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피오 Jan 27. 2017

[베트남/호치민]D12_야밤진담

그녀와 나눈 마지막 저녁의 이야기

오늘은 도미토리가 아닌 각자의 방을 예약했고 우리는 옆방을 배정받고 들어갔다. 둘이 동시에 와서 각자 방을 달라고 하니깐 호텔 리셉션의 직원이 처음에는 ‘얘네 뭐야?’ 하는 표정을 짓다가 여권의 국적이 서로 다른 것을 보고는 더 이상의 추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이번 호텔 근처는 사실 나도 처음 와보는 동네이어서 아는 식당이 없었고 그냥 눈에 보이는 가까운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냥 볶음밥을 시켰는데, 그녀가 채소라면에서 라면 면발을 빼고 채소만 달라고 주문하는데 직원들이 다들 못 알아 들어서 결국은 그녀가 채소라면을 시켰고 면발들은 정말 입에도 대지 않고 국물과 채소만을 먹었다.


가끔 보면 식성이 참 유별나게 까다롭다. 세계 각 지역으로 여행 다니는 것 보면 참 신기하다.

어쨌든, 지금의 저녁식사가 그녀와 함께 먹는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식사 혹은 평생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식사일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여느 때처럼, 오래 알았던 사이처럼,

평범한 대화와 함께 저녁을 먹었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곤 리셉션 소파에 마주 앉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하노이 그 호스텔에서, 리셉션에서 만나기 전에 나 누나 봤다?”

“응, 기억나. 나도 너 봤어 씻으러 가면서.”

“진짜? 오오.”

“동생은 나 보고 무슨 생각했어?”

“예쁘다?”

“어쩜 그리 달콤한 말만 하냐 하하.”

“그럼 리셉션에서 나한테 중국인이냐고 물어봤잖아, 내가 중국인이었도 계속 이렇게 같이 여행했을 거야?”

“아니, 넌? 내가 한국인이었으면 같이 여행했을 거야?”

“나도 아니지.”

냐짱 바호 폭포

“누나랑 떨어져서 혼자 냐짱에 있을 때... 메신저로 계속 연락했잖아, 사실 혼자 여행 왔는데 혼자 있으니깐 뭔가 하고 싶은 게 없더라.”

“후훗, 거짓말! 폭포에서 다이빙했다고 자랑했잖아?!”

“아니~ 폭포는 이번 내 베트남 여행의 버킷리스트였고 오전에 호스텔 체크인도 하기 전에 우연히 한국 청년들 만나서 같이 다녀온 거고... 다녀와서 혼자 머드 스파 다녀오고 그냥 숙소에서 시간 때웠었어.”

“나도 사실... 달랏에서 한국 아저씨도 만나고 한국 여자애들도 만났는데 왜 자꾸 한국 사람들만 만나는지... 근데 아무리 한국 사람들을 만나도 네가 생각나고 외로운 기분이더라.”


“내가... 누나 좋아하는 거 알지?”

“응…”

“누나는?”

“나는 약혼자가 있어...”

“그래서?”

“있는데... 아 모르겠어 이게 무슨 감정인지, 왜 너를 만나게 되었는지.”

슬리핑 버스에서 한 잠 자고 이른 아침에 들렸던 휴게소

“동생은 나 언제부터 좋았는데?”

“하노이에서 호이안으로오는 버스에서 자다가 깼는데, 누나 자는 모습이 너무 예쁘더라...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전지현 같았어.”

“하하 또 달콤한 말 한다. 거짓말쟁이!”

“아냐~ 진짜야!”

“나는 사실...”

“사실?”

“호이안에서 저녁때, 피곤하고 지치고 외롭고 약혼자랑 메신저로 싸워서 기분 진짜 별로였는데... 동생이 나 많이 위로해줬잖아. 그때부터 조금 의지되면서 마음이...”

호이안 터미널에서 손 다듬어주던 그녀

“그리고 그때 기억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언제?”

“호이안 버스터미널에서 내가 너 손톱이랑 손등 다듬어주고 핸드크림 발라줬을 때.”

“응 기억나지. 얼마나 행복했는데!”

“사실 그날 내가 먼저 터미널에 도착했었는데, 여행사(터미널)에서 일하는 베트남 남자가 나한테 작업 걸어왔어.”

“하하, 뭐라고 그랬는데?”

“버스 시간 하루만 미루면 자기가 무료로 표 바꿔주고 저녁도 사주겠다고 데이트 하자더라고.”

“그래서?”

“그랬는데 나 남자 친구 있다고 했어.”

“진짜?”

“응, 그리고 동생이 터미널에 도착했고...”

“하하, 그래서 내 손 캐어해 준 거야?”

“응 ㅋㅋ.”

“나 완전 이용당했네?”

“글쌔, 이용한 걸까?”

“무이네에 먼저 도착해놓고, 왜 먼저 움직이지 않았어 동생?”

“그냥... 그냥 누나가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었어.”

“So sweetie.”


“그럼, 무이네에서 만났던 대만 여대생들과는 무슨 얘기 했었어 누나?”

“왜? 하하 궁금해?”

“궁금하지 그럼~”

“무슨 사이냐고 물어봤잖아?”

“그랬지? 아무 사이도 아니라 했었지 아마?”

“응 그랬더니, 왜 아무 사이도 아니냐고, 여행 왔으면 이런 재미도 있는 거 아니냐고 당돌하게 물어보더라고.”

“오 완전 적극적이네 대만 여대생들.”

“하하 마음에 들어? 연락해 그럼.”

“무슨~ 아니야 하하.”

“아무튼, 걔네들이 그렇게 물어봐서 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선을 그으려고 동생한테 약혼자 있다고 말했던 거야.”

“정말 약혼자가 있어?”

“…”


“동생, 나 너무 힘들어.”

“미안...”

“어떻게 해야할지정말 모르겠어...”


끝을 알 수 없는 대화는 한참 이어졌다. 아주 오랫동안...

한국말과 중국말로 대화하지 않았다. 영어로만 대화를 이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이제 들어가서 잘 꺼야. 내일 아침 5시 반에 여기서 출발해야 해.”


아침 8시 전에 베트남을 출발하는 스케줄이었기에 일찍 나가야만 했다.


“그래, 오늘 밤은 끝이지만 내일이 또 있으니깐,,,”

“응, 잘 자. 나 잘게.”


냉정하게 더 이상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나도 내일 저녁에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그녀와의 헤어짐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백만 가지 생각 때문에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트남/무이네]D12_중국인과 대화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