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날마다 축제>(이숲, 2012)
“전 그저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걸 읽고 있는 동안에는 제 글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요.”(p.71)
-글쓰기 원칙
나는 글을 쓸 때면 언제나 한 대목을 완성하기 전에는 중간에 일을 멈추지 않았고, 또 다음 번에 쓸 내용을 미리 생각해둔 다음에야 하루 일을 끝냈다. 그런 식으로 다음 날도 무난히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때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 귤껍질을 손가락으로 눌러 짜서 그 즙을 벌건 불덩이에 떨어뜨리며 타닥타닥 튀는 파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창가에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을 한 줄을 써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면 언제나 내가 알고 있거나, 어디에선가 읽었거나, 혹은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 몇몇 진실한 문장이 있게 마련이었으니까. 만약 내가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글을 쓰거나, 혹은 뭔가를 알리거나 소개하려는 사람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그 수사적인 표현이나 과장된 문장들을 다 지워버리고, 내가 쓴 첫 번째의 간결하고 진솔하며 사실에 바탕을 둔 문장을 출발점으로 삼아 다시 썼다.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 나는 작업실에서 글을 쓰는 동안 언제나 그 결심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것은 엄격하고 유용한 나만의 글쓰기 원칙이 되었다.
글쓰기를 일단 멈춘 시점에서부터 그 다음 날 다시 시작하는 시점 사이에는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내 작업실에서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내 잠재의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쓰고 있는 글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으며, 내가 원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그 생각을 지워 버리려고 책을 읽었다. 원칙뿐 아니라 행운도 필요했지만 그날의 작업을 무사히 마치고 계단을 내려올 때면 나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져서 파리의 어디라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었다.(p.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