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방학이다. 수목금토일월화수목금토일이다. 아이는 방학이지만 나는 방학이 없다. 자체 방학을 만든다. 우리 팀은 팀원끼리 연차를 겹쳐 쓰지 못한다. 비어있는 월화를 내가 삐집고 들어간다. 금토를 쉬는 나와 토일을 쉬는 남편이 2번의 금토일은 커버한다. 남은 수목수목. 어린이집에서는 나 같은 워킹맘을 위해 통합보육을 실시한다고 했다. 어린이집은 우리 아파트 1층이다. 방학 첫날, 출근하며 지나가며 쓰윽 신발장을 본다. 총 70명의 원생 중 놓인 신발이 6짝 정도다. 하루 종일 친구도 없이 어린이집에서 눈치만 본다 생각하니 보내지를 못한다. 결국 소환되는 건 조부모다.
나는 이 동네에서 유명한 팔자 좋은 워킹맘이다. 얼마 전 동네 엄마들과 처음으로 자리를 가졌다. 아이가 어린이집 입학한 지 2년 반이 넘었는데 말이다. 끼워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여기서 소디쨩이라는 이름은 필요 없다. 윤이엄마, 유명해요. 어머니가 윤이 봐주러 앞동으로 이사 오셨잖아요. 다른 엄마들이 얼마나 부러워한다고요. 친정엄마가 옆에 있는 게 얼마나 든든해요. 맞다. 우리 엄마는 아이를 봐주기 위해 내가 사는 아파트 앞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이를 하원시키고 저녁을 먹이고 퇴근한 나까지 먹인다. 다른 엄마가 거든다. 그리고 윤이네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가까이 계시잖아요. 맞다. 시부모님도 아이 탄생에 맞춰 부산으로 이사 오셨다. 남편은 내가 일하는 일요일마다 본인의 본가로 간다. 그러니까 아이는 일주일 내내 조부모와 함께 한다.
여하튼 비어있는 수목수목도 결국 조부모가 소환된다. 아이에겐 똑같은 할머니들이지만 나에겐 마음 쓰이는 정도가 다르다.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와서 아이를 봐주실 땐 바쁘다. 집도 치워야 하고 냉장고도 청소해야 하고 화장실도 깨끗하게 만든다. 누가 눈치 주는 것도 아닌데 우리 엄마가 올 때처럼 너저분하게 해 놓을 수가 없다. 반찬도 만들고 유부초밥도 싸놓는다. 하루 종일 맡겨 죄송하다는 말이 입에 붙는다. 사실 매일매일 맡기는 우리 엄마에게도 해야 하는 것들이지만 나는 못된 년이라 차등을 둔다. 엄마는 나에게 집 좀 치우라 잔소리할 수 있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한테 그런 소리도 못하시니 어쩌면 쌤쌤일지도.
사돈에게 아이를 맡긴 우리 엄마는 전전긍긍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시부모님이 오시기로 한 전날, 본인이 아이를 보겠다는 말을 10번은 더 한다. 결국 나는 화를 낸다. 엄마도 방학 때 보지 않았냐고, 이미 매일매일을 보지 않냐고. 왜 그리 전전긍긍하냐고. 시부모님이 오는 직전까지 내한테 그리 말하면 어쩌냐고. 내가 다 조율해 셋팅한 상태인데 왜 어그러뜨리냐고. 그냥 쉬라 할 땐 쉬시라고. 엄마는 아이만 보는 게 아니다. 매일 저녁 나에게 아이를 인수인계 하고 나면 본인의 엄마집으로 출근한다. 노모와 손자 동시케어 환장의 꼴라보에서 엄마도 숨 쉴 구멍이 좀 있어야 되지 않냐고. 내가 다다다다 쏜 톡에 답이 없다. 나조차도 내가 뱉은 말들이 엄마를 생각해서 한 말인지 그냥 짜증을 낼 사람이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9월엔 엄마의 유럽여행이 예정돼 있다. 남동생이 수능 치면 간다고 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그 동생이 벌써 서른 살이다. 연말엔 여동생의 출산이 있다. 여동생은 미국에 있다. 적어도 한 달은 부재다. 아이에 발 묶인 우리 엄마는 이 스케줄들을 나에게 '허락'받는다. 눈치를 본다. 나는 입으로는 엄마 당연히 가셔야지 왜 윤이 생각을 하노 호언장담했지만 속으로는 나 어쩌지. 2월은 어린이집 졸업이라 2주를 통으로 쉴 텐데 어쩌지. 9월은 연차도 못쓰는데 어쩌지. 그냥 어쩌지의 향연이다. 나는 진짜 진짜 못된 년이라 내 출산 때 2달을 공짜로, 통으로, 그 이후에도 뻔질나게, 아니 지금까지도 엄마의 호위아래 있음을 까먹는다. 주구장창 여행을 다니면서도 엄마는 왕할머니때매 못 가잖아 사실 아이랑 가면 더 힘들잖아 하며 미뤄버린다. 답장 없는 카톡에 슬며시 다시 이모티콘을 보낸다. 엄마. 내일 윤이랑 왕할머니집 갈까? 팔자 좋은 워킹맘은 이리 문때고 저리 문땐다. 방학, 참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