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 ho Waterfall
3월 14일 월요일
화이트데이
라고 사탕을 달라는 카톡과 사탕을 전달하며 받았다는 인증샷들이 SNS를 뜨겁게 달구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나는 꿋꿋하게 나짱에 내렸다.
사탕을 사서 그녀에게 줄까 했지만 한국에만 있는 문화라 그녀가 모를 것 같았고 사실 오늘 우리는 서로 다른 지역을 여행한다.
아침 6시가 조금 안되어 버스는 나짱(나트랑)에 도착했다.
"나 갈게, 내일 무이네에서 다시 만나~"
"응 여행 잘하고, 나 보고 싶다고 울지 마!"
"벌써 눈물 나는걸? 하하"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서 내린 후 내 배낭을 찾았다.
지도 앱을 켜서 오늘 예약한 호스텔을 검색해보니 5분 거리에 있다.
좋군 훗
슬슬 이동을 하려는데 그녀가 내린다.
"무슨 일 있어?"
"이 버스 여기가 종점이라고 여기에서 기다렸다가 다른 버스로 갈아타래"
"그래? 그럼 같이 좀 기다려줄게"
"아냐~ 나 괜찮아 얼른 가"
"아냐 ㅋ지금 가도 할 게 없어...."
"그럼 아침이나 먹을까? 내가 반미 사 올게"
반미 하나를 구입하여 나누어 먹었는데 30분도 안 지났다.
앞으로 한 시간여를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녀가 자꾸만 가란다.
"그럼 나갈 테니깐 내일 무이네 호스텔에서 만나~"
"걱정 말고 재미있게 놀기나 해!"
"호스텔 이름 까먹지 말고 예약 꼭 하고."
"아휴 잔소리, 얼른 가 한국 남자!"
"알겠다 중국 여자!"
그래, 할 건 해야지.
내가 스스로 골라서 온 나짱이니 하고 싶었던 것들 딱 하고 내일 무이네로 가자.
그렇게 난 그녀를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얼마 가지 않아 호스텔을 찾았고, 혹시나 하고 체크인을 물어봤으나 11시 이후에 하란다. 그래도 착한 호스텔 스태프들의 배려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배낭을 맡긴 후 거리로 나섰다.
말로만 듣던 신카페(신투어리스트)가 아까 내가 내린 여행사 정류장보다 훨씬 더 가깝다.
드디어 신카페 첫 입성!
오 역시 깔끔하구먼.
우선은 내일 나짱에서 무이네로 가는 버스를 예약을 했다.
그리고 내가 나짱에 온 이유인 바호 폭포(Ba ho Waterfall) 투어를 문의했다.
"나 바호폭포에 가고 싶은데 가능해?"
"응 가능해, 택시 한 대 빌려줄게 70만 동"
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바호폭포를 가는 것인가!!!
사실 나짱에 바호 폭포의 존재를 아는 한국인은 거의 드물다.
대부분은 한국인들이 나짱에 가는 이유는 보트 투어와 머드 그리고 해변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유럽여행을 갔을 때 남들은 박물관과 미술관에 갈 때 난 인터넷은커녕 여행책자에도 없는 축구장을 찾아다녔던 사람 아닌가 ㅋㅋ 이왕 외국 온 거 내가 꼭 보고 싶었던 것은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바호 폭포가 궁금하다면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한국 검색창에 검색하면 안 나온다. 인스타에 Bahowaterfall이라고 해시태그 검색하면 내가 왜 이토록 가고 싶었는지 나올 것이다.
이렇게 신나 있을 무렵, 두 명의 한국 청년들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혹시, 한국분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저희 여기 처음인데 혹시 오늘 모하실 건가요? 저희가 조금 전에 슬리핑 버스를 타고 호치민에서 도착을 해서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 저도 이 동네 처음이고 방금 이 동네 도착했는데요~ 혹시 폭포 안 가실래요?"
하고 대답했더니 이 청년들이 처음 듣는 이름에 반신반의한다.
나 역시 굳이 뭐 누구랑 다니고 싶은 마음은 크게 없었다.
"인스타에 검색 한 번 해보세요. 네이버에는 어차피 정보 없어요, 한국사람들 모르는 곳이라. 그럼 저는 호스텔 가서 수영복 좀 갈아입고 올게요."
하고 호스텔로 복귀하여 물놀이 복장을 장착하고 선크림도 발랐다. 그러곤 신투어로 다시 갔는데 이 청년들이 그 사이에 열심히 알아봤나 보다.
“저희 갈게요, 같이 가요!”
그렇게 우리는 70만 동 (약 3만 5천 원)에 택시를 통째로 렌트하여 이동을 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흔한 한국인들의 대화였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대화하니 살짝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할까?
뭐 결과는 싱겁네 내가 좀 동안이긴 하지만 형은 형이었다.
“오 형님이시네요, 말 편하게 하세요”
“저희는 친구사이이고 배 타는 일을 해요”
“하하, 말은 차차 편하게 할게요.”
대학 동기 사이인 이 두 친구는 호치민으로 입국하여 무이네를 거쳐 나짱에 오늘 아침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막상 도착은 했는데 호텔 체크인은 안되고 해서 뭐하고 놀아야 하고 여행사에서 알아보고 있는데 내가 왔단다. 가끔은 날 보고 일본 사람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도 많은데 오늘은 한국인으로 보였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45분 가까이를 달려 바호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약간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약 1킬로미터가량을 등산했다.
말이 등산이지 쪼리 신고도 잘 올라갔으니 가벼운 산보 수준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 지 30분쯤 되니 계곡을 타고 올라가는 코스로 변한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러시아인들을 필두로 한 많은 서양인들에겐 꽤 인기가 있는 곳인 듯하다.
계곡 코스도 길이 잘 닦여 있다. 바위가 험한 곳에는 가이드도 설치되어 있고 그냥 화살표만 보고 올라가다 보니 제 1 폭포가 나왔다.
제 1 폭포인지 제 1 스폿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ㅋㅋㅋ 암튼 제 1 폭포까지 쉽게 오다 보니 제 2 폭포가 궁금해서 시간도 이르고 하니 이동해보기로 했다.
근데 제 2 폭포 가는 길이 쉽진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난 그냥 포기했다 ㅋㅋ 왜냐하면 제 1 폭포에 내가 인스타에서 본 근사한 다이빙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에 난 더 이상 욕심이 없었다.
두 청년 중 한 명이 제 2 폭포를 보고 오겠다고 하여 다른 한 명과 나는 두 폭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제 2 폭포가 떨어뜨린 물줄기들이 바위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그 주위를 거대한 나무가 둘러쌓고 있다. 날씨가 좋았다면 나무 그늘 아래서 자리 잡고 신선 놀이를 하다가 나무에 기어 올라가 천연 다이빙을 즐겼을 텐데.... 춥다 ㅋㅋㅋ 비 올 듯
제 2 폭포를 보러 갔던 청년이 돌아왔고 조금은 쌀쌀하지만 천천히 물놀이를 하며 바호 폭포를 즐겼다. 물놀이를 하다 보면 역시나 배가 고파진다.
슬리핑 버스를 탈 때 샀던 바나나를 튀긴듯한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해양대를 졸업하고 배를 탄다는 이 청년들은 물론 배 위에서 지내는 시간은 많지만 그래도 꽤 많은 나라를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요새는 확실히 예전보다 해상에 해적들이 줄어들었다고 하니 다행인 것 같다.
이래 저래 놀다 보니 목표했던 절벽 다이빙 말고는 다 한 것 같다.
날씨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 종일 놀기는 힘들 것 같고 물놀이나 조금 하다가 돌아가야 할 듯하다.
조심스럽게 제 1 폭포 다이빙 포인트로 이동하여 다이빙을 즐기는 러시아인 가족을 지켜봤다.
‘음, 뛸만한가 보군.’
처음으로는 조금 낮은 곳 (약 2미터 높이)에서 먼저 뛰어봤다. 힘껏 뛰고 물 위로 떠오르면 물이 나가는 방향 쪽으로 몸이 떠내려오는데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 쪽은 둥그런 연못 같은 형태이고 이후 작은 물줄기를 이루어 아래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겁먹고 허우적거리지만 않으면 안전한 곳으로 나온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는 고프로를 한 손에 쥐고 다이빙도 했다. 라오스 블루라군에서는 다이빙 후 한 손으로 수영을 해야 안전한 곳까지 올 수 있었는데 여기는 조금만 움직이면 물살을 타고 이동이 된다.
자신감을 얻고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라오스 블루라군 제일 높은 나무와는 비교도 안된다. 약 10여 미터 이상 되는 높이로,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기분이다. 고프로 없이 먼저 한 번 뛰어봤다. 스릴이 장난 아니다. 나와 함께 다이빙하던 외국인은 공중에서 에어워크를 하는데 발차기를 거의 한 열 번은 하는 것 같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절벽이기에 도움닫기를 힘껏 하지 않으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다이빙 포인트에 서서 잠시 머뭇거리면 공포가 한없이 몰려온다. 고프로를 가지고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함께 놀러 온 청년에게 고프로를 맡기고 다시 절벽으로 올라갔다. 구경꾼들이 신이 나서 다 같이 카운트를 외친다.
“쓰리, 투, 원!”
점프... (정적) (비명) (풍덩)
이번 여행의 두 번째 목표를 달성했다.
사파의 계단식 논, 나짱의 바호 폭포 다이빙, 마지막은 무이네 사막의 일몰.
아침까지 꽁냥꽁냥 만들어가던 로맨스는 잠시 잊었다. 여행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같이 온 청년들은 뛸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배도 고프고 날은 계속 쌀쌀하여 결국 내려가기로 했다. 올라올 때는 금방이던 길이 역시나 길다.
입구에 도착하니 전세 택시 기사가 반갑게 웃는다.
“미안, 우리 배고파. 밥 좀 먹고 갈게요.”
쌀국수나 먹을까 하고 들어갔던 입구 매점의 메뉴판에서 라면을 발견했다. 값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난 라면.”
“저도요!”
“저도 콜. 그리고 밥도 시켜요 저희.”
베트남식 라면을 시키고 밥을 주문했다. 역시 물놀이 후에는 라면이 최고다.
우리에게 안남미로 알려진 베트남 쌀은 안남과 비엣이 사는 나라라는 뜻의 비엣남에서 안남은 북부 하노이 인근 명칭으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과거 중국이 남의 땅을 점령하면 ‘편안할 안’ 자를 지명에 넣어 본인들의 지배가 그 지역에 좋다는 이미지를 심었었는데 예를 들면 서안(시안)이 한 예이고 안남 역시 과거에는 남안이라 불렸다고 한다. 남안이 안남이 되었고 중국에서 한자로 베트남 쌀을 안남미라고 표기하면서 우리에게도 베트남 쌀이 안남미가 되었다.
현지인들 식당에 가면 사실 밥은 거의 무제한 리필이 된다. 얼마 비싸지도 않고 먹으면 금방 꺼지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 현지 식당에 가서 4~5 공기 정도 먹는다. 인도의 안남미보다는 덜 거친 느낌의 베트남 안남미. 아무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라면 국물에 말아먹어도 참 맛있다 라는 것이다.
라면과 밥을 먹고 그녀에게 메신저를 보내 자랑했다.
“나는 목표했던 폭포에 와서 다이빙하고 지금 라면 먹고 있어~”
“나도 조금 전에 도착해서 엄청 즐거워. 즐거운 여행 해.”
‘하라면 못할 줄 알고? 신나게 놀아봐야겠다.’
택시를 타고 다시 신 카페에 도착했다.
청년들의 이름을 들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서로의 즐거운 여행을 응원하며 헤어졌다. 호스텔에 들어와서 체크인을 하고 검색을 했다. 남은 반나절을 위하여.
호핑투어를 가기엔 늦었고, 해변에서 멍 때리기에는 날씨가 꿀꿀하고,
오호라, 머드가 유명하군이동네.
머드 투어도 가기에는 사실 좀 늦은 듯한데, 호스텔 가까운 호텔에 머드 스파가 있었다.
Just go!
옷을 대충 허름하게 입고 갔더니 리셉션에서 이것들이 반겨주지도 않는다. 도도하고 건방지게 앉아서 메뉴판을 요구했다. 그리고선 제일 싼 코스로 계산을 했다. 비싸다 역시 호텔 머드 스파라...
스파용 반바지로 환복을 하고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옥상으로 올라갔다. 반바지만 입고 있으니 춥다. 잠시 기다리라 하더니 개인 탕에 새로 머드를 받는다. 머드가 채워지고 들어갔다. 보들보들한 머드가 따끈따끈하니 좋다. 머드탕 후에는 한증막, 이후에는 온탕으로 이어지는 코스였는데 때가 불어서 자칫 밀면 밀릴 수도 있을 것 같은 불안감에 대충 씻고 스파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