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너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친구들에게 생일을 축하받을 때
“이날은 시우 생일, 이날은 나경이 생일, 이날은 아빠 생일!”
냉장고에 붙여놓은 달력에서 색깔이 칠해진 날짜를 하나씩 짚어가며 딸아이가 말한다.
“그래, 맞아. 생일이 쪼르르 있지? 엄마 생일은 초여름에, 오빠 생일은 늦여름에, 네 생일은 초가을에, 아빠 생일은 늦가을에. 엄마는 그중에 나경이 생일 즈음의 풍경이 제일 예쁘더라.”
아들의 생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잊지 말고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 속 아들의 생일선물을 주문하고, 생일 축하 카드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네 살배기 딸아이의 생일선물은 무엇이 좋을지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엄마는 장미꽃이 만발한 길가에서 꺾은 한 송이 커다란 장미에 아기가 들어 있는 꿈을 꾸고 나를 가졌다. 서머타임이 존재하던 그 시절 유월, 엄마는 이른 아침 나를 낳고 산부인과 창밖 너머로 장미꽃 만발한 그 길을 실제로 보았다고 한다. 중학생 때는 생일에 시험기간이 곧잘 겹쳤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마음 편히 생일을 친구들과 즐기지 못하고, 쉬는 시간에도 잡담할 새 없이 다음 교시 시험 과목 공부를 하고, 점심시간도 갖지 못한 채 헤어지기 일쑤였다. 다행히 고등학생 때는 중학교보다 방학이 늦어 시험일정이 생일 뒤로 넘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는 야간 자율학습이 있어 매번 스치듯 지나가던 생일을, 고등학교에서는 온종일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보낼 수 있었다. 자정을 넘어 누가 제일 먼저 내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줄지 기다리거나 친구들이 나 몰래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지 궁금해하며 생일에 대한 소소한 설렘을 만끽하던 모습은 딱 요맘때 누리던 행복이었다. 생일 아침에는 거울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휴대폰은 더더욱 자주 들여다보며 오늘 하루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그 나이만의 특혜였다.
나는 점차 낯설고, 어색했던 고등학교와 새 동네의 모든 것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다른 색깔의 중학교 교복을 입었고, 다른 버스 노선을 타고, 집 주소의 우편번호가 전혀 다른 조합이었던 우리는 이제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그리 멀지 않다고 느껴지는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소망 대학 진학을 꿈꾸며 매일 자신의 꿈을 키워나갔다. 고등학교 이전의 공간은 전혀 겹치지 않는 우리였지만,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고교 시절의 빼곡한 시간은 중학교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중학교 친구들과는 터무니없이 밝고 유쾌했던 기억만 남아있지만, 고교 동창은 동고동락의 개념이 더 크게 남는다. 아마도 하루 중 두 끼를 같이 먹고, 종종 치약도 나눠 쓰고, 서로의 떡진 머리도 서슴없이 볼뿐만 아니라 방귀도 트고 서로의 카디건도 빌려 입으며 서로의 흑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 증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나의 모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남녀 분반이었던 터라 사랑과 우정 사이를 오가던 학창 시절과는 전혀 다른 여자들의 진한 우정을 다져나가기 적합했다. 나 혼자 이방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은 금세 한울타리 안에서 대학입시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매일 늦은 밤 하교하는 발걸음을 함께 하며 말끔히 사라졌다.
“깡민, 생일 축하해!”
친구들은 야간 자율 학습 시작 전, 급식실에서 석식을 먹고 나와 학교 운동장 벤치에서 생일파티를 해줬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친구들의 생일선물. 대용량 비달사순 샴푸와 선크림, 망사팬티와 꽃무늬 레이스 팬티, 그리고 커다란 하드보드지에 반 친구들 한 명 한 명이 축하 인사를 써준 롤링페이퍼. 학교 화장실 걸레 빠는 곳에서 같이 머리를 감고, 체육복을 갈아입으며 서로의 속옷을 보던 여고생 시절이 아니면 받기 힘든 선물이었다. 그때도 웃음이 나고, 감동을 자아냈던 친구들의 생일 선물을 생각하면 그때였기에 가능한 일이겠구나 싶다. 온종일 방학도 없이 함께 지냈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받으면 기뻐할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고민도 없이 선물을 고를 수 있었다. 지금은 부러 생일 선물을 받아본 지도, 친구에게 생일 축하 문자도 자정에 딱 맞추어 가장 먼저 축하했다는 뿌듯함을 느껴본 지도 모두 오래되었다. 더불어 하고 싶은 말이 그득한 생일 축하 카드를 써본 지도, 받아본 지도…….
고등학교에서 처음 생일을 보내고, 친구들의 생일선물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온 나의 집 앞. 한 아이가 서 있었다. 여름이 생일인 내가 평생 받지 못할 선물을 주고 싶다며 하얀색 여름 교복을 입은 내 품에 그 아이는 분홍 털모자를 안겨주었다.
그 모든 선물이 하나도 허투루 잊히지 않는 열일곱의 여름밤이었다.
***
나경아, 더위를 무척이나 못 견디는 엄마는 여름이 생일인 게 너무 싫었더랬어. 가을이나 겨울 같은 좋은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지 않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일파티하는 모습과 현실의 괴리는 항상 컸지. 그런데 이곳에 와서 첫 생일을 맞이하던 유월이 엄청시리 추운 거야. 그래서 긴 블라우스와 치마에 도톰한 재킷을 입고, 두꺼운 검정 스타킹을 신고 네 아빠와 집 앞 공원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지. 내 생애 처음 맞이한 추운 여름의 생일이었어. 엄마는 그 기념사진을 볼 때면 역설적이게도 분홍 털모자 생각이 나.
선물은 그런 것 같아. 지금 당장 내가 필요한 것, 갖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아도 먼저 눈치채 챙기는 이의 마음, 그 사람을 떠올리면 어울릴 것 같아 주고 싶은 물건이 생기는 이의 마음, 내 것을 사며 네 것도 사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을 특별한 무언가를 기필코 찾아내어 건네고 싶은 마음을 담은 물건. 아직은 네가 어리기 때문에 너를 향한 엄마의 이 모든 마음이 분간되지 않고 제대로 발현되기도 쉽지 않지만, 점차 네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는 네게 해주고 싶은 선물들이 많아질 것 같아.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너를 사랑하고 아껴줄 친구들이 네게 여럿 생기겠지. 그들과 너는 커 나가며 선물의 소중함과 의미를 몸소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네가 기억에 남는 생일 선물을 받으면 이 노래를 들어보렴. 왠지 너의 집 앞에서 선물을 들고 너를 기다리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그려지지 않니.
Track 15.
쿨(Cool) [All For You] 작사 정진환 작곡 김한범
all for you ~
벌써 며칠째 전화도 없는 너
얼마 후면 나의 생일이란 걸 아는지
눈치도 없이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난 미움보다 걱정스런 맘에
무작정 찾아간 너의 골목 어귀에서
생각지 못한 웃으며 반기는 너를 봤어
사실은 말야 나 많이 고민했어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걸
아직 많이 모자라도 가진 것 없어도
이런 나라도 받아 줄래
너를 위해서 너만을 위해서
난 세상 모든 걸 다 안겨 주지는 못하지만
난 너에게만 이제 약속할게
오직 너를 위한 내가 될게
It's only for you just wanna be for you
넌 그렇게 지금 모습 그대로 내 곁에 있으면 돼
난 다시 태어나도 영원히 너만 바라볼게
영원히 너와 함께 할 미래 내곁에 있어준 너를 위해
넌 모르지만 조금은 힘들었어
네게 어울리는 사람이 나인지
그건 내가 아니라도 다른 누구라도
이젠 그런 마음 버릴래
너를 위해서 너만을 위해서
난 세상 모든 걸 다 안겨 주지는 못하지만
난 너에게만 이제 약속할게
오직 너를 위한 내가 될게
It's only for you just wanna be for you
넌 그렇게 지금 모습 그대로 내 곁에 있으면 돼
난 다시 태어나도 영원히 너만 바라볼게
love 내 작은 맘속을 oh love 네 향기로 채울래
그 속에 영원히 갇혀 버린 대도
난 행복 할 수 있도록
너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너만을 위해서
난 세상 모든 걸 다 안겨 주진 못하지만
난 너에게만 이제 약속할게
오직 너를 위한 내가 될게
It's only for you just wanna be for you
넌 그렇게 지금 모습 그대로 내 곁에 있으면 돼
난 다시 태어나도 영원히 너만 바라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