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26. 마골피 [비행소녀]

26.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탈 때

by 밍구


“엄마, 여기 가봤어?”

세계 지도와 세계 국기가 붙어 있는 거실 벽면은 아들이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아니, 뉴질랜드랑 오스트레일리아는 못 가봤어. 시우는 거기 가고 싶어?”

두 나라의 위치를 확인해보려 소파에 오르자 딸아이도 잽싸게 플라밍고 인형을 들고 따라 올라온다.

“응. 나는 오리너구리랑 키위 새 보고 싶어서. 여기랑 여기.”

“나는 여기. 플라밍고, 플라밍고!”

오리너구리를 꼭 끌어안고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를 가리키는 시우에게 지지 않고 나경도 플라밍고가 그려진 칠레를 손으로 짚는다.


동아리방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던 내게 영문학과 친구가 교환학생 설명회에 같이 가자고 하였다. 국문학도에게 교환학생은 다른 세상 이야기였지만, 구미가 당겨 교환학생 소책자를 받아 들고 함께 설명회에 참석했다. 친구는 이미 점찍어둔 미국과 캐나다 대학교를 비교하며 당차게 질문하는 반면, 나는 소책자를 넘겨보며 조그마한 사진 속 타국의 대학 캠퍼스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중 그리스 신전처럼 육중한 원형 기둥이 대학 정문을 장식하고, 그 기둥만큼 높이 솟은 전나무가 양옆에 펼쳐진 러시아 우랄국립대학교 사진에 시선이 꽂혔다.

“러시아 교환학생 신청 조건에는 토익 점수가 필요 없나요?”

나는 수줍게 손을 들고 질문했다.

“네, 러시아 대학에서는 러시아어로 수업을 진행하므로 영어가 필요 없습니다.”

설명회 담당자의 답변을 듣자 영어에 젬병인 나는 교환학생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소설가를 꿈꾸던 내게 예술의 나라 러시아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사전 지식과 정보가 하나도 없었고, 더군다나 영어와는 전혀 다른 키릴 문자를 어떻게 읽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 끝없이 펼쳐지는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며 보드카를 마시는 내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러시아어 학원을 검색하자 종각역에서 마을버스 02번을 타는 곳, YMCA에 기초 러시아어 입문 새벽반 강좌가 있었다. 학원을 가는 날이면 다섯 시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여섯 시 전에 집을 나섰다. 일곱 시에 시작하여 여덟 시 반에 수업이 끝나면 부랴부랴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 아홉 시 수업을 듣는 고단한 나날은 교환학생 면접일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러시아어 입문과 동시에 교환학생 면접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촉박했던 나는 일단 한국어로 쓴 3분가량의 자기소개서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달달 외웠다. 그리고 결전의 날이 되었다.


“즈뜨라스부이쩨. 민야 자붓 민아.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민아예요)”

천 번도 넘게 읊었던 자기소개의 첫 문장을 낯선 러시아어문학과 교수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뱉었다. 얼마나 틀리고 헤맸는지 알 수 없는 자기소개가 끝나자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속사포로 러시아어를 쏟아냈다. 나는 단 하나도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내가 한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으면서 러시아에서 공부하겠다는 건가? 그것도 국문과 학생이 그 러시아어 실력으로? 자네 실력이면 가서 학점이 엉망이 될 텐데도 말이지?”

교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내게 말했다.

“네, 그래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러시아에서 살아볼 수 없을 것 같아서요. 꼭 가고 싶습니다. 가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제발 보내만 주세요.”

면접을 조용히 지켜보던 우랄 국립대학교 따찌야나 여교수가 말문을 열었다. 당연히 나는 알아듣지 못해 눈만 껌뻑였다.

“참 겁 없는 학생이군. 자네가 러시아에서 무엇을 느끼고 올지 궁금하다고 하시네. 일 년 후에 다시 봅시다. 자네 기억해 두겠네.”

인터뷰는 끝이 났다. 어느새 나는 러시아어문학과 선배들과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

나경아, 너와 나의 생애 출발지는 많이 달라. 넌 내 미지의 세계에서 잉태되었고 현재 살고 있으니 말이야. 그러나 너도 성장하면서 나처럼 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나갈지 모르겠다. 출국 이틀 전 오랜 벗과 우리 집에서 밤새 술을 먹었어. 다음 날 아침 엄마가 화난 얼굴로 당장 내일이 출국인데 짐도 하나도 안 싸놓고 술만 딕딕 마실 거냐며 친구와 함께 나를 옴팡 혼내셨지. 그때는 친구까지 혼내는 엄마가 야속하게 느껴졌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나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번민에 시달렸을까 싶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애가 일 년을 낯설고도 무서운 나라 러시아에 가겠다면서 당장 내일모레 출국을 하는데 이민 가방은 싸지도 않고 소주병만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야. 러시아로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아버지는 함께 가는 선배의 손을 맞잡고 우리 딸을 잘 좀 부탁한다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지. 딱 두 번 본 선배에게 그런 부담을 주는 아버지가 그때는 이해가 안 갔지만, 그 또한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나였어도 그 듬직한 오빠의 손을 몇 번이고 잡으며 너를 부탁했을 것 같아.

네가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서 외따로 살아보고 오겠다고 선전포고를 한다면 나는 정말 고민 없이 너를 공항에서 배웅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자신 없지만, 너를 믿고 네 선택을 존중해줘야겠지. 그리고 미지(未知)의 세계를 기지(旣知)의 세계로 바꾸고자 하는 네 굳은 의지를 내가 보고 말았다면 하릴없이 난 네 항해를 응원하겠지.

딸아, 이 노래는 내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일 년을 한결같이 내게 밥을 지어준 그 듬직한 오빠가 들려준 노래야. 이 노래를 듣고 비행기 안에서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 몰라. 네가 만약 나처럼 미지의 세계를 꼭 내 발로 밟고 와야겠다면 네게 나침반 같은 이가 함께 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나 또한 공항에서 그 나침반의 손을 꼭꼭 잡을 것 같구나.



Track 26. 마골피 [비행소녀]

작사·작곡 윤명선


활주로를 떠나 비행기는 이제 어둠 속을 날아요

서울의 야경은 물감처럼 번져가고

저기 어딘가에, 내가 아는 사람 손 흔들고 있을까?

마지막의 인사를 해요

내가 가는 길이 너무나도 힘든 이별의 길이지만

후회하지 않고 웃으면서 떠나가죠

사실 울고 있죠 많이 울고 있죠 창피하게 말이에요

어둠 속을 날아가죠


안녕 기억 안녕 입술로 되뇌여보네

사랑해라는 단 한마디

안녕 추억 안녕 너무나 눈물이 나요

영원히 그댈 사랑해요 안녕


어둠 속을 떠나 비행기는 이제 어딘가에 내려요

낯설은 도시는 사실 많이 두렵지만

저기 어딘가에, 내가 아는 사람 손 흔들고 있을까?

마지막의 인사를 해요


안녕 기억 안녕 입술로 되뇌여보네

사랑해라는 단 한마디

안녕 추억 안녕.. 너무나 눈물이 나요

영원히 그댈 사랑해요

안녕 기억 안녕 입술로 되뇌여보네

사랑해라는 단 한마디

안녕 추억 안녕 너무나 눈물이 나요

영원히 그댈 사랑해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