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피오 Feb 04. 2017

19th_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삽산? 난 넵스키 익스프레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박,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3박, 알혼섬과 이르쿠츠크에서 3박, 또다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4박, 모스크바에서 5박, 총 16박 17일.


그렇다 집 나온 지 벌써 17일째다.


러시아에 대체 볼게 얼마냐 있길래 그렇게 오래 있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동해서 또 5박씩이나 하냐고?

이게 다 핀란드의 무시무시한 물가 때문이다. 핀란드 숙박 일정에 맞추다 보니 러시아 체류기간이 늘어났다. 그럼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딱 2번만 탈게 아니고 중간중간 내렸어도 될 법하다. 하지만 타이밍이란 언제나 날 기다려주지 않는 법. 내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비용 지불까지 끝내고 핀란드 숙소를 결정했기에 중간에 시간이 근 열흘이 생겨버렸다. 모스크바도 좋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도 좋다니깐 5박씩 사이좋게 배분했다.

주변에서 다들 그랬다. 모스크바는 모르겠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엄청 좋다고.

근데 난 모스크바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이르쿠츠크와 알혼섬이 엄청 좋았다. 기대도 컸고 만족도도 좋았다. 그런데 모스크바는 정말 기대를 하나도 안 하고 왔다. 아침에 10시 넘어야 하늘이 밝아지고 눈이 안 내려야 오후 4시쯤 어두워진다. 눈이라도 내리면 하루 종일 어둡다. 덕분에 실컷 늦잠을 자면서 하루에 한 개, 많아야 두 개? 정도를 다녔다. 체류 일자가 길어서 얼추 모스크바를 다 본 것 같다.

겨울에 왔기에 더 러시아의 심장다웠는지도 모르겠다.

막판 준비 때 워낙 핀란드에 집중하느라 모스크바는 가서 공부해야지 하고 지명만 몇 개 적어서 출국을 했다. 붉은 광장에 회전목마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며 각종 SNS에 올라오는 사진들에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씩 내리는 눈이 더해질 때는 포토샵이 더해진 다른 유럽의 야경들이 흉내도 못 내는 생동감마저 있었다.


그저 한 끼 밥을 먹기 위해 들어갔던 어린이 백화점은 나의 동심을 어릴 적 큰 선물을 받겠다며 축구양말을 문고리에 걸어놓고 잠들었던 소년으로 돌려주었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멀리 가보려고 갔던 모스크바 국립대는 왜 이 건물이 1988년까지 유럽에서 제일 높았던 건물인지 두 눈으로 확인시켜주었다.

밤새도록 눈이 내려도 아침에 나와보면 제설작업이 끝나 있었다. (다른 도시보다 모스크바가 확실히 빠르다)

겨울에 춥다고는 하는데, 실내는 땀나도록 덥다. 추우면 어디든 피할 곳이 있다.


소치 올림픽을 계기로 치안은 더욱 좋아지고 영어가 가능한 곳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모스크바 공항 안에서도 영어 가능한 러시아 사람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이젠 러시아 철도청 홈페이지 어플에서 영어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상트 페테르부르크행 고속열차 티켓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그래도 아직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한인지 북한인지 꼭 물어본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으로 나왔던 '사십춘기'에서도 정준하와 권상우에게 러시아 아주머니가 물어봤었다. 서울인지 평양인지. 

이대입구역 저리 가라 할 만큼 깊은 지하철 역들은 방공호로 들어간다는 첫 느낌과 예술의 도시는 파리이지만 예술의 지하철 역사는 모스크바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 배차간격 짧고 가격 저렴하고 노선 다양하고. 예전에는 지하철역에 경찰이 있어도 소매치기가 활개 치고 다녔다던데 다 옛날이야기이다. 치안도 정말 좋고 깔끔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10년 전 파리에서 당했던 인종차별은 모스크바에서 찾아볼 수도 없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편에서도 설명했지만, 언어 자체가 우리가 듣기에 거세 보이는 거지 실제로는 마음 착한 사람들이다. 노약자가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으면 아무 말도 없이 남자들이 가서 짐도 들어준다. 우리말로 츤데레.


음식도 무무 빼고는 다 맛이며 가격이며 만족한다. 이렇게 달게 먹는데 왜들 다 날씬한지 참.


사람들이 모스크바라고 하면 사실 붉은 광장에 있는 일명 테트리스 성인 성 바실리 대성당만 떠올리는데 모스크바 생각보다 괜찮다. 볼 것도 많다.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모스크바만의 매력이 있다. 동유럽과 비슷한 듯하면서 다르다. 미국을 싫어하는 것 같으면서 좋아한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에 빈자리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진심 도대체 유인 우주선까지 쏘아 올린 나라에 자국 자동차 브랜드도 하나 없는지 모르겠다. (한 개 있다고는 들었다)


알다가도 모를 것 같은 모스크바.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에 와서 모스크바 강변도 걸어보고 승리 광장도 한 번 가봐야겠다.


모스크바 끝.



아 모스크바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 가는 이야기.


보통 검색을 해봤으면 크게 2종류의 열차를 봤을 것이다. 8시간짜리 야간열차와 4시간짜리 삽산이라는 고속열차. 근데 난 이 둘 중 하나가 아닌 완전 다른 열차를 탔다.

상트행 열차는 전부 레닌그라드역에서 출발한다. 레닌그라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이다.

невский экспресс(넵스키 익스프레스)

사실 나도 이름 잘 몰랐는데 기차에 쓰여 있었다. 넵스키 익스프레스라고.


삽산이 KTX라면 넵스키 익스프레스는 새마을호쯤 될 것 같다.

둘이 소요시간이 5분밖에 차이 안 난다. 아무래도 값은 넵스키 익스프레스가 조금 더 저렴하다. 대신 넵스키 익스프레스는 하루에 딱 한대 있다. 이유는 나도 잘...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마찬가지로 모스크바 - 상트페테르부르크 구간도 일찍 예약할수록 값이 싸기에 한국에서 아예 예매를 했다. 예매를 하는데 유독 저렴한 가격이 눈에 띄어서 예약을 했다.

삽산 제일 싼 좌석이 보통 2000~5000 루블이었다. 엄청 싸게 사신 분은 1200 루블까지 보기는 했다.

아무튼 내가 예매할 때는 2500~3000 루블 사이였다. 그런데 유독 한대가 1500 루블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좌석이 2명씩 앉는 것이 아니고 3명씩 앉는 배열이었다. 뭐로가도 싸게 가면 좋지 하고 예매를 했다.

객실 한 칸에 3명씩 마주 보고 앉는 배치였다. 짐을 저 머리의 위에 위에 올려야 했지만 그것 외에는 좋았다. 예매를 할 때 식사 포함으로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샌드위치랑 초콜릿, 물과 주스에 물티슈, 안대, 귀마개까지 줬다. 다른 삽산 타신 분들 블로그에서도 가끔 보긴 한 것 같은데 1500 루블, 약 3만 원에 이 정도 서비스라니 너무나 좋다. 


*러시아 철도청에서 예매할 때 오후 1시쯤에 삽산이라고 안 쓰여있고 운행시간 다른 것보다 5분 길고 좌석배치가 2열씩이 아니고 3열씩인 열차가 넵스키 익스프레스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8th_쇼핑몰은 역시 '아피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