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부여하는 기억과 프루스트’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민음사, 2015)

by readNwritwo

나는 지금 내 약점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억력입니다. 기억하는 능력 말입니다. 옳건 그르건 간에(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심험해 보고 이변이 없는 한이라는 조건에서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기억의 소설이며, 글을 쓰는 주제의 어린 시절, 삶에서 회상된 재료들(‘추억들’)과 더불어 구성되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프루스트는 기억으로 자기의 소설 이론을 정립했습니다.(이점에 대해서는 곧 더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시간은 많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기억의 소설입니다. 덜 알려졌고, 덜 날카롭지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역시 추억의 직조물입니다.(그리고 그는 회고적 전기를 실천했습니다. ‘추억’,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에 많습니다.)

어쨌든 내가 기억력이 부족하다는 확신, 그리고 이 때문에 내가 회고적인 소설을 쓰기가 어렵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기억 ‘장애’는 다양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순수하고, 단순하고, 문자 그대로의 기억은 없습니다. 모든 기억은 이미 의미입니다. 실제로 (소설의) 창조적 요소는 기억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의 변형입니다.(바슐라르의 “상상력은 이미지들을 해체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참조.) 그런데 다소 생산적으로 변형된 기억의 형태가 있습니다.

프루스트의 기억입니다. 생생하게 폭발하고, 불연속이고, 시간에 의해 연결되지 않는 기억이지요.(연대기의 전복.) 전복되는 것은 추억의 강도가 아니라 순서입니다. 하지만 추억이 떠오르면, 그것은 강하고 맹렬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억의 이상 증진입니다. 그런데 내 기억의 진정한 약점은 무기력입니다. ‘기억 위의 안개’입니다. 예컨대 나는 내 삶과 연관 있는 날짜들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내가 나의 전기를 쓰는 것, 날짜가 적힌 이력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분명 갑작스러운 추억들, 순간적인 기억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퍼져 나가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연상적이지 못합니다.(맹렬하지 못합니다.) 프루스트. 그것들은 단순한 형태로 다 소멸됩니다. 이것으로부터 ‘소설적인’ 인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정확히 소설과는 구별됩니다.

(중략)

한 친구가 제공한 프루스트의 인용문이 있습니다. “사건들을 이야기한다는 것, 그것은 각본만으로 오페라를 알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내가 소설 한 권을 쓴다면, 나는 매일 계속되는 음악들을 서로 다른 것으로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매일 계속되는 음악은 하이쿠 자체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로부터 이런 사실이 나옵니다. 어쩌면 환상화된 것은 오페라 같은 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p.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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