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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Aug 30. 2020

비행기타고 퇴근합니다

격주 목요일마다 김해공항으로 향한다. 7시반 칼퇴를 한다면 8시20분엔 김해공항역에 도착한다. 지하철에서 내려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두리번거리지 않고 국내선 청사로 곧장 향한다. 마치 정해져있는 길을 걷는 사람처럼 거침없이 돌진한다.       


청사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발게이트로 간다. 게이트는 두 군데로 나눠져있는데, 직원을 대면해야 하는 일반 게이트와 미리 손바닥 정맥을 등록한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사전등록 게이트가 있다. 줄이 밀려있는 일반 게이트를 유유히 지나 사전등록 게이트로 향한다. 신분증도 필요 없고 마스크를 내릴 필요도 없다. 모바일 체크인 된 휴대폰을 들이대고 손바닥을 쫙 피면 끝. 직원이 일일이 얼굴을 대조해 확인하는 방법보다 간편하고 정확하다. 기계가 대체하는 인간의 일들은 점점 더 늘어난다.      


수화물 검색을 기다리는 여러 갈래 중 가장 빨리 줄어드는 줄을 난 안다. 일단 백팩족은 노우! 노트북을 꺼내느라 우왕좌왕 할 수 있다. 옷을 껴입고 모자를 쓴 사람도 패스. 그것들을 벗느라 시간이 지체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내가 향하는 줄은 나처럼 비행기로 퇴근하는, 양복깃에 회사 배지를 달고 비즈니스 가죽가방을 든 중년 남성의 뒤다. 그도, 나도, 검색대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싫어한다.      


비행기를 타고 퇴근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남편의 발령으로 부산-진해 짝퉁 주말부부에서 부산-서울 찐 주말부부가 됐다. 일의 특성상 금요일은 출근하지 않는다. 대신 일요일에 출근한다. 불목의 비행기 삯은 불금의 비행기 삯에 비해 절반도 안 된다. 복지는커녕 워라밸 시대에 이래도 될까 하는 회사를 다니며 딱 한 가지 좋은, 남들보다 하루를 먼저 사는 나다.      


처음엔 비행기를 타고 퇴근하는 게 신났다. 항상 설렘이 가득한 공간, 쉽사리 타기 힘든 비행기, KTX타는 것보다 고급진 느낌(버스는 선택지에조차 없음). 부자가 된 것 같기도 하고. 활주로를 달려 상공에 부왕~ 하고 뜰 때면 놀이동산 바이킹을 타듯 내 마음도 부왕~ 했다. 하지만 총 6개월 24번의 비행기를 타고 보니 이제 그 짧은 부산-서울 50분마저도 지리하다.       


여하튼 목요일 마지막 서울행 비행기는 언제나 만석이다. 다들 서울엔 왜 가는 걸까. 탑승 맨 마지막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실의 승객들을 살핀다. 탑승시작 전부터 줄을 늘어뜨려 선 사람들. 최근엔 휴가차 부산을 들른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짧은 바지에 편한 신발, 풀어지고 피곤한 얼굴이지만 휴가지에서의 즐거웠던 기억과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이 얼굴에 서려있다.  양복맨도 많다. 출장을 왔든, 기러기 아빠든, 나처럼 부산서 일을 하고 서울의 집으로 향한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봤는데, 그럴 리가 없다. 제 아무리 높은 상무님도 밤 9시 회사로 향하는 표정이 좋을 리가 없잖아.      


내가 마지막 탑승인 줄 알았는데 뒤이어 헐레벌떡 뛰어오는 진짜 마지막 승객이 있다. 그 사람과 내가 자리를 찾아 앉는다. 원래는 강박적으로 앞자리 복도석을 선호했었다. 빨리 내리려고. 이젠 맨 뒷자리 창가석이 좋다.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마자 빨딱 일어나 좁은 통로에 얼기설기 얽혀 서 굳게 닫힌 비행기 문만 바라보는 대신 맘 편히 앉아 천천히 내리기로 했다. 어차피 5분 차이인데 왜 그리 아등바등 했었나. 아, 물론 2C석이 비어있었을 땐 냉큼 지정했다. 사실 비행기에서 첫 번째로 내리는 기분, 완전 째진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승무원들이 비상시 안전요령을 설명한다.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지금이 그네들은 얼마나 다행일까. 참기 힘든 진상에게도 잇몸까지 만개하며 활짝 웃어야 하는 그들의 업이 마스크로 인해 한결 편해보였다. 어쩌면 눈은 웃으면서 입으론 욕 하고 있을지도 몰라. 마치 오늘 회사에서의 나처럼.      


부왕 하고 떠오른 비행기가 일정 궤도에 안착하면 레이디스 앤 젠틀맨을 찾는 캡틴 스피킹이 나온다. 안도한다. 이 육중한 고철덩어리를 책임지는 대장이 나의 목숨줄을 쥐고 있다. 부산과 서울은 멀고도 짧아 우리의 캡틴은 반갑다는 인사와 조심히 살펴가라는 인사를 함께한다. 발밑으로 서울이 반짝거린다. 여기선 월세 50의 반지하 자취방도 매매 15억의 아파트도 다 코딱지만 하다. 10시가 가까워진 시각, 야근을 했다고 생각할까. 목요일 밤 퇴근길이 참 길다.



비행기 좌석 중 가장 앞자리 걸렸던 2c. 참고로 19900원 주고 탄 비행이었다!!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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