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의 기억은 어찌나 강렬한지. 컴백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지깅윗땟 쒜끼빠리~컴앤겟챠 뿌렠뗏빠리~ 쥌키땐! 줵키땐! 위윌게땨 뿌렠뗏빠리~ 뚜루룹뚜뚜루루. 소리 나는 대로 적어보니 이게 외계어가 아니고 무어냐. 이건 세기말 젝스키스 노래 ‘컴백’의 도입부다. 영어 랩인데 구수한 사투리 같기도 하고. 이모, 젝키가 뭐예요? 제티는 아는데. 아 세월이여. 우리 이모가 박남정 이야기에 핏대 세울 때 뭐라고 하지 말걸.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
아무튼 이 노래는 메가초울트라빅히트를 쳐서 티비에도, 라디오에도, 길거리에도 안 나오는 데가 없었는데 제일 많이 들린 곳이 바로 오락실이다. 엄마 나 도서관(말고 옆 시내) 좀 다녀올게. 버스를 타면 교복치마 허리를 세 번 정도 접는다. 그럼 짧아진다. 진짜 깡년처럼 완전 줄이지는 못해도 찐따가 되기 싫은 소녀의 객기랄까. 내가 살던 창원의 시내는 정우상가다. 노래방과 주점이 즐비해 전국이 아는 상남동 옆이다. 정우상가 주변에는 아트박스도 있고 장우동도 있고 김가네도 있고 오락실도 있다. 그 오락실에, 펌프가 있다.
노래에 맞춰 박자에 맞춰 다섯 개의 버튼을 발로 누르는 단순한 게임. 이지, 노말, 하드모드가 있는데 자신의 기량에 따라 선택한다. 나는 펌프에서 대중가요, 클래식, 하드락, 펑키를 배웠다. 앞에 나온 젝키의 ‘컴백’이 내 최애 펌프 곡이었다. 일단 노래가 시작되면 화면에 우주선이 떠다니며 도입부의 긴장감을 높인다. 랩 파트는 그냥 서서 하는 게 아니다. 왼발로 중심을 잡고 한 바퀴 돌면서 오른발로 1 사분면부터 4 사분면까지 버튼을 누른다. 노바소닉의 ‘또 다른 진심’은 내 차애 곡이다. 간주란 없다. 웃기지 마라 우린 그저 끝난 것뿐인데 하면서 펌프 기계가 부서져라 쾅쾅 버튼을 밟는 맛이 있다. 클래식 베토벤 바이러스는 하드모드가 찐인데 한 번도 깬 적이 없다. 이건 질질 끌리는 카고바지를 입고, 화면을 보지 않으며, 팔을 뒤로 재껴 봉을 잡은 채, 버튼을 무심한 듯 휘황찬란하게 밟는, 그 시절의 동네 연예인 ‘잘 나가는 오빠’들이나 클리어할 수 있는 곡이었다. 그를 빙 둘러싼 소년 소녀는 그저 구경할 뿐이다.
한차례 펌프쇼가 일단락되면 그 옆 코인노래방에 쏙 들어간다. 2명도 버거운 코딱지만 한 공간이다. 부르는 노래는 정해져 있다. 금영 5188 태진 4263. 20년이 지나도 외우는 노래방 번호. 진주의 '난 괜찮아'. 도대체 뭐가 괜찮은 건데. 아무리 약해 보이고 아무리 어려 보여도 난 괜찮다니. 그때의 난 진짜 약했고 어려서 그런 노래를 불렀던 걸까. 매일이 걱정이고 고난인 요즘은 괜찮지 않아서 이 노래를 안 부르는 걸까. 그래, 뭐 지금은 온갖 풍파에 찌들어서 약하고 어리진 않지. 암.
엇, 이건 분명 진주 언니의 '난 괜찮아'인데. 라디오에서는 영어로 부른다. 아 윌 서바이브. 미국에서 진주 언니 노래 표절한 거 아니야? 서울의 기획사 전화번호를 찾아본다. 친구가 옆에서 말린다. 야, 저게 원곡이거든? 진주가 뻬낀거야. 커서야 알았다. 그건 번안곡이라는 것을. 미국가수가 표절한 것도, 진주 언니가 베낀 것도 아닌 돈 주고 산 똑같은 곡이라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캔 '내 생애 봄날은' 포지션 '아이 러브 유'도 다 원곡이 있다는 것을. SES '드림스 컴 트루'가 번안곡이란 걸 알았을 땐 진짜 배신당한 느낌이었달까.
요즘의 광안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대형 오락실이다. 산책하다 우연히 들린 그곳에 그 옛날 펌프가 있다. 함 해 보까! 이젠 용돈을 아껴 동전을 모으지 않아도 된다. 각종 페이 덕에 뽑아놓은 지폐가 없을 뿐. 어찌저찌 동전을 만들어 기계를 작동시킨다. 젝키의 '컴백' 죽지도 않고 아직 있네. 자 드가자~ 어머, 둔탁한 발재간에 스스로가 부끄럽다. 그래도 몸은 펌프 족보를 기억하나니, 발과 박자가 딱딱 맞아 퍼펙트가 난무한다. 뿌듯함도 잠시, 격했나. 허리랑 도가니가 쑤신다. 옆에선 다섯 살 아이가 버튼에 불 들어온다고 좋다고 날뛰고 있다. 그래, 나 애 엄마였지. 엄마에게 거짓말하지 않아도 오락실에 갈 수 있지만 엄마 역할 해야 해서 오락실 갈 시간이 없는 애 엄마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