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41. 넬(NELL) [기억을 걷는 시간]

41. 네가 누군가의 딸보다 아내라는 이름이 앞설 때

by 밍구


“엄마, 우리는 한국 사람인데 왜 러시아에 살아?”
한국으로 귀임하는 친구와 작별인사를 한 날 아들이 내게 묻는다.
“우리는 아빠가 러시아에 있는 회사를 다니면서 이곳에 살게 되었어. 시우도 한국에 가서 살고 싶어?”
나는 시우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어찌 하나 조금 걱정되는 마음으로 되묻는다.
“아니. 나는 러시아가 좋아. 나는 내가 그냥 러시아 사람이면 좋겠어. 그럼 여기서 사는 게 이상하지 않잖아.”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힘껏 맞은 기분이다.
“나도 러시아가 좋아. 여기가 제일 좋아.”
딸아이마저 최고급 표현을 쓰며 한국보다 러시아를 우위에 두는 모습을 보자 나는 조금 울적해지고 만다.



우리의 첫 신혼집은 정전이 잘 되는 집이었다. 아직 단지가 조성 중인 아파트 단지였던 터라 자주 전기가 끊어졌고, 늘 드릴이 내 귓속에서 돌아가는 것처럼 윙윙거렸고, 창문을 열면 매캐한 공사장 냄새가 바람에 실려 흙먼지와 함께 창틀에 새까맣게 내려앉았다. 나는 매일 공사판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신랑은 회식하는 날이면 새벽 세시가 되어야 집에 기어들어왔고, 그러한 회식은 매주 두세 번이 관례였다. 나는 고독한 마음을 어떻게 삭혀야 할지 몰라 노트북으로 종일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시끄럽게 틀어 놓았고, 휴대폰으로는 종일 한국 라디오에 주파수를 고정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남편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부탁하였다. 재봉틀이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공사 소리와 내 마음속에서 아우성치는 나의 잡음을 덮기 위해 내가 더 세게 드르륵 미싱을 돌렸다. 마트에 가면 술병을 쓸어 담았고, 향초와 카드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바늘 가게에 가서 아름다운 러시아 풍경 도안을 사서 눈이 침침해지도록 십자수를 놓았다. 한 달에 서너 번 남편이 숙직을 서는 날이면 잠 못 들도록 무섭고 괴로웠다. 밤이 길어서 울었고, 낯선 이 동네가 사나워 울었고, 남편의 공장 점퍼가 너무나 무심해서 울었다. 울다 보면 나는 또 펜을 들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고, 다음날 나는 우체국으로 향하는 산책길에서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기엔 내 청춘이, 나의 이십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선생님, 혹시 제게 과외 선생님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모스크바 시내로 가서 과외받을게요.”
나는 대학 시절 교환학생 면접을 준비하며 인연이 닿았던 어학원 러시아어 선생님께 SOS를 쳤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한번 나를 구제해줬다. 모스크바에서 교육학과를 졸업한 선생님은 현재 그 대학 학생 중 외국인을 대상으로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까마득한 당신의 후배와 나를 연결해주었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여대생의 이름은 디아나(Диана)였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디아나와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쇼콜라드니차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러시아어 공부를 했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서 모스크바를 가기 위해서는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있는 기차를 타고 1시간 20분을 달려야 했다. 모스크바 기차역에 도착하면 다시 전철을 30분 타야 아르바트 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과외가 있는 날이면 나는 하루를 몽땅 과외를 위해 움직였고, 그 다섯 시간의 외출이 일주일 중 가장 즐거운 나날이었다. 점차 모스크바행 기차가 몸에 익었고, 나는 과외가 없는 날에도 기차를 타고 올라가 홀로 미술관이나 전시회 나들이를 하고 왔다. 비로소 그때부터 이방인으로서의 내 삶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신혼을 즐기며 설핏 한국인에게 생소한 러시아 지방을 여행하며 여행 에세이를 만들겠다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의 꿈에 보조를 맞추고자 남편은 자주 러시아 지방 도시 여행을 계획하고 동행했다. 남편은 비록 평일에는 돈 벌어주는 기계처럼 회사에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 혹은 새벽까지 일했지만, 주말과 연휴에는 오직 나만 바라봐주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이곳에서 서로 믿고 의지할 이는 단둘뿐이었다. 그렇기에 싸우지도, 싸워서도 안 되는 우리는 서로에게 애틋했고, 각별했다.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우리는 변변치 않은 신혼여행을 무마하기 위해 아름다운 포르투갈로 떠났다. 그리고 그 여행은 우리 둘이 아닌, 셋의 첫 번째 여행이었다.


***

나경아, 너는 어느 곳에서 신혼의 둥지를 틀까. 엄마는 타국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것을 결정 내리고 키다리 할머니의 요리 비법을 적은 공책을 만들기 시작했어. 가장 첫 장은 오이소박이, 다음은 된장찌개, 그다음은 고등어무조림 등 그곳에 가면 가장 그리울 엄마 손맛이 담긴 요리를 쭉 적어 내렸지. 그래서 결혼하고 러시아에 가자마자 오이소박이를 야심차게 담갔어. 그게 지금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만. 막걸리 할아버지는 꼭 오이소박이 국물에 국수를 말아드셨어, 물론 나와 함께 말이야. 오이소박이를 하고 나니 그게 또 그렇게 먹고 싶어서 소면을 삶아 참기름을 휘이 둘러서 오이소박이 국수를 했는데 너무 맛있는 거야. 비록 부족한 맛이었지만, 흉내라도 내서 먹으니 살 것 같더라. 그래서 주말에 남편을 앉혀두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이소박이 국수를 해줬지. 어땠을 거 같아? 네 아빠는 한 젓가락 들더니 시큼하고 맛이 없다며 냉장고 문을 열어 계란을 꺼내 계란 후라이를 뚝딱 만들어 먹더구나. 그 모습이 얼마나 얌통머리 없고, 야속했던지 나는 꾸역꾸역 네 아빠 몫까지 두 그릇을 먹었지. 그리고 나는 결혼을 잘못한 것 같다며 엉엉 울었어. 우리 아빠 보고 싶다고, 아빠한테 네 만행을 다 이를 거라고 말하며 말이야.
아마 그래서일까. 네 아빠는 지금까지도 주말이 되면 엄마를 위해 요리를 해줘. 솜씨 없는 엄마의 요리가 먹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주말이라도 남이 해주는 요리를 맛있게 먹으라는 의미인지, 그도 아니면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를 내가 할 수 없기에 그런지 늘 네 아빠는 주말이면 당연하다는 듯이 맛있는 일품요리를 선보이지. 화가 나는 건 그 요리가 맛있다는 거야. 나도 한 번은 네 아빠가 해주는 요리가 맛없다며 한 숟갈 먹고 딱 숟가락 내려놓으며 그날의 복수를 해보고 싶은데 여태껏 복수는커녕 주말을 기다리는 요리 포기자가 되고 말았지.

되돌아보면 달랐던 거야. 6년을 만났으니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게 아직 많았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성인 남녀가 만나 한 지붕 아래 사는 건 연애와는 전혀 다른 거였어. 그 소소한 모든 것을 맞춰가는 게 신혼의 묘미였던 것 같아. 그래서 외롭다 느끼는 날도 많았고, 또 엄마보다 더 찐한 내 편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찬 날도 있었고, 반대로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을 만큼 내 짝꿍이 낯선 날도 있었고.

딸아, 참 이기적인 말이지만 너는 나 같지 않고 내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구나. 사위와 처음 부부싸움을 한 날에 내가 널 토닥여줄 수 있게. 네가 내 품이 그리울 때면 건너와서 잠시 친정집 네 방에서 몸을 뉘였다가 갈 수 있게. 너무 먼 곳에 살아서 내가 널 그리고, 네가 날 필요로 할 때 만나지 못해 눈물짓는 일 없도록 말이야. 엄마가 조금 더 널 보살펴줄 수 있게 부디 너는 나처럼 너무 멀리 떨어져 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Track 41.
넬(NELL) [기억을 걷는 시간] 작사·작곡 김종완 of NELL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너의 손길을 느껴
오늘도 난 너의 흔적 안에 살았죠
아직도 너의 모습이 보여 아직도 너의 온기를 느껴
오늘도 난 너의 시간 안에 살았죠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에 그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네가 있어 그래
어떤가요 그댄 어떤가요 그댄
당신도 나와 같나요 어떤가요 그댄

지금도 난 너를 느끼죠
이렇게 노랠 부르는 지금 이 순간도 난 그대가 보여
내일도 난 너를 보겠죠
내일도 난 너를 듣겠죠
내일도 모든 게 오늘 하루와 같겠죠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에 그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네가 있어 그래
어떤가요 그댄 어떤가요 그댄
당신도 나와 같나요 어떤가요 그댄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저 의자 위에도
물을 마시려 무심코 집어든 유리잔 안에도
나를 바라보기 위해 마주한 그 거울 속에도
귓가에 살며시 내려앉은 음악 속에도 네가 있어
어떡하죠 이젠 어떡하죠 이젠
그대는 지웠을 텐데 어떡하죠 이제 우린

랄라라라라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라
랄라라라라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라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 눈시울이 붉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 눈시울이 붉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

랄라라라라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라
랄라라라라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라
랄라라라라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라
랄라라라라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랄라라라랄라라라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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