저씨들은 베트남어로 대답을 했고 약간의 실랑이 끝에 이탈리아 청년과 그의 가방을 버리듯이 버스 밖으로 빼내었고, 다음 버스는커녕 버스 꽁무니도 보이지 않는 휴게소에 홀로 남게 되었다. 과연 잘 환승해서 다음 목적지로 갔을런지...


버스는 밤새 달렸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옆자리의 그녀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봤더니 그녀가 500ml 물병의 뚜껑을 열려고 애쓰고 있었다. 멍하게 지켜보다가 아무런 말없이 시크하게 물병을 낚아챈 후 나름 박력 있게 뚜껑을 돌려서 연 후 그녀에게 다시 건넸다.


“감사합니다~”


라고 한국말로 대답을 해준다. 귀엽다 새벽부터.


버스는 밝아오는 여명과 함께 훼(Hue)에 도착을 했다.


훼(후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의 수도이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베트남의 중부지방에 있는 고도이다. 

1635년 이래 안남 남부와 코친차이나를 지배한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음. 1802년 베트남 통일 후에는 국제 도시로 번영을 누림. 1883년 프랑스에 점령, 1945년까지 보호령의 수도였음.

이라고 네이버를 검색하면 나온다.


애초에 그녀는 훼에 내릴 계획이었고, 나는 분명 짝퉁 신 카페 (실제는 퀸 카페)에서 훼를 경유하지 않는 호이안 직통 버스를 구매했었다. 


*그녀는 오픈 버스 티켓을 구매해 기간 안에 하노이부터 호찌민까지의 비용을 한꺼번에 지불하고 탈 때마다 좌석만 배정받는 방식으로 여행을 시작했고, 나는 신 카페가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이동할 때마다 편도로 티켓을 구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크게 가격차이는 나지 않았다. 케바케.


그런데 둘을 같은 버스에 태운 걸 보면 다른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훼와 다낭을 다 경유하려나보다 하고 포기하고 있었기에 불안감, 배신감, 분노 같은 것 없었다. 다만 대부분의 블로그에서는 신 카페의 버스를 탑승했기에 환승 대기시간이라던지 위치 정보를 신 카페 기준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점이 약간의 혼돈을 불러왔다.


훼에 도착을 하고 버스에서 모두 내린다. 이 버스는 하노이 – 훼 구간만을 운행한다. 우리는 훼 – 다낭 – 하노이 구간만 운행하는 같은 퀸 카페 소속의 버스로 갈아타면 되는데, 내리자마자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몰려와서 말을 건다.


훼에 온 거냐, 다낭이나 호이안에 갈 거냐,


나는 호이안, 그녀는 다낭에 간다고 했더니 짐가방을 달라고 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가방을 건넸더니 자기 오토바이 발아래 싣는다. 하노이에서의 픽업 상황과 똑같았고, 블로그에서 신 카페 버스 이용 기준으로 내리는 지점과 타는 지점이 다르다고 봤었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탔다. 블로그 100% 다 믿으면 나처럼 된다.


아침부터 시원하게 달린다.


밤새 담배연기만 맡다가 아침 공기를 맡으니 상쾌하다.

기분이 좋아지려고 하는데, 가만히 보니 이 녀석이 근처만 빙빙 돈다.


‘망할 놈’이라고 욕이 나오기보다는 이대로 호이안까지 나를 태워가면 도대체 요금을 얼마를 내야 할까?라는 계산과 설마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서 다 털리는 건 아니겠지?라는 불안감이 슬슬 몰려왔다.


불안감이 최고조에 오를 무렵, 내린 곳과는 다른 퀸 카페 앞에 내려주고선


“My friend, This is Queen cafe.”라고 한다.


말끝마다 my friend, my friend라고 하는데, 그래 내가 너 친구 호구다.

퀸 카페 직원은 ‘이 멍청아 그걸 낚이냐’라는 눈빛만 보내고 도와주지를 않는다. 훼에서 처음으로 사귄(?) 내 친구는 그냥 집에 갈 생각이 없나 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20,000동 (약 1천 원)을 손에 쥐어줬더니 좋다고 또 보자며 간다. 아침부터 아주 혼을 쏙 빼놓고서는 유유히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내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켰더니 페이스북 메신저로 전화가 걸려온다.

그녀다.


“어디야? 괜찮아?”

“응 뭐가? 나 방금 잘 도착했어.”

“정말? 어디 도착했는데?”

“기다려봐, 사진 찍어서 보여줄게.”

하고선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더니 다시 연락이 왔다.


“괜찮은 것 같으니 다행이다. 아까 너 혼자만 오토바이 타고 갔고, 같이 버스에서 내린 모두는 여기에서 쉬고 있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다고. 네가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어."

“하하, 걱정 마. 여기 베트남이잖아. 이럴 수도 있지. 그 녀석이 거짓말쟁이였어.”

“맞아. 버스는 한 시간후에이곳으로 올 거래. 나중에 봐. 안전 유의하고.”


그렇다.

나만 호갱님이 되어 오토바이에 탑승한 것이다.


‘어디냐, 괜찮냐, 여기로 와라’라고 계속 말하는데 나는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대답했다. 퀸 카페 간판이 걸린 사진을 보내주자 겨우 안심이 되었는지, 같은 버스를 타면 금방 또 보고 버스가 다르면 무이네에서 며칠 후에 보자며 대화를 맞혔다.


‘운명이면 또 보겠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빈 의자가 있어서 앉았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 두 분이 나처럼 불안한 눈빛을 하며 말을 걸어오셨다.


"여기서 타면 호이안 가니?"

"저도 여기 처음인데 직원이 가는 것 맞다고 하네요."

"응 다행이다, 근데 일본인이니?"

"아뇨, 한국인이에요."

"아 미안, 아시아 여행 참 많이 다니는데 아직도 구별이 잘 안돼."

"괜찮아요~ 저도 두분 어느 나라 인지 구별 안돼요."

"ㅎㅎ 그러니? 맞춰볼래?"

"음, 북유럽?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왜 그렇게 생각해?"

"금발 머리?"

"나는 이탈리아에서 왔어~"

"나는 영국~"

"앗 죄송해요, 정말 구별하기 힘드네요. 같은 마음이겠죠?"


대화를 이어갔다.


“한국이나 일본에 와본 적 있나요?”

“일본은 가봤는데, 한국은 아직. 너는 유럽에 와봤니?”

"저는 2006년 독일월드컵을 보러 갔다가 5주간 유럽 여행을 했고요 이탈리아랑 영국에도 갔었어요."


하며 여행을 통한 공감대 형성을 시도하는데, 이탈리아 아주머니는 현재 스페인에 거주 중이시란다. 스페인은 안 가봤기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영국 아줌마도 나는 나름 북부 스코틀랜드부터 남부 봄머스까지 종단을 했는데 하필 안 가봤던 서부에 사신단다.


‘밑천 다 떨어졌으니 대화가 끝인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본인들의 아시아 여행기 썰을 풀어주시는데 와... 어마어마하다.

마치 여행이 직업인 사람들인 마냥 안 가본 곳이 없다.

대체 유럽 사람들은 휴가가 연중 며칠인 것인지, 재취업이 쉬운 건가?

나의 짧은 영어로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을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빈 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그녀가 탑승해서 왔을까 하고 안을 살펴봤는데, 확실히 빈 버스이다.


‘아, 그녀와 운명이 아닌가?’


자리를 잡고 누워서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버스가 시내를 조금 돌더니 아까 처음에 내렸던 그곳으로 간다. 그리곤 외국인들 무리 속에서 반가운 얼굴이 해맑게 인사를 한다.


“안녕, 한국 친구?”

“오우~ 만나서 반가워요 중국 친구!”

“내가 왜 친구야? 누나라고 해봐.”


약 한 시간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했고, 그녀는 내 옆 빈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훼 – 다낭 – 호이안 구간은 해안 도로를 달리는 구간으로 쌀쌀했던 사파와 하노이를 다녀온 내가 꿈꿔왔던 따뜻한 남국의 해안가였다. 내가 계속 예쁘다며 감탄하자,


“예쁘다(한국말로)? 무슨 뜻이야?”라고 물어본다.

“Beautiful, like you.”라고 말하며 씨익 웃어주니

“Alright, I know.” 이란다.


당당한 건지, 뻔뻔한 건지... 뭐 도긴개긴이지만 귀엽다.

길지 않은 구간이었지만, 버스는 정확히 훼와 다낭의 중간 지점의 휴게소에 들어갔다. 콜라나 한 캔 하고 가야겠다 싶어서 샀는데, 운전기사는 아예 식사를 하려나보다.


“오래 쉴 건가 봐, 근데 이 도로 참 멋지지 않아? 나 사진 한 장만 찍어줘.”


하고 휴대폰을 건넸다.

마음에 든다 이 사진.

찰칵. 찰칵.


“누나도 찍어줄게 휴대폰 줘봐.”

“난 안 찍을래. 여기 재미없어.”

“재미가 없다니?”

“이런 바다, 이런 산, 이런 도로, 이런 소음, 심지어 흙먼지에 매연까지. 이런 거 중국에도 많아. 난 이런 거 보러 온 게 아닌데, 도대체 베트남스러운 건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어젯밤에 버스를 탈 때까지, 아니 정확히는 버스를 타러 가기 전 픽업을 기다리기 전까지는 상태가 괜찮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뭔가 불만이 많다.


“그냥, 즐겨. 이런 게 여행 아니겠어?”

“아니야. 마음에 안 들어. 집에 가고 싶어.”


사실 아침부터 나도 호되게 당한 터라 그녀를 달래줄 여유는 나에게 많지 않았다. 우리는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버스에 다시 올랐다.

잠시 후 버스는 다낭에 도착했다.


그녀는 다낭에 내리고, 나는 1시간여를 더 가서 호이안에 갈 계획이다.


“오늘 저녁식사 같이 할래? 내가 오토바이를 빌려서 호이안으로 갈게.”

“그래 좋아, 근데 어떻게 만나?”

“아침에서 페이스북 메신저로 통화했잖아. 연락할게.”

“굿, 즐거운 여행되고 이따가 볼 수 있으면 보자.”

왼쪽 아래 붉은 점퍼가 일본 청년

그녀를 내린 버스는 호이안으로 출발했다. 잊고 있었던 일본인 청년이 나에게 묻는다.


“여자 친구는 어디 갔어?”

“여자 친구 아닌데?”

“그럼?”

“어제 너보다 몇 시간 먼저 만난 여행객?”

“아, 그렇구나. 근데 넌 어디까지 가?”

“나는 다음 호이안에서 내릴 거고 거기에서 1박을 할 거야.”


뭐 누구라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둘이 계속 붙어있었으니.

버스가 호이안에 도착을 했고, 나는 내림과 동시에 퀸 카페에서 다음날 나짱행 버스 티켓도 구매를 했다. 호스텔 위치를 검색하는데 오토바이들이 몰려와서 어디 가냐고 묻는다.


“괜찮아. 가까워. 걸어갈 거야 난.”


이제야 깨달았다. 버스가 정차하는 곳마다 하이에나들이 득실득실하다는 것을. 호찌민에서도 안전한 회사택시인 마이린과 비나썬만 타고 가격을 흥정해야 하는 쎄옴(오토바이 택시)은 한 번도 안 탔었는데, 넋 놓다가 코 베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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