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24. 아이유 [너의 의미]

24. 너의 의미를 해석할 수 없을 때

by 밍구


“엄마, 이게 뭐야?”

내 책상 주위를 얼쩡거리던 딸아이는 연필꽂이에 꽂혀있던 검정 붓 펜을 집으며 물었다.

“응, 그거 붓 펜이란 건데 이렇게 쓰는 거야.”

나는 펜 뚜껑을 열어 연습장에 아이 이름 석 자를 쓰며 말했다.

“우와, 나도 써볼래, 나도 써볼래.”

딸아이는 의외의 장소에서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것이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붓 펜을 들고 연습장을 까맣게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1학년 2학기가 시작되며 나는 학생회관에서 두 집 살림을 시작했다. 오케스트라의 첼로가 내게 새로운 도전이었다면, 성균서도회는 익숙한 것으로의 회귀였다. 나는 열 살 때부터 서예학원에 다녔다. 나의 스승님 호는 오당이었다. 머리가 하얗고, 웃을 때면 그의 네 번째 손가락에 낀 금반지와 똑같았던 금니가 송곳니 뒤편에서 슬쩍 보이던 나의 할아버지 선생님. 칠 년을 꾸준히 다닌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오당 선생님은 학원 열쇠를 주시며 언제고 네가 글이 쓰고 싶을 때면 와서 붓도 잡고, 공부도 하다 가라 하였다.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고등학생 때도 주말이나 휘호 대회를 앞둔 때에는 학원을 찾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고교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뵙던 날 나는 선생님께 호(號)를 지어달라 하였다. 칠 년 새 주름이 더 깊어진 얼굴의 오당은 내게 가헌(嘉軒)과 지천(志川)이란 호 두 개를 주었다. 그러나 그 후 오당과의 연은 끊겼고, 누군가 나를 가헌이라 불러준 날도, 내가 지천이 되었던 날도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호를 받았으면 호턱을 해야 해. 호턱을 하면 우리는 이제 이름 대신 너희를 호로 부를 거야. 그게 우리 서도회의 전통이야.”

가을에 입회원서를 쓰고 다시 붓을 잡기 시작한 나는 수업 시간표만큼이나 공강 시간표를 세심히 짜서 1층에서 첼로를 켜고, 2층으로 올라와 글씨를 썼다. 주 중 한 번은 졸업한 선배님이자 인사동에서 개인 화실도 갖고 계신 서예가 효산 선생님이 동아리방에 와주셔 직접 후배를 지도하였다. 나는 한 학기 늦게 시작하였기에 빠짐없이 그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겨울의 문턱에서 새내기는 효산에게 호를 받았다. 호는 일 년 동안 보아온 새내기의 서예 문체와 성정 등을 바탕으로 스승인 효산이 지어주는 뜻깊은 선물이었다. 호턱은 호의 의미를 잘 해석하여 동기와 선배들 앞에서 앞으로 이름이 아닌 호로 나를 불러주십사 각자의 호를 각인시키는 자리였다. 그리고 호턱을 잘 마친 이후에 우리는 이름도, 언니도 오빠도, 모든 높고 낮음을 없애고 오롯이 호만 남아 서로를 불렀다. 당시 나의 동기는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녀들은 소호와 아천, 남정, 하헌 등 발음하면 은빛 물결이 부서지거나 냇가에 핀 아름다운 꽃이 생각나는 어여쁜 호를 받았다. 나의 호는 우당(藕堂)이었다.


“우당탕탕!!”

호턱날 나는 어디에서 빌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황토색 전신 루돌프 털옷을 입고 동아리방을 황소처럼 우당탕 뛰어다녔다. 호턱의 마무리는 자신의 호 만세삼창이었다. 나는 양다리를 쫙 벌리고 두 팔을 활짝 벌려 우당을 세 번 외쳤다. 호턱 뒤풀이에서 나는 소주도 우당탕 마셔 재꼈다.

“근데 왜 저는 호가 우당이에요? 동기들 호는 딱 들어도 여자 호 같고, 청아한 느낌인데…. 우당은 ‘연뿌리 우’에 ‘집 당’이니 연근이잖아요.”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마시다 보니 어느새 옆자리에 효산 선생님이 앉아계셨고, 나는 술기운을 빌려 섭섭한 속내를 토로했다.

“넌 해석을 제대로 못 했구나. 꽃은 피고 지지만 뿌리는 깊은 곳에 내려 시들지 않는 법이다. 특히나 연뿌리는 흙이 아닌 더러운 물에도 뿌리를 내려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꽃이란다. 너는 어느 척박한 곳에 던져 놓아도 깨끗하게 잘 살 거다. 네 기개도, 성격도 겪어보니 이 우(藕)만 한 게 없던데. 네 호를 내가 얼마나 신경 써서 지은 건데 이 놈 자슥이.”

효산은 소주잔을 옆으로 치우고 손가락으로 ‘藕’자를 쓰고 톡톡톡 탁자를 두들겼다. 나는 얼른 소주병을 들어 효산의 잔에 사랑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셨다. 소주든 맥주든 폭탄주든 그 어떤 술도 내 몸에 들어오면 깨끗이 될 것 같은 마음으로.


***

나경아, 네가 조금 더 자라면 엄마는 네게 서예를 가르쳐주고 싶단다. 붓을 잡고 글씨를 쓰는 것도 좋지만, 나는 네게 서걱거리는 먹의 소리와 묵향을 꼭 알려주고 싶어. 나의 오당 선생님은 초등학생 때는 먹물을 쓰게 하였지만, 중학생이 되어서는 먹을 가는 벼루가 있는 작은 책상에 항상 나를 앉혀주셨지. 먹을 갈며 마음을 가라앉히던 그 시간이 내게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어. 왜 그때는 잘 모르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이리도 많은 걸까. 효산 선생님이 나를 우당이라 불러주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난 의미를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하였어. 아마 그때 의미를 묻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몰랐을 거야.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아이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의 나를 지켜본 오당 선생님이 지어준 가헌과 지천은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왜 그때 바로 여쭈어보지 않았을까.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셨을 거야. 많이 보고 싶네, 함께 한 필 한 필에 힘을 싣던 연로한 스승과 어린 나.

딸아, 높고 어려운 의미를 해석하기 어려울 때는 지체하지 말고 이유를 물어야 해. 그때 당장은 해석조차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의미 풀이를 지니고 있다면 언젠가 온전한 해석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날이 꼭 오기 마련이거든. 네 인생에도 너를 통찰해주는 귀인이 함께하길 바란다.



Track 24. 아이유(IU) (feat. 김창완) [너의 의미]

작사 김한영 작곡 김창완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