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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Sep 13. 2020

유튜브는 나에게 BTS를 추천하질 않는다네


자려고 누웠으면 바로 스르륵 잠들면 좋으련만 난 오늘도 머리맡의 폰을 집어 든다. 인스타도 연예뉴스도 좋지만 요즘은 무조건 유튜브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향연을 헤집어 보는 재미가 있다. 몰랐던 보사노바, 요즘 가장 유행하는 프로그램, 따라하고픈 요리법 등등. 그렇다고 백발백중 좋은 추천은 아니다. 거 알고리즘 양반. 어째서 나에게 필기에 집중하는 고3 브이로그를 추천하오? 어째서 원숭이 춤을 추는 유치원생을 추천한단말이오?      


그러던 어느 날 이 알고리즘 선생이 영상 하나를 추천했다. 뿌까머리를 하고 빨간 체크 원피스를 입은 대학생. "안녕하세요! 적당히 바람이 시원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유후~ 끝내줬어요! 긴장한 탓에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았죠 바보같이" 2005년 대학가요제 마지막팀 익스의 '잘부탁드립니다' 무대 영상이었다.  난 이 무대를 생방송으로 봤었다. 당시 고3이었는데 내년부터 대학생이 될 테니(재수는 절대 하지않겠다는 굳은 의지ㅋㅋ) 미리 예습을 해야 한다며 야자를 째고 티비를 켰다. 그런데 내가 야자를 짼게 무색할 정도로 티비에선 알 수 없는 음악들만 계속되고 ‘아 내일 담임한테 디지게 혼나겠네’ 하면서 방에 들어가려던 순간 익스가 나온 것이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이건 대상이다’ 생각했고 나와 같이 야자를 째고 집에서 티비를 보는 친구들에게 80자를 꾹꾹 채워 ‘대박대박대박’ 문자를 보냈었다.      


몇 개월이 흘러 진짜 대학생이 된 나는 새터에서 예쁘장한 여자 동기들이 인사대신 이 노래를 앞다퉈 부르는 걸 보았다. 그게 낯간지러웠지만 부러웠던 나는 다른 동기 아이들과 3000원 짜리 노래방에서 떡튀순을 먹으며 ‘안녕하세요~!’를 소리 질렀다. 사실 이 노래는 취업이 잘 안 풀리던 학생이 면접을 망치고 한탄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는데, 우리의 새내기 시절은 취업도 직장도 월급도 상관없는 딴 세상 이었기에 그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지금은 대학가요제가 뭔지도 모를 20학번이 학교에서 동기들도 못 만난 채 2학기를 맞이하는 시대지만, 그땐 그냥 생각이 없었다.

       

내가 감복한 익스 영상 이후 알고리즘 선생은 주구장창 대학가요제 영상을 나에게 추천했다. 익스가 데뷔한 2005년에서 20년을 거슬러 1985년도 높은음자리의 '저 바다에누워'라는 곡도 그 중 하나였다. "물결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물결처럼 흘러만 간다~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물살의 깊은 속은 항구는 알까~" 대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촌스러운 용모의 두 남녀가 힘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가사를 헤아려본다. 배를 뒤집어 깐 물새가 하늘을 보며 유유자적 하는 모습. 낭만이 있다. 그 밑에 달린 수십 개의 댓글에서 그들의 근황을 안다. 대상을 받은 이들은 동거 중이었는데  노래의 성공 후 헤어졌기 때문에 다시는 이 화음을 듣지 못한다는 그런 내용. 그 시대에 동거라니, 힙하다! 다시 보니 짙게 배인 눈 화장을 한 여학생과 시티보이 같은 펑퍼짐한 남방을 입은 남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게 1885년의 힙이었던거야. 아주 그냥 힙이 터지는 듀엣이었던게야!

     

똑똑한 알고리즘 선생은 추천 영상의 클라이맥스를 알리듯 대학가요제 레전드 무대를 소개한다. 안보고는  배기겠지? 클릭하고 싶지? 하며 나를 약올리듯  번이나 영상을 올린다. 1988년도 대학가요제. 여자 엠씨가 “여자친구 있을까요?” 물으니 “절대로 없죠?”라며 1 긴장하지 않고 대답하는 앳된 얼굴의 서강대생 신해철. 신디사이저 전주만으로  궁디를 들썩이게 만드는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있어요~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가 그대 곁에 있겠어요~"  졸린 눈을 비비며 그가 디제이로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 새벽 2시를 기다리던 고스 키즈는 그가 떠나고 수년이 지나서도 새벽 2시에 잠을 안자고  전설의 시작을 보며 물개박수를 친다.

      

뉴스에선 연일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했다며 호들갑을 떠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알고리즘 선생은 3억 회가 넘게 재생된 이 영상을 나에게 추천하지 않는다.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엔 싸이월드 시절 노래만 가득한 나를, 제철 노래는 제껴두고 맨날 듣는 노래만 반복하는 나를, 이 똑똑한 알고리즘 선생은 진짜로 꿰뚫는 것일까. 소오름! 어제 밤에는 이상은의 '담다디'가 추천 영상에 떠있었다. 이제 대학가요제에서 강변가요제로 넘어가는 순간인가.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 담 담다리 다담 담다리 담.          



지금봐도 귀엽고 깜찍하고 발랄하고 패기넘치는 딱 대상감의 익스 보컬 이상미 분!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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