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동생은 자식이 하나 있다. 나를 큰엄마라고 부르는 초딩 1학년이다. 나는 세상의 장난감들을 이 아이에게서 배웠다. 1년 단위로 최애 장난감은 바뀌었다. 시작은 타요와 뽀로로다. 훗. 귀엽네. 그 정도는 애 없는 나도 알지. 그다음 단계는 로보카 폴리와 고고다이노다. 아이구. 귀여워. 자동차와 공룡이구나. 근데 그다음이 좀 이상했다. 티니핑? 이게 뭔데? 양갈래 곱슬머리 핑크핑크 가분수 요정 캐릭터로 당시 막 유행을 타기 시작한 캐릭터였다. 형님, 이거 완전 파산핑이에요. 00핑이라고 이름 붙은 게 끝도 없어요. 피규어고 인형이고 잡았다 하면 몇만 원이라니까요? 레어핑은 있으면 다행이에요. 사지도 못하는 걸 구해내라 드러누워요. 당근에 웃돈 주고 산다니까요? 미치겠어요 요즘. 어머, 정말? 근데 우리 조카.... 남자아이잖아?
응당 로봇으로 넘어가야 할 단계가 캐릭터인형으로 넘어가다니. 수십 개의 칸으로 나뉜 보석함엔 손가락만 한 00핑들이 수도 없이 들어있었다. 동서는 군데군데 비어있는 칸들이 문제라 한다. 이 보석함을 다 채우면 뭐가 되는 거야? 왕 티니핑이 있는 거야? 힘을 모아 악당을 물리치는 거야? 뭔데? 뭐길래 난린데? 내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도 몰랐다. 티니핑이 뭔지. 근데 내 아이도... 남자아이잖아?
티니핑은 '이모션 왕국'에 거주하는 감정 요정이다. 인간도 나오는데 로미라고, 얘 실수로 티니핑이 지구에 오게 된다. 그러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만화로 그려진다. 마리로 세어야 하나, 명으로 세어야 하나. 2020년에 등장한 이 요정들은 찐 주인공인 하츄핑을 필두로 151마리다. 만화는 딱히 스토리가 없다. 그냥 양으로 승부하는 느낌. 내가 감이 없나. 등장 5년 만에 대한민국 얼딩 유딩 다 제패하고 일본까지 접수했다. 그래, 뭐 남자아이라고 꼭 로봇만 좋아하라는 법은 없지. 그런데 도대체 왜 인기인 건데. 이해해보려 해도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비슷비슷한 생김새에 개성도 없어 보여. 부모 지갑 노린 아치핑이야 뭐야.
놀라운 건 아이는 모두 구별한다는 것이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처럼 티니핑100송이 있는데 부지불식간에 100마리가 지나간다. 아이는 다 따라 부른다. 천재 아니야? 치유의 빛나핑, 소망의 초롱핑, 밝음의 빤짝핑, 극복의 깡총핑, 활동의 훌라핑, 나눔의 나눔핑. 이름도 맘에 안 든다. 경찰티니핑은 꼼딱핑, 소방티니핑은 뜨거핑이다. 너무 막 지은 거 아니냐고. 그냥 다 갖다 붙이면 핑이냐고. 이런 대충핑 같으니라고.
유병재가 티니핑 106종 외우기를 하길래 아이와 같이 봤다. 쌍둥이 머핑커핑을 보고 머더뻐킹이라 외우고 아가리x내난다고 해서 악동핑, 삐죽 양갈래 머리 하한가 두 개 같다고 아이고 잉생 망쳤네 아잉핑 이런 식으로 106마리를 다 외운다. 아이는 옆에서 그림만 보며 다 안다. 너 정말 천재야? 아, 나 하츄핑은 안다. 얘 하츄핑 맞지? 엄마 얘는 다이아하츄핑이고 얘는 스타하츄핑이잖아. 와 이쯤 되면 어지럽다. 똑같은 하츄핑인데 5마리 다 다르단다. 올해 시즌은 5월 마지막회 선공개를 끝으로 다음 시즌을 예고하며 끝났다. 또 어떤 자가복제일까. 멀미 난다. 이거 만든 어른들, 정말 돈에 미친 거 아니야?
휴가지 모닥불 앞에서 아이에게 노래 한곡 뽑아보라 한다. 아이는 잔잔한 단조와 장조를 오가는 노래를 부른다. 한 달 전부터 혼자 있을 때마다 부르던 노래다. 나무 타닥타닥 타는 소리와 개구리울음소리와 아이의 목소리가 어우러진다. 이제야 가사가 들린다. 널 위해 난 노래 부를게. 저 별들도 나를 따라와. 우리 모두 행복해지는 마법. 루루루루~ 아이야. 혹시 이거 티니핑송이야? 아니 루루핑송이야. 루루핑은 또 누구야. 싱어송라이터 핑이야. 너 그런 단어도 알아? 엄마는 이거 네가 지어낸 노랜 줄 알았어. 너 진짜 천재 맞구나? 씽어씽어쏭 노래 불러줘 내 마음을 밝혀주는 멜로디 씽어씽어쏭 너를 위해 난 노래하는 별이 돼 줄게. 짝짝짝. 꼬옥 안아준다. 아이가 나에게 귓속말을 한다. 엄마. 엄마는 로미공주예요. 티니핑에서 로미공주가 제일 예뻐요. 오늘부로 티니핑에 대한 거부반응을 거둔다. 퇴근하며 아이가 부른 루루핑송을 듣는다. 난, 내 아이의 로미공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