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와 ‘슬픔’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그책, 2008)

by readNwritwo

난 화내는 버릇이 사라졌다는 것도 깨닫기 못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던 울화를 나는 ‘부정성의 질식할 듯한 고무 광대옷’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우리를 질식시킨다. 그 고무 냄새는 역겹다. 그러나 일단 명상을 시작하고 그 내부로 잠수해 들어가면 광대옷은 서서히 풀어헤쳐진다. 그 냄새가 사라지기 시작하면 고무 냄새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옷이 풀어헤쳐지면 이제 당신은 자유로워진다.

울화와 슬픔은 소설 속에서는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가에게는 독과 같다. 창조성을 옥죄는 죔틀 같은 것이다. 울화와 슬픔에 사로잡히면 당신은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귀찮아진다.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흘러넘친다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다.

따라서 창의적이고 싶다면 먼저 명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디어를 낚아챌 수 있다.(p.25)

“자기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진정한 행복을 얻기는 하늘 전체를 작은 보자기에 싸는 것보다 어렵다.”

-우파니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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