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 마무리, 기차로 핀란드 넘어가기
이번 여행 일정의 3/4이 지났다. 이제는 핀란드로 떠날 시간이다.
핀란드로 떠나기에 앞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대중교통 정리 한번 하고 가보자.
우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별도의 교통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도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무언가 지갑 속에 넣고 찍는 걸 보면.
사실 상트에서는 모스크바에서와는 다르게 거의 걸어 다녔다. 지하철은 진짜 거의 안 타고 탈 수 있으면 버스를 탔다. 그래도 지하철 먼저 정리.
모스크바에는 아마 지하철을 1회권 사서 타면 50 루블인가 그럴 것이다. (트로이카 카드 사용 시 32 루블) 상트는 1회에 35 루블이었다.
상트도 모스크바처럼 에스컬레이터가 깊고 길다. 승강장에 내려가면 스크린 도어가 눈에 띈다. 완전 안 보이게 막아놔서 문 열리기 전까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에스컬레이터, 승강장, 심지어 스크린 도어에도 광고들이 붙어 있었다. 물론 서울에서야 흔하니깐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모스크바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하던 광고판들을 보니 좀 신기하기는 했다.
다음은 버스. 버스는 1회에 30 루블이었다. 간혹 40 루블 짜리도 있다. 트램은 안 타봐서 모르겠는데 검색해봤을 때는 30 루블이었다.
트램을 못 타봐서 아쉽다. 이르쿠츠크에서는 트램이 노선도 좋고 탈만했는데 모스크바와 상트에서는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
버스는 요금 지불하는 스타일이 2종류였다. 버스에 같이 타는 차장 아주머니께 지불하거나 내릴 때 기사님께 직접 지불하는 방식이 있었는데 구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탔는데 누군가 돈을 받으러 오면 내고, 아무도 신경을 안 쓰면 내릴 때 기사님께 드리면 된다. 하차벨도 있어서 편했다.
진작에 했어야 하는데 막판에 생각나서 러시아의 기차역 이름에 대해 정리를 해본다.
서울에 가면 서울역이 있고, 파리에 가면 파리 북부역이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역이 없고 상트에는 상트 역이 없다.
모스크바에서 상트로 가려면 상트 역으로 가야 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이 레닌그라드인데 모스크바에 있는 레닌그라드 역에서 기차를 타야 상트에 올 수 있다.
상트에서 모스크바로 가려면 모스크바 역으로 가야 하고, 상트에서 핀란드로 넘어가려면 핀란드역으로 가야 한다. 신기하게도 출발하는 도시에 있는 역 이름이 도착 도시의 지명이다.
실제로 나는 모스크바에 있는 레닌그라드 역에서 넵스키 익스프레스를 타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모스크바 역에서 내렸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핀란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핀란드 역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패턴이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만 나타난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역이 있었고 이르쿠츠크에는 이르쿠츠크 중앙역이 있었다.
*이르쿠츠크는 Irkutsk-pass(이르쿠츠크 중앙) 역과 Irkutsk-sort역 2개가 있다.
러시아에서 핀란드로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단 두 나라가 붙어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바로 위에 붙어 있는 나라가 핀란드이기 때문에 다양한 루트가 존재한다.
1. 비행기
2. 버스
3. 배
4. 기차
- 러시아 기차
- 핀란드 기차
나는 핀란드 기차를 타기로 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알레그로라는 핀란드 헬싱키행 기차를 탄다. 상트에서 헬싱키까지는 약 3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그런데 나의 목적지는 헬싱키가 아니다. 위 지도의 중앙에서 살짝 위에 있는 위치(별)가 로바니에미라는 동네인데 거기까지 가야 한다. 핀란드 철도 사이트에서 상트부터 로바니에미까지로 설정했더니 중간에 한 번 환승해서 로바니에미로 간다. 그 한 번의 환승이 헬싱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티꿀리라 라는 동네인데 서울로 따지면 광명이나 수원쯤 될 것 같다.
상트에서 헬싱키(티꿀리라)까지 3시간, 헬싱키(티꿀리라)부터 로바니에미까지 야간 기차를 타고 12시간 걸린다.
http://blog.naver.com/cooldaehyun/220870702600
위 링크에 가면 핀란드 기차 이용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본격적으로 기차 타고 상트에서 핀란드 넘어간 썰 시작.
* 핀란드역 (Финлaядский вокзaл)
* 주소 : Sankt-Peterburg-Finl.으로 검색 혹은 Ploschad Lenina 6
핀란드 역에 도착해서 남은 루블을 계산해보니 300 루블 조금 넘게 남았다. 마트에 갔는데 남겨서 뭐하겠나, 그냥 다 쓰자하고 옆 건너편에 있는 마트에 갔다.
'와 엄청 한국사람처럼 생겼다'
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길래 잠시 쳐다봤는데 그 아저씨가 옆에 일행한테,
"여기 쌀은 잇갓디우?"
라고 얘기하길래 진심 깜짝 놀랐다.
러시아에 와서 처음으로 북한 사람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순간 겁이 나기도 하면서 반갑기도 하고.
요새 러시아에 북한에서 보낸 월드컵 경기장을 짓는 노동자들이 많다고 했는데 옷차림이나 행색이 노동자 같지는 않고 고위 공무원 같았다. 그래서 더 쫄았는지도...
얼른 계산하고 나왔다.
러시아에 한 3주 있었더니 마트에서 계산할 때도 능구렁이가 되어있었다.
마트에서 계산할 때 계산하시는 분이 처음에 하는 공식 질문이 있다.
"봉투 살래?" (물론 러시아어로 물어본다)
이때 고개를 내어 저으며 아니라고 표하면 봉투를 안 주고, 봉투값도 안 받는다. 이 정도는 뭐 이제 귀에 들린다.
근데 이게 끝이야... 러시아 안녕.
나름 면세점도 있다.
15시 30분에 상트를 출발하는 알레그로를 탔다. 손에 짐도 많고 정신도 없어서 사진을 못 찍었는데 알레그로는 그냥 2자리씩 있는 일반 열차인데 확실히 그동안 탔던 러시아 열차들과는 퀄리티가 다르다.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도 훌륭하다. 우리나라 서울에서 춘천 가는 ITX와 비슷한데 더 좋은 느낌이었다. 와이파이도 느리지만 잡힌다. 핀란드 열차라고 열차 내 음식도 핀란드 물가다. 비싸다.
아, 그런데 또 역방향이다. 지긋지긋하다. 내가 멀미를 안 해서 다행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티꿀리라(Tikkurila)역까지 알레그로를 타고,
티꿀리라(Tikkurila)역에서 로바니에미(Rovaniemi)까지는 야간 침대열차를 탄다.
버스를 타고 러시아에서 핀란드 국경을 넘으면 중간에 국경심사대 있는 곳에서 내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차를 타고 넘으면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기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해준다.
핀란드와 러시아 국경에 다다르기 전에 러시아 군인인지 공무원인지 암튼 누가 제복 입고 온다.
여권을 보고, 입국 때 받았던 종이를 보고 회수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마지막에 러시아에서 무엇을 샀냐고 물어본다.
당당하게 말했다.
"마트료시카 샀는데요."
그랬더니 씨익 웃더니 잘 가란다. 스파시바 & 빠까.
드디어 국경을 넘었다. 역도 제법 핀란드스럽다.
북유럽 감성 나오나요 크으으으
국경을 넘어 핀란드 Vainikkalan역에 도착했다. 시차도 1시간 바뀌었다. 이제 한국과 7시간 차이가 난다.
덕분에 러시아 시간으로 15시 30분에 출발해서 핀란드 시간 17시 43분에 도착하는 이 열차는 약 3시간을 달린다.
핀란드 입국심사도 기차에 앉아서 진행됐다. 여권 검사랑 질문 몇 가지 하는데 산타랑 오로라 보러 간다고 그러면 별도의 추가 질문도 없다.
알레그로는 열심히 달려 티꿀리라역에 도착했다. 뭐 거의 헬싱키에 다 왔다고 보면 된다. 암튼 여기에서 2시간 후에 로바니에미행 야간열차를 타면 된다. 2시간 동안 뭘 해야 하나 하고 검색을 해봤는데, 티꿀리라 역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다. 아마 내가 티꿀리라 역에 대해 포스팅하는 첫 번째 한국인이 될 수도 있다.
역사가 쇼핑몰이랑 복합된 느낌이다. 오가는 사람들이며 인테리어며 분위기까지 확실히 러시아랑 다르다.
옷들도 러시아 사람들이 안 얼어 죽으려고 생존형으로 입었다면 여기 티꿀리라(헬싱키)는 패션 리더들이다. 단화에 바지 막 발목 접어서 입고 다닌다.
역사 3층에서 중식당을 찾았다. 12.8유로짜리 무제한 뷔페도 있다.
와이파이도 잘 터진다. 후식으로 티랑 커피도 준다고 들어오란다.
처음에는 중국어로 얘기하길래 영어로 물어봤더니 그때부터 중국인 아닌 줄 알더라.
약 한 시간 가까이 무제한 뷔페를 즐겼다. 10년 전에 독일에서 중식 뷔페에 가서 먹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정말 돈 없고 배고파서 엄청 먹었었다. 주인한테 미안할 정도로. 그때를 생각하며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와이파이와 함께 즐기다가 슬슬 기차를 타러 나왔다.
19시 44분에 티꿀리라역을 떠나 로바니에미로 향하는 기차가 들어왔다. 혼자 막 인증샷 찍는데 사람들 다 탔길래 나도 얼른 탔다.
이 열차는 티꿀리라에서 로바니에미로 가는 열차가 아니다.
헬싱키부터 시작해서 로바니에미를 조금 더 지나가는 듯?
암튼 정신 바짝 차려야 잘 타고 잘 내릴 수 있다.
기차 내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기억에서 잊게 만든다. 모스크바에서 상트 올 때 탔던 넵스키 익스프레스도 비교도 안된다. 진짜 깔끔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없는 1층은 양쪽 끝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고, 인당 5유로가 비싼 2층에는 객차 안에 화장실+샤워실이 있다.
러시아 열차에 있던 뜨거운 물과 시크한 차장님은 없다. 기차 타고 조금 있으면 다정한 차장 아저씨가 오셔서 티켓 검사하고 가신다. 휴대폰에 있는 이티켓 보여드리면 큐알코드 찍고 가신다.
1명이 예약 시 남자와 여자는 따로 구별해서 예약을 받고 있다. 모르는 동성과 같은 방을 쓰기 싫으면 돈을 더 내고 2인실 1개를 통째로 빌릴 수도 있다.
2 좌석을 1명이 동시에 예약하면 동성이든 이성이든 상관없다.
어느 블로거가 그랬다. VR 야간열차를 딱 탔는데, 한국인이 많으면 아침에 내리기 2시간 전에 일어나서 씻어야 하고 중국인이 많으면 천천히 일어나서 씻으라고.
난 내일 여유롭게 일어나도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