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에 대하여’
나는 백지를 싫어한다. 나의 생각을 담아내는 과정이 힘들다. 글쓰기가 그러하다. 남을 설득하고 나를 드러내는 논리의 세계를 힘겨워 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던 간에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한다는 걸 오랜 시간 피해왔다. 장시간 책상에 앉아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나와의 싸움말이다. 자기검열을 어느 정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첫 번째는 ‘핸드폰으로 쓰기’였다. 핸드폰 메모장은 검은색 배경이기 때문에 부담감을 줄여줬다. 흰색 글씨체로 쓰다보면 칠판에 옮겨 적는 것 같다. 노트북 모니터보다 작은 화면은 많은 양을 쓰지 않더라도 긴 글을 뽑아내는 듯하다. 한 문단 한 문단을 써내려가면 어느새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두 번째는 ‘자체적인 마감’이다. 어떤 마감이 생길 때 나는 2주로 나눈다. 한 주는 책을 읽고, 다른 한 주는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한다. 책 읽기 과정에서 하루 분량을 정해 놓고 포스트잇에 시작과 끝, 그리고 총 횟수를 적는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표에 집중하면 완독을 하기 싫어도 하게 된다. 글을 쓸 수 있는 기간을 확보에 두지 않으면 결국 시간에 쫓긴다. 나는 그 상황을 수없이 마주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악의 발악이다. 때를 놓치는 순간, 글은 엉망이 되고 만다. 스스로에게 쪽팔림 당하는 게 지겨워 쓸 수밖에 없다.
마지막은 ‘연필과 A4용지’다. 이 방법은 둘의 약빨이 떨어지면 사용하는 게 좋다. 그 순간은 분명히 찾아온다. 계속해서 고수하느냐 바꾸느냐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으나 최고의 노하우는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다. 원초적인 방식. 수많은 기록의 역사에서 나타난 진실이며, 그게 바로 연필과 종이다. 거기에 스탠드가 빠질 수 없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연필에 집중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맞춰준다. 나는 ‘자기검열’이라는 늪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