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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26. 2017

[베트남/무이네]D12_중국인과 대화하기

호치민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벌어진 썰전

3월 18일 금요일


점심때쯤 호치민으로 버스를 타야 하기에 아침부터 일어나서 짐을 챙겼다. 아침 식사는 패스하고 점심밥을 버스 타기 전에 먹기로 했다. 짐을 어느 정도 챙기고 로비에서 어제 먹다 남은 과일들을 먹고 있는데 어젯밤에 체크인 한 영국 청년이 와서 말을 건다. 이것저것 무이네에 대해 물어보는데 ‘런든’에서 왔다는 오리지널 영국 본토발음이 어지간히 알아듣기 힘들다. 그녀는 그동안 베트남식 영어에 질려하며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투덜거렸었는데 오늘은 신이 났는지 베트남에 대해 다 설명을 하더니 중국 관광까지 소개해준다. 대화가 끝나고 나는 왜 대화에 안 끼었냐기에 하나도 안 들렸다고 했다.


“바보”

“뭐래, 찡찡 바보.”

“나~ 아니야~ 바보!”


‘바보’랑 ‘화장실이 어디예요’는 확실히 습득한 듯하다.


무이네에 처음 오던 날은 멋도 모르고 걸어서 숙소에 왔는데 여기 있는 동안 오토바이도 타보고 걸어도 다녀본 결과, 우리 숙소와 버스 터미널까지는 결코 땡볕 아래서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숙소를 내려와서 마이린 택시를 골라서 타고 터미널에 도착했다. 진작 택시 탈걸 그랬나, 요금이 얼마 나오지도 않았다. 호치민만 여행 가거나 출장 갔을 때는 그렇게 택시 타놓고선 혼자 배낭여행이라고 너무 아꼈나 보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탔다. 여행사마다 좀 다르기는 한데 무이네와 호치민 구간은 슬리핑 버스가 아닌 일반 좌석의 버스가 있다고도 하는데 우리는 슬리핑 버스를 탔다.


이제는 버스 트렁크 속 내 배낭을 누가 가져가지는 않을까 걱정하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버스 기사님이 주시는 비닐봉지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아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각도를 찾아 시트를 조절하고 눕는다. 슬리핑 버스도 이제 끝이구나.

작고 아름다운 무이네를 떠난 버스는 재미없는 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어갔다.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이랑 내가 좋아하는 연유 우유도 사고 과자도 사서 그녀랑 막 웃고 떠들고 있는데 신투어리스트 버스가 같은 휴게소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나짱에서 만났던 중국 대학생들이 내렸다.

베트남 우유는 사랑입니다 ㅋㅋ

사실 무이네에서 그녀와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들 중 한 명의 전화번호로 의심되는 연락처로 전화가 왔었는데 내가 받지 않았었다. 일단은 서로가 반가워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내 옆에 한 중국 여자가 있는 것을 보더니 더 이상 말을 걸진 않았다. 반가우면서도 미안하지만... 그녀가 더 소중하다 지금 나에겐.


다시 버스에 올랐고 그녀와 대화를 이어갔다.


“다음번엔 유럽 쪽으로 여행을 가보고 싶어.”

“난 가봤지!”

“오 어디 어디 가봤어?”

“독일, 프랑스, 체코, 벨기에,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영국!”

“우와 그렇게 여러 나라를 가려면 비자는 다 어떻게 받았어?”

“비자? 무비자인데 다?”

“헐 대박, 무비자?”

“하하, 한국인들은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 엄청 많아. 중국 빼고 거의 다 무비자야.”

“중국인들이 여행을 많이 다니지만 늘 비자 때문에 골치 아픈데, 무비자라니 너무 부럽다!”

“어때 한국 좋지?”

“그래도 중국이 더 좋아. 중국에는 없는 게 없어. 사막도 있고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없는 게 없어.”


역시 대륙의 자부심! 자부심에 취해있는 그녀에게 기름을 부어주었다.


“맞아, 한문이 어렵긴 해도 참 의미 있는 뜻글자인 것 같아.”

“오 한문 좀 알아?”

“그럼~ 나무 목 자 2개가 모이면 수풀 림이 되고, 사내 남과 계집 녀가 함께 있으면 좋은 호가 되잖아.”

“올~ 또?”

“익힐 습 자! 이거 참 대단한 것 같아.”

“어떻게?”

“익힐 습은 날개랑 백, 실제로는 흰 백 자이지만 흰 백이 아닌 일백백으로 해석하면 새가 날갯짓을 백번은 해야 날 수 있다, 뭐 이런 뜻 아닌가?”

“우와~~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I got it frommy Daddy~”

“하하 역시!”

“아빠랑 나랑은 한국 남자야!”

“이번에는 인정 ㅎㅎ”


“나 삼국지도 알아.”

“오 얘기해봐.”

“삼국지에 한나라랑 초나라가 장기 게임의 모티브잖아.”

“우와 장기도 알아?”

“그럼, 나 잘해 ㅎㅎ.”

“장기는 어디서 배웠어? 학교?”

“No, I got itfrom my Daddy~”

“하하 대단해 정말. 훌륭한 아버지시네.”


자꾸 띄워주니 아주 대륙의 자부심이 폭발한다.


“중국 참 대단하지? 땅도 넓고 사람도 많고 역사도 길고.”

“그래 대단해. 한국도 역사가 짧은 건 아닌데 중국은 참 길다.”

“한국이 뭐가 길어~”

(발끈하면서) “반만년이거든!”

“무슨 너네가 반만년이야.”


한국 역사가 고려 혹은 조선쯤부터 시작인 줄 아는 그녀에게 그동안의 연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우리는 고조선부터 시작해.”


하며 인터넷을 검색해 고조선의 영토를 보여주었다.


“거짓말. 이거 중국 아냐?”


또 발끈해서 중국 역사와 한국 역사를 비교해 놓은 데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자 봐봐. 중국 7천 년이지? 한국도 5천 년이야.”


나는 지금껏 내가 배우고 알아온 대로 설명을 했지만, 그녀는 고조선은커녕 고구려랑 발해 이런 나라들이 다 자기네 역사라고 말한다.

순간 예전에 배웠던 중국의 동북공정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중국에 대해 알고 있던 상식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그녀는 세 자매 중에 셋째.


나와 비슷한 또래이면 분명 소황제라고 불리는 1가구 1자녀 세대일 텐데 세 자매라니 최소한 집이 어마어마하게 잘 살던가 부모님이 최소 중국 인민 간부일 것이다. 벌금을 내면서까지 자녀를 셋까지 두었고 심지어 미국 유학도 시켰다. 똑똑한 줄은 알았지만 중고등학교 때 배웠을 역사를 기억하는 것 보면 나름 열심히 공부도 했었나 보다. 덕분에 말로만 들었던 동북공정의 심각성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우리나라가 얼른 통일이 되어야겠고, 정부와 역사 학자들은 더 힘내야 할 것이고, 전국에 계신 역사 선생님들 힘내세요. 아, 생각할수록 열 받네 ㅋㅋㅋ


급 애국자가 되었지만 양국의 충돌을 막고자 더 이상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언급하지 않았다.

서로 약간 어색해졌지만 호찌민에 도착하고는 이내 다시 가까워졌다.

나는 호찌민에 자칭 전문가이지만 그녀는 처음 왔기에 나에게 의지를 했다.

데탐 여행자 거리에서 내린 우리는 인근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갈까 하다가 그녀가 숙소에서 씻고 싶다고 하여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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