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42. 오연준 [Annie Laurie]

42. 네가 엄마가 될 때

by 밍구


“엄마는 여기서 어떤 반지가 마음에 들어?”
딸아이는 분홍색 하트 모양 반지함을 열어 내게 하나를 고르라 한다.
“엄마는 꽃 모양 반지. 나경이는?”
나는 진심으로 고심하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반지를 고른다.
“나는 키티. 내가 꽃 모양 엄마 끼워 줄게. 손 줘.”
딸아이는 얼른 자신의 손가락에 키티 반지를 낀 후 내 새끼손가락 첫마디에 꽃모양 반지를 끼워 준다.
“선물이야, 엄마. 빼면 안 돼. 컴퓨터 숙제할 때도 끼고 해.”
나경은 반지함 뚜껑을 닫으며 내게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한다. 사랑스럽다.


임신 32주부터는 비행기를 타려면 비행 중 태아가 잘못되는 상황이 생겨도 임산부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해야 했다. 나는 딱 32주까지 남편 옆에서 콩콩이를 키우다가 비행길에 올랐다. 입덧이 심해 임신 초기에 살이 6kg이나 빠졌고, 중기에 들어서야 아이가 커지고 양수가 차며 점차 몸무게가 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토마토밖에 못 먹는 것은 똑같았다. 아홉 시간의 긴 비행으로 배도 딱딱하게 뭉치고 부종으로 다리도 너무 아팠다. 한국에 오니 부모님이 제일 먼저 보고 싶었지만, 공항에서 먼저 시댁으로 향했다. 시댁에서 점심을 먹고 친정으로 건너오자 아빠와 깜상이 나를 맞아줬다. 엄마는 마침 큰엄마들과의 약속으로 집에 계시지 않았고, 소파에 깜상과 누워 언제 엄마가 오실까 기다리다가 잠깐 잠들었다. 철커덕 대문 열리는 소리에 나도 깜상도 번쩍 정신이 들어 현관 앞으로 갔다.
“엄마, 뭐야. 배불뚝이 딸이 왔는데 맛있는 밥 해놓고 기다리지 않고 왜 이제 와!”
나는 뒷짐을 지고 슬리퍼에 발을 꿰며 계단을 오르는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다. 엄마는 계단을 오르시다가 내 모습을 보시고는 그대로 계단에 주저앉아 한참을 우셨다. 깜상은 나와 엄마 사이를 오가며 후두두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주기 바빴다.


흔히 딸들은 출산에서 엄마를 많이 닮는다고 하였다. 엄마는 비교적 수월하게 나와 오빠를 낳았다. 경산부 때는 새벽에 산부인과에서 산파와 단둘이 삼십 분 만에 출산을 마쳤다며 엄마는 임산부였던 내게 늘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예정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던 마지막 검진에서도 내진을 마친 의사가 긍정적인 출산의 암시를 주어서 나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덜했다. 그러나 출산 예정일이 닷새가 지나도 아이는 나올 기미가 없었고, 러시아에서 근무하는 남편은 출산 휴가차원으로 한국에 이미 도착한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자연적으로 진통이 걸리기를 포기하고 유도분만을 진행하였다.

“응애! 응애!”
온종일 고생한 것이 덧없게도 결국 날이 바뀌어 제왕절개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새벽 분만이었던 까닭에 양가 부모님과 남편만이 지키고 있던 적막한 분만실 앞 복도에 콩콩이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고 한다. 3.81kg으로 세상에 나온 콩콩이를 간호사가 내게 보여줬다. 눈도 잘 뜨지 못하는 핏덩이를 바로 내 품에 안겨 젖꼭지를 찾아 물게 하였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아이였는데도 망가진 몸과 자연분만에 실패했다는 낭패감과 속상함에 병원에서는 아이가 예쁘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수유 자세도 익숙지 않아서 유두에 상처를 낸 아기가 심지어 밉기까지 했다.


일주일의 출산휴가가 끝난 남편은 삼칠일도 지나지 않은 아이와 나를 남겨두고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다. 덩그러니 조리원에 혼자 남겨져 처음 가졌던 모자동실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신생아실에서 각자의 아기를 데려가 온전히 아기와 단둘이 있게 된 한 시간. 나는 꼬물꼬물한 아기를 품에 안고 엉엉 울었다. 어떤 방법으로 낳았든 아기와 내가 건강하면 감사한 것임을, 꼬박 하루를 고생한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아기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단둘만의 시간을 가지니 비로소 보였던 것이다. 그제야 나와 남편을 이어주는 사람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인지, 이 작은 생명이 나와 함께 있단 것만으로도 내게 큰 힘과 위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우가 생후 팔십일 되던 날,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백일을 삼 주가량 남겨두고 어린 손자와 타국에 가는 딸을 보내는 친정 부모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엄마는 아버지의 친한 친구분이 하시는 금은방에 나를 데리고 갔다.
“시우 백일 떡도 못 해주는데 백일반지라도 해가야지. 가서 백일상 차려줄 때 꼭 엄지에 끼워서 사진 찍어줘.”
엄마는 작지만, 더욱 샛노랗게 반짝이는 백일반지를 고르며 말했다. 자그마한 반지함에 아들의 백일반지를 넣는데 엄마는 계속 다른 반지를 눈여겨보더니 하나를 마저 골랐다.
“이 반지 어때? 끝이 둥글어서 아기 만질 때도 걱정 없겠다. 엄마 된 기념으로 너도 하나 사줄게. 이 반지처럼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 거야. 넌 잘 키울 거야. 엄마는 하나도 걱정 안 해, 똥민아.”
엄마는 프레즐 모양으로 매듭진 골드핑크 반지를 골라 내게 끼워줬다. 내게 골드핑크의 반지를 끼워주는 엄마의 손가락에는 분홍산호 반지가 소담한 장미꽃처럼 앉아 있었다.


“엄마, 이 분홍산호반지 어때? 장미꽃처럼 예쁘다. 알이 분홍색인 반지는 없지 않아? 이거 한 번 꺼내주실 수 있나요?”
나는 조명 아래 전시된 수많은 반짝거림 중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분홍산호 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물 준비를 하기 전에는 생전 관심 없던 귀금속을 만지며 처음으로 엄마의 보석함을 꼼꼼하게 구경한 적이 있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은 한글날이었다. 두 분이 결혼하실 적에는 한글날이 공휴일이었다. 매해 돌아오는 결혼기념일은 아버지의 동문회가 있는 날이었고, 아버지는 결혼기념일에는 늘 동문회에 참석하여 친구들과 즐거운 오후 한때를 보내고 오셨다. 오시는 길에야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아버지는 늘 친구의 금은방에서 반지를 하나 사오셨다. 엄마의 보석함 속 반지는 아빠의 동문회 출석체크와도 닮은 것이었다.
“어머, 따님이 엄마에게 사주는 거에요? 딸 너무 잘 키웠다. 이거 예쁘죠? 이렇게 큰 산호 잘 없어요. 저도 마음에 드는 반지였는데 오늘에서야 임자 만나나 보네요.”
보석을 다루는 여자답게 곱게 나이 든 금은방 여주인이 우리 모녀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너무 잘 키워서 러시아에 가서 살아요. 조금만 잘 키울 걸 그랬죠.”
엄마답지 않게 거절도 안하고, 칭찬을 바로 꿀떡하며 반지도 냉큼 껴보았다. 손가락이 가늘고 긴 엄마의 손가락에 맞춘 것처럼 반지가 잘 들어갔다. 그런데 엄마의 손이 이렇게 주름투성이였나 싶었다.
“사장님, 이거 얼마에요? 제가 러시아 가기 전에 저희 엄마 반지 하나 꼭 사주고 싶었거든요. 아들 잘 키워줘서 감사하다고 시어머니한테는 당신 원하시는 거 다 사드리는데 정작 엄마한테는 저를 잘 키워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것 같아서 속상했거든요. 근데 이 반지가 제 눈에 쏙 들어 왔어요.”
사장님은 계약금도 걸지 않은 나를 기다려주었다. 드림포트를 나와 운 좋게 프리랜서 작가 밑에서 두 번의 출판 작업을 도왔고, 그에 대한 보수로 나는 결혼 전에 엄마에게 산호반지를 선물할 수 있었다.


***

나경아, 내가 그토록 원하던 딸을 낳아보니 네가 커서 출산을 겪어야 한다는 게 엄마로서는 또 걱정되더구나. 순산만을 생각했던 첫 출산이 난산으로 바뀌며 의사는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네 아빠에게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라고 했지. 나는 울면서 우리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길길이 반대했었고. 놀란 가슴 안고 자정께에 부리나케 양가 부모님이 병원으로 뛰어 오셨지. 마취에서 깨자 오한이 일었고, 내 주변을 양가부모님과 남편이 둘러싸고 있었지. 그런데 발치에 있던 내 오빠, 친정오빠를 보는데 왈칵 눈물이 나더라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오빠 손을 잡고 엉엉 울었어. 그때는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새벽 두 시쯤이었을 텐데 와준 올케에게도 참 많이 고맙고. 왜 그 순간, 남편도 부모님도 아니고 친정오빠를 보고 펑펑 울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
딸아, 임신하면 마음이 유리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부서지고, 모든 것이 투명하게 나를 관통하여 선명히 가슴에 담기더구나. 첫 임신에는 온전히 배 속의 아이와 교감을 할 수 있고, 예비아빠가 될 사위가 네 옆에서 잘하겠지. 그래도 산후조리만큼은 엄마가 옆에서 꼭 해줄게. 나는 네 아이와 있을 때 이 노래를 자주 들려줄 거야. 소년의 곱디고운 목소리로 부른 이 아름다운 민요를. 실은 이 노래는 네 오빠가 아니라 너를 가졌을 때 엄마가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이거든.



Track 42.
오연준 [Annie Laurie] 작사 William Douglas 작곡 Lady John Scott (스코틀랜드 민요)

Maxwelton's braes are bonnie
Where early fa's the dew
It was there that Annie Laurie
Gave me her promise true
Gave me her promise true
Which ne'er forgot will be
And for bonnie Annie Laurie
I'd lay me doon and dee

Her brow is like the snowdrift
Her neck is like the swan
Her face it is the fairest
That e'er the sun shone on
That e'er the sun shone on
And dark blue is her e'e
And for bonnie Annie Laurie
I'd lay me doon and dee

Her voice is low and sweet
She's a' the world to me
And for bonnie Annie Laurie
I'd lay me doon and d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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