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책임에서 도피한 일본의 20년’-1

<챡임에 대하여>(돌베개, 2019)

by readNwritwo

서경식 – 오늘날의 일본은 부총이가 “(헌법 개정은) 나치스의 수법을 배워서”라고 실실 웃으며 말해도, 총리가 “(원전 사고는) 통제되고 있다”라는 따위의, 본인도 국민도 아는 거짓말을 해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국민 다수도 그것을 용인하거나 어쩌면 오히려 환영하는, 악몽 같은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척도를 상실한 혼돈’-간단히 이야기하면, 약자는 도와야 한다는 원칙조차 이미 사라져 버린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카하시 선생은 이런 엽기적인 사회가 출현한 기점이 언제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카하시 데쓰야- 글쎄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흐름의 가정이라면, 이른바 역사 수정주의(마르크스주의적 노동운동 내부에서 부르주아 사상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주의에 적대하는 기회주의적 조류)가 일본 사회에 대두한 1990년대 후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냉전 종결과 ‘쇼와’ 시대의 종언이 겹쳤던 때인 1991년에 한국의 김학순씨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임을 밝히고 나선 것을 계기로, 1990년대 초에 아시아 각지에서 일본의 침략 전쟁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나는 그 일로, 이제 일본 정부가 전쟁 책임을 더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위안부’ 출신자들이 정말 상징적인 존재지만, 만신창이가 된 증인이 스스로 진실을 증언하고 나섰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패전 후 반세기가 지나려 했던 당시의 일본 사회 속에서, 나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였지만 전쟁 피해자들의 고발, 질문에 대해서 우선 응답해야 할 책임이 당연히 생길 것이라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이더라도 지금 이웃 사람들의 소리를 무시하면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인간과 인간 간의 기본적 커뮤니케이션 형태인 부름과 응답의 관계를 보더라도 그것에 답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p.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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