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삶’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그책, 2008)

by readNwritwo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로버트 헨리가 쓴 <예술 정신>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며 예술가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내게 예술가의 삶을 산다는 것은 회화에 헌신하는 것을 뜻했다. 그림 그리기에 전적으로 헌신하면서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삶 말이다.

그 삶이 심층까지 들어가 뭔가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보자면, 발견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모든 것은 예술가의 삶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실제로 예술가의 삶은 자유를 뜻한다. 난 그런 삶이 조금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드시 이기적일 필요는 없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단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친구 토비의 아버지 부시넬 킬러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한 시간 동안 멋진 그림을 그리려면 적어도 네 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아야 해.”

그 말은 기본적으로 옳다. 캔버스 앞에서 곧바로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그림을 제대로 그리려면 한동안 앉아서 마음속의 아이디어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재료가 미리 준비돼 있어야 한다.

(중략)

그림 그리기는 항상 짓고 부수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면 부숴 버린 곳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그곳에 뭔가를 짓게 된다. 이런 작업에서 자연은 큰 역할을 한다. 햇빛에 뭔가를 건조하거나 서로 반응하는 물질들을 사용할 때처럼 민감한 것들을 함께 모아 놓으면, 그 자체로 유기적인 작용이 일어난다. 그러면 느긋이 앉아서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것이 할 일이다. 그러다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다음 일을 하게 된다. 이것이 작용과 반작용이다.

그런데 만약 30분 후 밖에서 약속이 있다면 이런 일은 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술가의 삶이란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갖는 자유를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일을 위해서도 항상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p.29-30)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