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연애소설의 첫 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할 때
“시우야, 오늘 외식할까? 뭐 먹고 싶어?”
우리 집에서 가장 입이 까탈스러운 아들에게 슬쩍 외식을 권해본다.
“응, 나 양고기 먹을래. 손으로 잡고 뼈 뜯는 거. 그거 다 먹으면 뼈다귀로 미라 만들 거야.”
시우는 예상대로 양고기 샤슬릭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 소와 돼지, 닭과 양 중 양고기 샤슬릭을 제일 좋아하는 아들의 취향은 나를 닮았다. 단골 샤슬릭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내 생애 첫 샤슬릭을 맛본 날을 떠올렸다.
구월이 시작되기 전 팔월 한 달, 러시아의 찬란한 여름이 텅 빈 기숙사에도 찾아왔다. 나침반 오빠와 나만 남겨두고 친하게 지내던 같은 학교 여선배 셋이 모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심지어 그 당시 기숙사에는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 단둘뿐이었다. 학생들 모두 자신의 나라나 여행으로 휴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우리도 각자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하여 밥도 따로 먹는 바람에 하루종일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충전인지 방전이지 모를 시기를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주고 간 미국드라마 CD <위기의 주부들>로 버텼다. 그렇게 보름 정도 무인도를 체험하다가 하나둘 새 학기 개강을 위해 모든 학생이 속속 기숙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여름볕이 사그라지지 않은 팔월의 끝자락이었다. 별안간 후두두 떨어지는 빗소리에 드라마를 멈추고 창문으로 의자 방향을 틀어 러시아 소나기를 물끄러미 보고 있을 때였다.
“야씨, 얼렁 뛰어!”
한국말이 창밖에서 들리자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 너머 그들을 보았다. 기숙사 건물로 캐리어를 덜컹거리며 뛰어 들어오는 두 사람은 지난 학기 한 번도 제대로 말을 나눠본 적이 없던 다른 학교 남자 선배 둘이었다. 그럼에도 반가운 마음에 나는 쪼르르 기숙사 현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너를 왜 이제 알았을까. 그냥 공부 잘하고 보드카 잘 마시는 아이인 줄 알았어.”
온통 노란빛으로 물든 가을 길을 함께 걸으며 오군이 말했다.
러시아어 실력이 출중하여 지난 학기 고급반에서 수업을 받았던 오군은 나와 겹치는 것이 어느 하나 없었다. 시간표도 많이 달랐고, 강의실도 다른 건물이었고, 기숙사도 나는 왼쪽 동 그는 오른쪽 동이었다. 한국에서의 대학도 달랐기에 나는 함께 교환학생 온 여선배들과, 그는 함께 어학연수 온 절친한 형과 지난 학기를 어울려 보냈다. 그러나 새 학기의 시작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함께 어울려 다니던 언니들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갔고, 신학기에 맞춰 반도 새로 배정받았으며, 기숙사 방도 옮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늘 오군이 함께한 점이다.
“너 여태 샤슬릭도 못 먹어봤어? 아르메니아 시장에 가자.”
처음 보는 시장 풍경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지금도 선명하다. 가을비에 축축했던 길을 걷는데 연기와 함께 샤슬릭 굽는 소리와 냄새가 진동했다. 오군은 그중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샤슬릭을 굽고 있는 사내의 가게로 나를 이끌었다. 빨간 소스와 양파를 곁들인 샤슬릭과 맥주 한 병을 맛있게 먹고 기숙사로 함께 발길을 돌렸다. 가을바람이라기에는 초겨울을 연상케 하는 찬 공기에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 찰나에 그가 손을 잡아 자신의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시장에서 기숙사로 가는 길에는 넘어야 하는 오래된 고가가 있었다. 고가 밑으로는 기찻길이 놓여 있었고, 고가 위에는 많은 차가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아주 시끄럽고 후진 고가 위에서 내게 고백했다.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소음 때문에 그가 내 얼굴 바로 앞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샤슬릭과 양파가 한 데 버무려진 고약한 냄새만큼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내 생애 처음 받아본 사랑 고백이었다. 늘 발화되지 못하고 내가 맴돌거나 상대방이 어물쩍거리다가 수그러들었던 감정이 마음 밑바닥을 서성였다. 학창시절 내리 사랑이라기에는 이별이 무서워 애써 우정으로 마음을 틀어 분홍색 위에 초록색을 덧칠했다. 그러한 까닭에 고백을 받을 거란 생각을 전혀 못했던 나는 그의 고백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대답을 해줘야하는 것조차도 몰랐다. 그러자 그는 맞잡은 손을 주머니에서 끄집어내 자신의 조끼 지퍼를 조금 내려 가슴에 가져갔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손바닥에 들렸다.
“진심이야, 민아야. 한국에 가면 너를 놓칠 것 같아. 우리 사귀자.”
고가를 내려오자 대로에는 넓은 건널목이 놓여 있었다. 신호등의 초록 불이 켜졌을 때 나는 그러자고 하였다. 그날로 오군은 내 첫 남자친구이자 마지막 남자친구가 되었다.
***
나경아, 네게 엄마 아빠의 연애 시절 얘기를 하려니 참 부끄러우면서도 내 부모님 생각이 나는구나. 키다리 할머니와 막걸리 할아버지는 편지로 인연이 시작되었단다. 글을 잘 쓰는 모범생 할머니에게 담임 선생님께서 국군장병 위문편지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 넌지시 물었다는구나. 그래서 막걸리를 좋아하는 군인 아저씨에게 키다리 여고생은 정성스레 편지를 썼고 그들은 아마 군 휴가 때 포장마차에서 처음 만났다지. 사회초년생 아가씨에게 참새구이는 좀 심하지 않았니. 가만 보니 네 아빠도 고백하던 날 양파가 뒤범벅된 샤슬릭을 내게 사줬네. 고백의 냄새가 그러한 건 서글프지만, 그 덕분에 엄마는 지금도 샤슬릭을 먹은 후 네 아빠가 트림할 때면 그 고가 위 생각이 난단다. 아무튼, 술이 거나하면 부모님은 당신들의 연애 시절 얘기를 내게 해주셨어. 그 얘기를 들을 때면 두 분 모두 하나뿐인 연인이 배우자가 된 게 참 부러웠지. 소중한 처음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서 말이야.
엄마가 연애소설의 첫 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그가 내게 들려준 노래야. 이어폰 한 짝씩 나눠 끼고 예카테린부르크의 가을 길을 신발 밑창이 닳도록 걸었어. 네가 처음 사랑을 알게 될 나이는 몇 살일까. 엄마는 스물둘에서야 사랑을 배웠어. 너도 부디 너무 어설픈 나이에 미숙하게 마음을 흩어버리지 않고, 또 예쁜 마음을 놓치거나 애써 뭉개거나 오랜 고독하지 않게 잘 다루길 바라마. 무엇보다 엄마는 근사한 청년이 우리 딸의 그 마음을 따뜻한 손으로 잘 어루어만져주며 네 진가를 알아봐 줬으면 좋겠구나.
Track 30. 김건모 [사랑해]
작사·작곡 김창환
(Baby tonight) Oh my love, you're my life everyday
(Baby tonight) Oh my love, you're my life everything
이렇게 너를 보고 있으면 난 입 맞추고 싶고
이렇게 너와 둘이 있으면 나는 너를 안고파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를 내 자신보다 더
꽃이 피면 나비가 되 줄게
내 뒤를 따라 날아오면 돼
비가 오면 우산이 되 줄게
내 품에 안겨서 넌 비를 피하렴
낙엽 지면 친구가 되 줄게
내 손을 잡고 걸어가면 돼
눈이 오면 지붕이 되 줄게
내 코트 안에서 넌 편하게 쉬면 돼
(Baby tonight) Oh my love, you're my life everyday
(Baby tonight) Oh my love, you're my life everything
니가 내 곁에 있으면 난 너무나 행복해
니가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아
어쩌다 니가 삐져도 난 너무나 귀여워
너의 전부를 사랑하니깐 난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꽃이 피면 나비가 되 줄게
내 뒤를 따라 날아오면 돼 (oh my love)
비가 오면 우산이 되 줄게
내 품에 안겨서 넌 비를 피하렴 (비를 피해)
낙엽 지면 친구가 되 줄게
내 손을 잡고 걸어가면 돼 (내 손을 잡아)
눈이 오면 지붕이 되 줄게
내 코트 안에서 넌 편하게 쉬면돼 (편하게 쉬면돼)
(Baby tonight) Oh my love, you're my life everyday
(Baby tonight) Oh my love, you're my life ever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