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28. 신승훈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28. 방랑자의 삶을 탐닉할 때

by 밍구


“엄마, 아이스크림 사 먹고 가야지!”

시우는 잊은 게 여기 있는데 어디를 가느냐는 말투로 굼 백화점을 나서려는 나를 불러 세운다.

“마스크 벗고 먹기 불편하니까 오늘은 그냥 갈까?”

나는 잊은 게 아니라 일부러 지나친 걸 시인하며 시우를 구슬렸다.

“아니, 엄마가 그랬잖아. 붉은 광장 오면 꼭 이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하는 거라고. 엄마 그것도 까먹었어?”

아이 앞에서는 무엇이 되었든 허튼 말은 절대 하면 안 된다.

“맞아. 아이스크림 먹을래, 나도. 나는 딸기 맛!”

유모차에 타고 있던 딸까지 합세하고 말았다. 결국 나는 못 이기는 척 아이스크림 가게에 줄을 섰다. 우리 셋은 마스크를 잠시 호주머니에 넣고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었다. 그래, 이 맛 좋은 걸 어찌 안 먹고 그냥 가누.


나는 나침반 오빠와의 유럽여행을 계획했고, 세 달여간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기점으로 함께 공부했던 언니 오빠 여럿과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같은 러시아여도 한 학기를 보낸 예카테린부르크와는 전혀 다른 모스크바의 모습에 지방도시에서 상경한 대학 친구들이 서울살이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거대하고 으리으리했으며 전통마저 산재해있는 아름답고 세련된 도시. 만약 이 두 도시를 보지 않았다면 나의 러시아는 다소 투박하고 옹졸했을지도.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격적인 유럽여행의 첫 단추는 잘 끼우지 못했다. 순전히 그놈의 아이스크림이 문제였다. 붉은 광장의 굼 백화점 일 층에는 아이스크림 키오스크(간이매점)가 많다. 혹자가 말하기를 그 아이스크림 맛이 일품이기에 붉은 광장을 가면 무조건 그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모스크바 마지막 일정으로 굼 백화점에 들러 긴 줄을 서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고 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하필 우리가 탄 버스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서 대형사고가 나는 바람에 몇 시간을 그 도로 위에서 발이 묶였다.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의 머리 위로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는 미련 없이 날아올랐다. 혜화역 1번 출구에서 250원짜리 스쿨버스를 놓치는 건 허다했지만, 비행기를 놓쳐볼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고작 아이스크림 때문에. 일정보다 하루 늦게 입성한 프랑크푸르트는 마침 유로 2008에서 독일팀이 승리하여 떠들썩한 밤이었다. 유스호스텔 이층 침대에 누워 창밖으로 떠들썩한 거리의 환호성을 들었다. 유럽여행의 첫날은 불야성을 이루며 나를 잠 못 들게 하기 충분했다.

유월 초에 시작한 여행은 칠월 중순에 끝이 났다. 42일간 우리는 10개국 26개 도시를 여행했다. 혼자였다면 상상도 못 해봤을 규모의 내 생애 첫 배낭여행이었다.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여행을 쉼표라 여겼는데 여행을 마치고 나니 느낌표였다. 또 다른 세계, 나 자신과의 만남에서 오는 깨달음과 피어나는 결심은 잠시도 내 마음을 쉴 수 없게 보글거렸다. 사십여 일간 우리의 매일은 새로움의 일상이었다. 새로운 거리와 도시가 익숙할 즈음엔 또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반복했다. 특히나 붙박이 같던 내 인생 여로에서 매일 캐리어에 짐을 싸고 푸는 방랑자의 생활패턴은 처음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도시에 마음을 주고 정이 들려하면 금세 그곳을 떠나야 했다. 그렇다고 아쉬움과 미련을 계속 마음에 두기에는 새로운 도시의 정취와 이야기가 들어오려 했으므로 어서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나처럼 마음이 느리고 변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그러나 꽤 신선한 자극의 날들이었다.


“스위스는 안 갈 거야. 거긴 오빠가 사랑하는 사람과 신혼여행으로 가고 싶은 곳이거든.”

배낭여행을 꿈만 꿨던 내가 진짜 행할 수 있게 만들어준 나침반 오빠는 여행 준비를 하며 내게 못을 박았다. 일 년 동안 우리 아버지의 말처럼 나를 굶기지 않았고, 여행하면서도 그는 한식당과 고급 레스토랑을 알맞게 섞어 멋진 밤을 배불리 보여줬다. 그리고 늘 기념품 가게를 지나치지 않고 함께 들어가 그는 예쁘고 고급스러운 기념품을 골랐고, 나는 풍경 엽서와 앙증맞은 술잔을 샀다. 나침반 오빠의 마음에는 늘 한국에 두고 온 그녀가 있었고, 그는 멋지고 좋은 곳을 볼 때마다 풍경 사진을 찍으며 그녀에게 보여줄 거라 했다. 애잔한 사람을 아직 품지 못했던 나는 그런 나침반 오빠가 부럽고 참 좋았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는 배낭여행이 오빠에게는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 거기에 서 봐. 오빠가 사진 찍어줄게.”

어디였던가. 로마에서 화덕 피자를 맛있게 먹고 안내책자에 나오지 않았던 번호의 버스를 무작정 탔다. 그리고 차창 밖으로 드넓은 평원이 펼쳐지자 우리는 서둘러 내렸다. 이름도 모르는 그 평원 나무 그늘에서 나는 글을 썼고, 오빠는 모자를 벗어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누웠다. 스물여섯 개의 도시 중 가장 여운이 남는 날이 이름도 모르는 로마의 어느 벌판에서 보낸 그날이라는 걸 나침반 오빠는 알까.


***

나경아, 요즘 사진을 찍으려 하면 ‘김치~!’를 외치며 어설프게 브이를 만들어 얼굴 한쪽을 가리고, 한쪽 눈을 찡긋하는 네 표정을 볼 때면 절로 웃음이 나와. 도대체 그런 제스처는 가르쳐 준 적이 없어도 어디서 누구에게 배우는 건지 신통할 정도야. 엄마는 유독 사진기만 가져대면 표정이 굳어버리고 말아서 학생 시절부터 졸업 사진을 찍을 때 애를 먹었어. 그 어색한 표정은 웨딩 촬영 때도, 돌 촬영 때도 마찬가지여서 사람이 쉬이 변치 않는다는 걸 그때마다 깨달았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행 사진에서의 엄마 얼굴은 늘 해맑았어.

엄마는 ‘방랑자’를 떠올릴 때면 기다란 나무 지팡이를 들고 커다란 삿갓을 쓴 방랑시인 김삿갓이 그려져. 커다란 삿갓 아래 가려진 그 방랑자의 얼굴이 혹시 방랑자의 삶을 탐닉했을 때의 내 얼굴일지도, 혹은 모자 아래 덮어둔 나침반 오빠의 얼굴이려나. 고단하지만 이십대에만 누릴 수 있는 배낭여행을 너도 꼭 다녀올 수 있으면 좋겠다. 떠돌아봐야 몸과 마음의 정착이 결코 속박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국경 이동을 할 때는 신비로운 꿈을 꾸는 느낌의 이 노래를 추천할게. 여행지에서는 나도 전설 속의 누군가가 되어볼 수 있으니 말이야.



Track 28. 신승훈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작사·작곡 신승훈


거울 속의 그대 모습을 바라본 적 있는가

부끄럽지 않은 삶인가 뜨거운 눈물 흘려본 적 언젠가

누굴 위해 살아왔는가 여긴 지금 어딘가

어릴 적 그대의 꿈들은 그저 그대가 만든 소설이었나

이젠 한번 생각해봐 그대 안에 다른 널

움츠리지 말고 너의 날개를 너의 미래를 향해

날아보는 거야


아주 작은 새의 몸짓도 이 세상 봄이 옴을 알게 하는데

(Can you see a whole new world)

부질없는 그대 몸짓은 그 누구에게도 느낄 수 없게 해

(No one knows the way you feel)

그대 아직 늦지 않았어 두 팔을 벌려 너의 날개를 펴고

(You can soar and touch the sky)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그대의 미래를 향해 훨훨 날아봐

(We believe, we believe that you can fly)

그대 안에 다른 널 움츠리지 말고

너의 날개를 너의 미래를 향해 날아보는 거야


아주 작은 새의 몸짓도 이 세상 봄이 옴을 알게 하는데

(Can you see a whole new world)

부질없는 그대 몸짓은 그 누구에게도 느낄 수 없게 해

(No one knows the way you feel)

그대 아직 늦지 않았어 두 팔을 벌려 너의 날개를 펴고

(You can soar and touch the sky)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그대의 미래를 향해 훨훨 날아봐

(We believe, we believe that you can fly)


아주 작은 새의 몸짓도 이 세상 봄이 옴을 알게 하는데

(Can you see a whole new world)

부질없는 그대 몸짓은 그 누구에게도 느낄 수 없게 해

(No one knows the way you feel)

그대 아직 늦지 않았어 두 팔을 벌려 너의 날개를 펴고

(You can soar and touch the sky)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그대의 미래를 향해 훨훨 날아봐

(We believe, we believe that you can f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