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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28. 2017

3rd_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삼시세끼

셀프 밥 먹기와 식당칸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 밥은 어떻게 해야 할까?


30년 넘게 살면서 러시아 음식이라곤 먹어본 적이 없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식당칸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입에 안 맞으면 반강제 다이어트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해서 탔다.


4종류의 봉지라면 10개.

물론 컵라면을 부피를 줄여서 포장하는 방법도 많지만 나는 뽀글이가 더 편하다. 어쩔 수 없는 군필자.


5개의 각기 다른 맛의 전투 식량.

한국인을 쌀을 먹어야 한다.


말린 누룽지 약간.

물을 붓고 불려서 먹을 계획인데 담을 용기를 생각 못했다. 멍청이.


블라디보스토크 마트에서 산 먹거리들.

빵, 잼, 과자, 과일, 초콜릿 등.


물론 사전 준비한 식량들은 후에 핀란드에서도 먹으려고 넉넉히 샀다.

현지에도 한국산 도시락 컵라면이 많고 구하기 쉽다. 이것만 먹어도 사실 될 듯.

나는 도시락 컵라면 용기에 누룽지를 불려서 먹기도 했다.

밥시간을 구별하는 노하우.


1. 남들이 먹을 때 먹는다. 단, 뜨거운 물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리면 약간 식을 물을 받을 수도 있다.

2. 처음에는 괜찮지만 나중에는 시차가 계속 변해서 살짝 헷갈린다. 그냥 배고플 때 먹는다.

3. 식당 이모가 방문 판매하러 오시는데, 그때가 약간 밥 타임이기도 하다.


나름 입에 물리지 않게 먹겠다고 같은 음식을 2번 연속 먹지는 않았다.

빵 먹으면 다음에는 라면 먹고 그다음에는 밥 먹고 이런 식으로 먹었다. 식당 이모가 방문 판매를 은근 자주 오시는데 밥시간에는 식사가 될만한 빵 종류를 보통 들고 오시고 다른 시간에는 과자 같은 주전부리를 들고 오신다. 


꽃*랑 과자 1개에 100 루블, 2000원 정도인데 크다.

빵 1개에 6~70 루블, 1500원 내외인데 소시지 빵이 특히 맛있다.

탄산음료 500ml 기준 100 루블 이하, 2000원 미만이다. 기차 안에서 사는 거랑 승강장 매점이랑 가격이 조금씩 다르다.

해바라기씨 100 루블 이하, 2000원 정도인데 이거 까먹는 재미가 솔솔 하다.

바디랭귀지 라는 훌륭한 언어가 지구상에는 존재한다

어느 정도 준비를 하면 굳이 식당칸을 가지 않아도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알아서 방문 판매도 오신다. 처음에 빵 하나 샀더니 그다음에는 과자를 추천하신다. 과자를 샀더니 그다음에는 해바라기씨를 추천하신다. 호갱인 줄.

심지어 뭐 먹고 싶다고 하면 다음번에 올 때 챙겨서 오신다 ㅋㅋㅋㅋ

처음에는 강매 이모라고 불렀으나 이모 없었으면 해바라기씨의 신세계를 몰랐을 것이다. 고마운 이모님!


뽀글이야 뭐 봉지라면이랑 나무젓가락만 있으면 된다. 조금 편하게 먹으려면 빨래집게 정도? 남은 국물을 변기에 내렸다.

전투 식량도 전역하고 처음 먹어봤다. 물론 군대에서 먹던 거랑은 다르다. 엄청난 MSG의 맛이 느껴지지만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빵에 발라먹는 잼은 딸기잼이 제일 맛있었다. 열차에서 만났던 한국인 중에 연유를 발라먹는 친구도 있기는 했었다.


가끔 열차에 탄 군인들과 친해지면 본인들 전투식량을 나눠주기도 한다.

스튜와 굴라시

이런 거 주는데, 그냥 먹으면 차가워서 맛없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포트 위에 올려놓으면 따뜻하게 댑혀진다. 중간에 한번 가서 뒤집어주면 더 좋다. 물론 나도 이 방법을 몰랐다. 군인들이 굴라시를 줘서 구경하고 있으니깐 옆에 아주머니가 들고 따라오라더니 포트 위에 올려주셨다.


열차를 처음 탔을 때 다른 칸으로 넘어가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내 짐을 누가 훔쳐가지는 않을까?

옆 칸에 수많은 군인들이 다 나만 응시하는데 시비 걸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그냥 가면 되지.


귀중품을 챙겨 대장정의 여행을 떠나면 식당칸의 다다를 수 있다.

보통 뒤쪽에 위치한 듯하다.

한 번은 열차가 오래 정차할 때 승강장으로 해서 식당칸에 가봤는데, 열차가 정차할 때는 또 장사를 안 한다고 문을 안 열어주더라.


가는 길에 2등석인 4인실도 봤다. 실내가 깔끔하고 각 방마다 문이 있는데 화장실이 방 안에 있지는 않고 6인실 칸과 마찬가지로 양쪽 끝에 있다. 내부도 똑같다. 단지 사용하는 사람이 적어서 경쟁이 덜 치열한 정도?

4인실 칸의 복도.

여자 혼자 타면 더 위험하다고는 하는데 케바케가 아닐까 싶다.

남자 혼자 타더라도 나머지 3명이 객차 내에서 문 닫고 술만 먹는다고 하면 결코 즐거운 여행은 아닐 것 같다.

식당칸 내부. 여름에는 에어콘이 나와서 만석이 된다고 한다.
메뉴 주문하는 바. 오른쪽 뒤쪽으로 1등석인듯.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라고 생각하고 시켰는데 양이 많지 않았다.

나름 아침 메뉴 점심 메뉴도 따로 존재하고 영어 메뉴판도 있다. 한 번쯤은 먹어 볼만한 것 같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혼밥을 하다 보면 우선 김치가 엄청 땡긴다. 단무지라도 가져갈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외롭지는 않다. 객실에 나 말고 50여 명이나 더 있으니.


아침 누룽지, 점심 빵, 간식으로 해바라기씨랑 과자, 저녁 라면 이런 식으로 나름 하루의 메뉴를 구상하고 계획대로 먹었다. 입에 물릴까 봐 라면도 4종류나 챙겨갔다. 친해진 러시아인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도 재미있다. 밥을 먹고 난 후에 열차에서 빌린 컵에 홍차도 한 잔 입가심으로 해주면 더욱 좋다. 참고로 난 각설탕 1개를 추가해서 넣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들이붓더라. 기호에 따라 우유나 연유도 좋을 듯.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탑승 막판에 만난 한국 청년과 내 전투 식량을 같이 나누어 먹은 적이 있었다. 한국 떠난 이후에 쌀밥을 처음 먹어본다고 했다. 먼 이국에서 함께 나누어 먹었던 그 따뜻한 밥 한 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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