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사, 2018)
왜 소설을 읽는가, 라는 물음에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자주 궁리한다. 누군가 멋진 대답을 해놓은 게 있으면 메모를 해두기도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답은 메모의 전당에 올라간다. (중략) 쇼스타코비치는 작가 체호프를 열광적으로 흠모했던 것 같은데 그의 말이 이렇다. “나는 체호프를 게걸스럽게 읽는다. 그의 글을 읽으면 삶의 시작과 종말에 대해 무언가 중요한 생각을 곧 만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를 이처럼 간결하고 정확하게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략)
‘메모의 전당’ 운운하면서 말문을 열었으니 또 다른 메모로 글을 닫자. 문학 전공자들에게는 이른바 ‘신비평’의 이론가로 기억되지만 시와 소설 두 부문에서 모두 퓰리처상을 받은 유일한 저자이기도 한 로버트 펜 워런은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1962)라는 글에서 이런 대답을 했다.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주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p.170-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