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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28. 2017

2nd_시베리아 횡단열차, 그 처음

솔직한 첫 탑승 소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


11월의 마지막 화요일.

한국과는 다른 눈 덮인 길, 그리고 연해주의 강추위 영하 10도.


마트에서 장도 봤다. 탑승 준비 완료.

마트 건너편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역으로 향했다.

어렵지 않게 입구를 찾았고, 비행기를 탈 때처럼 짐과 몸의 보안검사를 받았다.

캐리어, 백팩, 카메라 가방, 마트에서 본 물품을 비닐봉지에 담아 계단을 내려갔다. 


'아 실물 티켓 교환할걸...'


사실 한국에서 예매와 금액 지불을 끝냈기에 실물 티켓은 필요 없다. 이티켓이 오히려 보기 더 쉽다. 실물 티켓에는 영어도 없다. 거의 그림 보고 맞추는 수준. 그래도 기념품으로 가지고 싶었으나 이미 승강장에 내려왔더니 이 짐들을 가지고 다시 역사로 올라갔다 내려오고 싶지 않다. 열차는 이미 대기 중이고 사람들은 탑승을 위해 자기가 탈 칸 앞으로 삼삼오오 찾아가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9288km
그냥 딱 봐도 전부 러시아 현지인들

007 열차의 15번 칸.

내 생애 첫 시베리아 횡단 열차이다. 두근두근.


많은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드디어 내가 탄다.

관련 책자는 거의 없거니와 읽어도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유튜브? 원하던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블로그? 그냥 예매 때 도움받은 정도.


내가 사전에 습득한 정보

- 열차번호가 앞 번호일수록 새 기차이다

- 15번 칸에 자리가 있으면 15번 칸으로 타야 한다

- 무조건 1층 자리를 확보하라

- 러시아 사람들은 영어를 1도 못한다

- 씻는 걸 포기해라

- 금연, 금주

- 열차의 정차시간이 길 때는 승강장을 떠나 역사로 가서 음식물을 구매할 수 있다

- 6인실이 2, 4인실보다 안전하다

- 6인실은 구분상 6인실이지 실제로는 54인실이다 (칸막이가 없다)


이 정도?


아 몰라,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겠지 뭐.

9288 인증샷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철도 직원이 나타났다. 흔히 그냥 차장이라고 부른다. 각 칸마다 2명씩 있다. 2교대로 근무한다. 이티켓과 여권을 검사받고 드디어 열차에 올랐다. 계단의 경사가 은근히 있고 계단이 좁아서 오르기 쉽지 않았다. 여자 혼자이면 캐리어 끌고 올라가기 조금 벅찰 듯?

솔직한 첫인상은 '낡. 았. 다.'

분명히 앞 번호일수록 새 열차라고 했는데, 007 열차가 이 정도이면 뒷 번호이면 얼마나 더 심하다는 걸까?


자리를 찾아가서 테이블을 만지작, 짐을 넣어보고 올려보고 이불을 옮겼다가 깔았다가 이것저것 신기하게 만져보고 연구했다.
기차에 딱히 사람도 안 많아서 이리저리 연구를 하고 있는데 불쌍한 동양 남자애가 불쌍했는지 주변에 있는 아가씨랑 할머니가 러시아말로 막 뭐라 뭐라 하면서 이것저것 설명해주신다.


이럴 때 필요한 말 "스파시바"

러시아의 꿈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 현실은 여기도 언다.

차창 밖으로 서서히 얼고 있는 연해주의 앞바다가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것은 잠깐이다. 이제 이 바다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내륙으로만 달린다. 앞으로 약 6~70시간이 지나야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러시아 철도청 앱에서 확인 가능하다. 모든 시간은 모스크바 시간이 기준이다. 오래 정차하는 역에서는 근처를 살짝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미리 시간표를 준비 못했는데, 휴대폰 데이터도 안된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차내에다 붙어있다.

참고로 내가 탄 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 이 구간을 다 가는 열차가 아니고, 블라디보스토크-노보시리르스크 까지만 간다. 열차에 따라 전 구간을 다 가는 것도 있고 중간중간만 가는 것도 있는 듯하다. 

뭐 예매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예를 들어 나는 중간인 이르쿠츠크에서 내렸다가 며칠 놀고 다시 모스크바행을 타야 하는데 이르쿠츠크에서 타는 기차가 블라디에서 오는 게 아니고 그나마 근처인 치타나 울란우데 이런데서 출발하는 기차라면 내가 탔을 때 아직 남이 한 번도 사용 안 한 자리를 얻을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던 자리가 내 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하얀통이 뜨거운 물통. 오른쪽 (겉모습만) 무섭게 생긴분이 차장님.
우리와 같은 220볼트 콘센트

전기로 끓이는 줄 알았던 온수는 실제로 불을 때우더라. 각 칸마다 1개씩 있는데 물이 모자라지 않도록 차장님이 수시로 체크하신다.

전기 콘센트는 1칸에 총 4개가 숨어있다. 더 있는 경우도 있지만 6인실 기준으로 4개라고 생각하면 된다. 양쪽 칸 끝에 1개씩 있고, 양쪽 칸 끝에 있는 화장실 내에 또 1개씩 있다.


https://youtu.be/ksQHkRb4tpQ

시베리아 횡단열차 화장실 사용편

화장실은...

일단 기본적으로 열차가 멈춰 있을 때는 사용을 못한다. 보통은 잠가둔다. 정차 전후 30분은 사용 못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다.
왜 그런가 궁금했는데... 사용해보면 알겠지만, 변기랑 세면대 물이 별도의 정화조 시설로 모이는 게 아니고..... 그냥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다.

얼음을 깨는 차장님을 보고 처음에는 왜 저기만 얼까? 생각했었다

열차가 역에 멈추면 차장 아줌마 아저씨가 내려서 출입문 근처에 있는 얼음을 막 깨시는데, 거기 위치가 내 생각엔 세면대 물 내려오는 곳이다.
그리고 변기는... 나중에 직접 한 번 내려보면 공감할 것이다. 바닥이 보인다.


열차에 타서 자리에 앉아 있으면 차장님이 오셔서 이불 커버랑 수건을 주신다. 물론 티켓을 예매할 때 모든 금액 포함으로 샀기에 이 세트를 주신다. 나는 정말 깔끔해서 내 침낭을 쓰겠다며 바리바리 싸들고 사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걸 사용하는 게 낫다. 겨울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딱히 냄새가 나거나 찝찝하거나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정말 짧게 몇 시간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다 이것을 구매해서 사용한다. 아 내릴 때 반납해야 하니깐 수건 안 잃어버리게 주의해야 한다. 내 수건을 누가 훔쳐가서 내릴 때 당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커버 세트를 받으면 제일 먼저 매트리스에 커버를 씌우고 배게에도 씌우고 실내 온도에 따라 덮는 이불에도 씌우거나 아니면 커버만 덮고 자도 된다.


나 빼고 다 러시아인이다.

이 사람들 말끝마다 욕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착하다.

러시아어 자체가 어쩌고 스키 저쩌고 스키 빠카 이렇다 보니 욕처럼 들리고 거세 보이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러시아에서 만났던 교포가 그랬다. 러시아의 불곰 이미지와 거센 이미지는 다 러시아와 경쟁했던 미국의 할리우드가 만들어 낸 허구가 더 많다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객실이 만원이 아니었다. 역을 지나갈수록 한 명 두 명 타면서 타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로망의 철로이지만 그 철로가 현지인들에게는 소중하고 일상적인 대중교통 수단인 것이다. 


아침 11시에 내가 탄 6명 자리가 처음에는 나랑 거친 듯 츤데레였던 젊은 러시아 누나 둘로 시작해서 12시간 후에 도착한 하바롭스크에서는 만석이 되었다.


혼자 탄 젊은 여성, 짐이 유독 많았던 아주머니, 승강장에서 배웅 나온 지인들과 눈물의 이별을 했던 할머니와 아주머니(모녀 같았음), 젊은 어머니와 인형같이 귀여운 아가, 자꾸 나한테 이것저것 빌려가던 아저씨,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상징과 같은 수많은 군인들.


나는 이제 이들과 함께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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