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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20. 2017

[베트남/호이안]D7_버스안에서

나짱가는 슬리핑 버스 안 이야기

호스텔에 와서 양해를 구하고 공동 샤워실에서 간단히 샤워를 한 후 약속시간 10분 전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안 왔나? 늦진 않겠지?"


하고 배낭을 내려 충전기를 들고 터미널 사무실 내로 들어갔더니 구석자리에서 사무실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가 있었다.


"뭐야, 언제 왔어?"

"나 사실 공용 샤워장에 따뜻한 물이 안 나와서 그냥 왔어, 아~까부터 너 기다리고 있었지~"


So sweety

내 손 많이 탔나보다. 시커멓다.

그러더니 나에게 손을 달라고 했다. 유심히 보더니 손을 정리해준다. 네일샵인줄...

"비타민 많이 먹어야 이런거 안 생겨~"


그녀가 충전을 하다 잠시 밖에 짐을 찾으러 나갔다.

그녀와 나는 같은 기종의 휴대폰을 사용하기에 충전기 역시 같았다.

자연스럽게 (사실 귀찮아서) 그녀의 충전기에 내 휴대폰을 충전시켰다.


"동생 충전기 없어?"

"아니 있는데 그냥 네 거 쓰고 싶어서"

"(한국말로) 바보야~ (다시 영어로) 너 몇 프로인데?"

"나 40%, 넌?"

"난 80%니깐 너 써 바보야."

"(한국말로) 나 바보 아니야 바보야!"

"뭐라 그런 거야? 번역 좀~"

"나는 바보가 아니고, 네가 바보라고!"

"아닌데 네가 바보인데?"

"그래 나 바보다 하하"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그거 알아? 바보는 바보랑 다닌데, 바보는 친구가 다 바보래"

"난 바보 아닌데?"

"바보랑 다니니깐 바보 맞아 하하"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친구들이랑 단체 채팅하다가 지루하면 뭐라고 쓰는 줄 알아?"

"뭐라고 답하는데?"

"By the way...."

"그런데?"

"응 그런데... 하고 잠들어."

"아 정말? 하하"

"그래서 말인데, by the way....."

"하하하 잠들면 두고 간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슬리핑 버스가 도착했다.

나의 다음 목적지는 나짱, 그녀는 달랏이었는데 보통의 루트라면 호이안을 출발한 버스가 나짱을 거쳐 달랏으로 가는 루트이다.

그래서 당연히 한 버스를 탈 줄 알았다. 물론 여행사 직원도 그렇게 말을 했는데 웬걸, 버스가 2대가 들어왔다.

한쪽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현지인들이 타 있었고 빈차에 외국인들을 태우기 시작했는데 나와 그녀는 자리가 없어서 탈 수 없었다.


직원이 나에게

"한자리 남았는데 탈래?"하길래

"아니, 난 일행이 있어 같이 타고 싶어" 했더니 현지인들 탄 차에 같이 타란다.

그래서 탔는데 또 내려서 옆 차로 나만 옮기란다.


"나는 같이 갈 운명이 아닌가 봐~ 달랏 가서 잘 놀고 무이네에서 만나, 즐거운 여행!"


하고 인사를 건네고 다른 버스로 옮겼는데 자리 없다고 다시 저 버스로 가란다.

평소 같았으면 분노했겠지만, 그녀와 같은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기쁨에 냉큼 옮겼다.

그녀의 옆 자리를 차지하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 중국 여자"

"안녕, 한국 남자. 근데 무슨 일이래?"

"나도 잘 몰라~ 다시 만나 반가워 아무튼!"


오늘도 다행히 뒤쪽 자리가 아닌 앞줄을 차지했다.

여기저기 잠깐씩 멈추며 사람들을 더 꽉 채운 버스는 이윽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휴, 오늘도 사람 많아서 화장실 가기 힘들겠는걸?"

"바보야, 이 버스 화장실 없던데?"

"헐, 진짜? (확인하더니) 망했네 ㅋㅋ"

"왜 화장실 가고 싶어?"

"응 살짝, 넌안 가고 싶어?"

"방금까지 안 가고 싶었는데, 말하다 보니 가고 싶어 졌어 ㅋㅋ"

"바보 ㅋㅋㅋ"

"그래 나 바보, 나랑 같이 있는 너도 바보."

"그래 그럼 나 바보 할 테니깐, 화장실 가고 싶다고 운전기사한테 말하고 오면 안 돼?"

"하하, 난 참을만한데?"

"아놔, 동생 이러기야?"

"난 지금 잠들어버리면 몇 시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그러시겠다~ (내 앞의 생수통을 가리키며) 정 급하면 저 생수통 사용하면 되겠네? ㅋㅋ"


그러나 생수통은.... 겨우 물 한 모금 마신 거의 가득 찬 상태였다.


"아니 뭐 난 이거 다 마시고 도로 이거 채우라고?"

"하하하 먹고 싸고 ㅋㅋㅋ 그러고 자.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여기서 다 해결하면 되겠네 ㅋㅋ"

"ㅋㅋㅋ 아 그만 웃겨, 웃으니깐 배 아파서 나올 것 같잖아."

"그럼 더 웃겨야지,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게."


세상 가장 해맑은 미소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소녀가 추운 날 저녁에 빵을 사러 빵집에 갔는데, 가는 길이 너무 추워서 팔을 이렇게(몸소 시범 보이는 중) 옷에서 빼서 옷 안쪽으로 넣고 빵집에 들어간 거야."

"헐 나 이 이야기 아는 것 같아!"

"에이, 정말?"

"근데 한국이랑 중국이 다를 수 있으니 계속해봐"

"응, 빵집에 들어갔더니 주인아저씨가 속으로 팔이 없는 불쌍한 아이가 빵 심부름을 왔구나 싶어서 소녀에게 빵 필요하니? 했는데 이 소녀가 자기가 팔을 옷 속에 넣을걸 까먹고 해맑게 네~ 하고 대답을 했더니, 주인아저씨가 불쌍한 아이가 열심히 사는구나 하고 봉투에 친절히 빵을 담아서 주셨대 하하하"

"....... 음? 이게 끝이야?"

"하하하, 응끝인데?"

"내가 더 해줄게 한국 버전 ㅋㅋ"

"그래 해봐~"


그녀가 몸까지 내 방향으로 틀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인아저씨가 빵을 봉투에 담았는데 이 소녀가 팔이 없잖아, 그래서 아저씨가 봉투를 이쁘게 묶어서 소녀 목에 걸어주면서 돈 안 받을 테니 그냥 가라고 했대~"

"하하하 아 정말?"

"응 ㅋㅋ 그랬더니 소녀가 어떻게 했는 줄 알아?"

"아니 ㅋ 계속해봐!"

"빵을 목에 걸고 나니깐 이제 상황을 되돌릴 수 없게 된 거지, 이건 뭐지?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고 나왔대ㅋㅋㅋ"

"아 ㅋㅋㅋ 이게 진짜 결말이구나 ㅋㅋ 너무 웃겨"

"그치? 웃긴데 화장실 가고 싶다 ㅋㅋㅋ"


이때 마침 버스 내 조수 역할을 하는 아저씨가 통로 쪽에서 움직였고, 그녀는 아저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아저씨, 이 남자가 할 말 있대요"

"뭐야 내가 언제 ㅋㅋㅋ"


하는데 아저씨가 바쁘니깐 빨리 말하라는 듯 날 응시한다. 찌릿.


"아, 죄송하지만 휴게소는 언제 갑니까?" 라고 물었지만 알 수 없는 베트남 말만 뭐라 뭐라 하고 가셨다.


"뭐야 ㅋㅋ 왜 갑자기 나 시켜! 나는 생수통 있다니깐~"

"흥, 나도 ㅋㅋ사실 하나 있긴 해…"

"뭐?"

"생리대 ㅋㅋㅋㅋㅋ"


도저히 알다가도 모를 여자다.


"조... 좋겠다, 근데 하나로 양이되겠어?"

"훗 한 개만 있겠어? 하하, 생수통 쓰다가 부족하면 말해 빌려줄게~"


진심 배꼽 잡고 웃었다.

그렇게 5시간여를 달린 끝에 드디어 휴게소에 도착을 했다.

우리만 급했던 것이 아니었나 보다.

휴게소에 도착하자 여기저기서 길고 짧은 환호성이 터졌다.

물론 나는 신발을 챙겨 1등으로 내렸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그녀가 먹거리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뭐 먹고 싶어?"

"과일이 먹고 싶은데, 수분이 많은 걸 먹으면 이따 자다가 또 힘들어지겠지?"

"하하 그렇겠네~"

"그렇다면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아보카도!"

"아보카도? 이거 달아?"

"아니~ 건강해지는 맛!"


이렇게 간단히 과일을 사고 다시 버스에 탑승을 했는데....


"너 칼 있니?"

"그게 있겠어? 없지 당연히~"

"아 큰일이네, 이거 어떻게 하지?"


만져보니 아직 살짝 덜 익었는지 꽤 딱딱하다.

그녀가 씨익 웃더니


"이빨로 뚜껑만 열어줘"

"헐 ㅋㅋ 나랑 장난해?"

"장난 아냐~ 진짜로!"


라고 말하며 굉장히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나 이거 지금 못 먹으면 잠 못 잘 것 같아...."


아, 아이를 임신한 와이프가 남편에게 야밤에 뭔가 먹고 싶다고 할 때 이런 기분일까?


"아.... 알... 겠어, 한 번 해볼게."


내가 베트남까지 와서 갈갈이 쇼를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이 아보카도 참 딱딱하다. 치아도 치아인데, 입천장까지 얼얼했다. 게다가 맛은 왜 이렇게 떫은지....

떫다는 걸 영어로 표현할 수 없어서 바디랭귀지로 보여주는데 그녀가 깔깔 거리며 웃는다.


'좋으냐? ㅎㅎ 네가 웃으니나도 기분은 좋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너도 하나 먹어봐"


하고 새 아보카도를 내민다.


"아 별로 맛없던데"

"바보야 진짜 먹으라는 게 아니고 너 잘 때 나 먹으려고 뚜껑 열어 달라는 거야 하하"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도 좋다 행복하다.

애초 여행을 계획할 때 야간 슬리핑 버스에 대한 고민을 상당히 많이 했었다. 돈을 조금만 더 주면 편하게 국내선 저가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었기에 슬리핑 버스를 탈지 말지에 대해 고민을 엄청 했었다. 심지어 출국 전날까지 말이다.

그러나 지금 후회는 없다.

이 슬리핑 버스가 아니었으면 그녀를 만날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슬리핑 버스의 밤은 더 깊어졌고 우리는 이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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