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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28. 2017

4th_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절반은 군인이다

군인이 많은 이유는?

인스타그램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 라고 검색을 하면 심심찮게 러시아 군인들 사진과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실제로도 확실히 군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자신 있게 내복만 입고 다니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내가 처음으로 군인들과 만난 건 탑승 첫날 하바롭스크 역이었다.

첫날에는 워낙 저녁이었기에 탄 것만 확인하고 잤다.

둘째 날 점심 무렵 호기심 충만해 보이는 군인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Whereare you from?"
"I'm from Korea."

대화가 끝났다. 더 이상 영어를 하지 못했다 이 녀석들...
그냥 내가 떠들었다.

"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탔고 이르쿠츠크까지 가." 


라고 했더니 용케 알아듣고 본인들은 사할린에서 왔는데 하바롭스크에서 지금 이 열차로 갈아탔고 울란우데까지 간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 이름은 세르게이라고 한다. 러시아에서 세르게이는 우리나라 '철수' 쯤 되는 것 같다. 엄청 흔한 이름이다.

저녁 식사 때 세르게이가 먹으라며 굴라시와 스튜를 줬다. 다 먹고 맛있다고 엄지 척 해줬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4개나 더 줬다. 분명 선물 받은 건데 짬 처리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녀석들을 관찰했다. 딱히 할 일도 없으니 뭐.


우선, 옷을 홀랑 홀랑 잘 벗는다.

팬티 빼고 다 보여준다. 내복 하의만 입고 상의는 완전 탈의하고 다니기도 한다.


해바라기씨를 엄청 까먹는다.

이건 나도 잘 까먹으니 패스.

카드놀이를 즐겨한다.

어깨 너머로 관찰을 좀 해봤더니, 원카드랑 비슷하다. 약간 다르긴 한데 한 두 번 해보면 적응할 것 같았다. 껴달라는 눈빛을 발사해봤으나 직접 말로 하지 않았더니 껴주지 않았다. 치사 뿡.


자, 그렇다면 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는 군인이 많은 걸까?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얘네 거의 다 전역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군인들이라고 한다.

러시아도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라고 한다. 대신 1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군대에 갔다가 전역 열차에 탑승한 이들은 보통 20살 21살.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1년간 세상과 단절되었다가 고향행 열차에 탑승한 것이다. 그래서 가끔 보면 있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군인들이 한국 여성들에게 들이대는 현상이 있는 것 같다. 아주 가끔.


근데 얘네 생긴 거랑 다르게 다들 좀 순수하다. 자기들도 하는 얘기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집에 가는 군인들은 촌놈들이라 착한데, 모스크바나 상트 페테르부르크 가면 무서운 사람들 있으니 조심하란다. 서울 가면 코베 간다는 거랑 비슷한 듯.


6개월간의 훈련소. 이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리고 남은 6개월간의 자대 생활.


열차 내에서 보면 군인들이 약간 끼리끼리 노는 경향이 있다.

보통 같은 고향 친구들끼리 몰려서 논다고 한다.


군인들이 고향역에서 내릴 때 보면 가족 혹은 애인이 마중 나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전역 군인이라는 걸 몰랐을 때는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전역해서 집에 도착했다고 생각해보니 이해가 됐다.

온 가족이 나와 성대하게 환영해주는 경우도 있고, 애인이 풍선이랑 꽃을 가지고 와서 진하게 키스로 환영해주는 것도 봤다. 처음에는 프러포즈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전역 이벤트였다.


그리고 무료로 타는 것 까지는 모르겠는데 보통 촌놈들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많이 타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외국인 처음 볼 수도? 그렇기에 호기심도 많다. 실뜨기를 가르쳐줬더니 시도 때도 없이 실뜨기를 하자고 달려들어 곤혼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없는 살림에 먹을 것도 나눠주고 물어보면 잘 설명해주려고 노력하는 게 귀엽다.


병영 수첩에 있는 달력에 X표를 해가면서 전역 날짜를 기다리는 건 우리나 러시아나 다를 것 없었다.


아이폰에 관심 많고, 한국 여자에 관심 많고(비단 한국 여자뿐일까), 고프로 셀카봉에 놀라는 순수한 청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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