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누웠으면 바로 스르륵 잠들면 좋으련만 난 오늘도 머리맡의 폰을 집어 든다. 인스타도 연예뉴스도 좋지만 요즘은 무조건 유튜브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향연을 헤집어 보는 재미가 있다. 몰랐던 보사노바, 요즘 가장 유행하는 프로그램, 따라하고픈 요리법 등등. 그렇다고 백발백중 좋은 추천은 아니다. 거 알고리즘 양반. 어째서 나에게 필기에 집중하는 고3 브이로그를 추천하오? 어째서 원숭이 춤을 추는 유치원생을 추천한단말이오?
그러던 어느 날 이 알고리즘 선생이 영상 하나를 추천했다. 뿌까머리를 하고 빨간 체크 원피스를 입은 대학생. "안녕하세요! 적당히 바람이 시원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유후~ 끝내줬어요! 긴장한 탓에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았죠 바보같이" 2005년 대학가요제 마지막팀 익스의 '잘부탁드립니다' 무대 영상이었다. 난 이 무대를 생방송으로 봤었다. 당시 고3이었는데 내년부터 대학생이 될 테니(재수는 절대 하지않겠다는 굳은 의지ㅋㅋ) 미리 예습을 해야 한다며 야자를 째고 티비를 켰다. 그런데 내가 야자를 짼게 무색할 정도로 티비에선 알 수 없는 음악들만 계속되고 ‘아 내일 담임한테 디지게 혼나겠네’ 하면서 방에 들어가려던 순간 익스가 나온 것이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이건 대상이다’ 생각했고 나와 같이 야자를 째고 집에서 티비를 보는 친구들에게 80자를 꾹꾹 채워 ‘대박대박대박’ 문자를 보냈었다.
몇 개월이 흘러 진짜 대학생이 된 나는 새터에서 예쁘장한 여자 동기들이 인사대신 이 노래를 앞다퉈 부르는 걸 보았다. 그게 낯간지러웠지만 부러웠던 나는 다른 동기 아이들과 3000원 짜리 노래방에서 떡튀순을 먹으며 ‘안녕하세요~!’를 소리 질렀다. 사실 이 노래는 취업이 잘 안 풀리던 학생이 면접을 망치고 한탄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는데, 우리의 새내기 시절은 취업도 직장도 월급도 상관없는 딴 세상 이었기에 그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지금은 대학가요제가 뭔지도 모를 20학번이 학교에서 동기들도 못 만난 채 2학기를 맞이하는 시대지만, 그땐 그냥 생각이 없었다.
내가 감복한 익스 영상 이후 알고리즘 선생은 주구장창 대학가요제 영상을 나에게 추천했다. 익스가 데뷔한 2005년에서 20년을 거슬러 1985년도 높은음자리의 '저 바다에누워'라는 곡도 그 중 하나였다. "물결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물결처럼 흘러만 간다~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물살의 깊은 속은 항구는 알까~" 대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촌스러운 용모의 두 남녀가 힘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가사를 헤아려본다. 배를 뒤집어 깐 물새가 하늘을 보며 유유자적 하는 모습. 낭만이 있다. 그 밑에 달린 수십 개의 댓글에서 그들의 근황을 안다. 대상을 받은 이들은 동거 중이었는데 노래의 성공 후 헤어졌기 때문에 다시는 이 화음을 듣지 못한다는 그런 내용. 그 시대에 동거라니, 힙하다! 다시 보니 짙게 배인 눈 화장을 한 여학생과 시티보이 같은 펑퍼짐한 남방을 입은 남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게 1885년의 힙이었던거야. 아주 그냥 힙이 터지는 듀엣이었던게야!
똑똑한 알고리즘 선생은 추천 영상의 클라이맥스를 알리듯 대학가요제 레전드 무대를 소개한다. 안보고는 못 배기겠지? 클릭하고 싶지? 하며 나를 약올리듯 몇 번이나 영상을 올린다. 1988년도 대학가요제. 여자 엠씨가 “여자친구 있을까요?” 물으니 “절대로 없죠?”라며 1도 긴장하지 않고 대답하는 앳된 얼굴의 서강대생 신해철. 신디사이저 전주만으로 내 궁디를 들썩이게 만드는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가 그대 곁에 있겠어요~" 졸린 눈을 비비며 그가 디제이로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을 새벽 2시를 기다리던 고스 키즈는 그가 떠나고 수년이 지나서도 새벽 2시에 잠을 안자고 그 전설의 시작을 보며 물개박수를 친다.
뉴스에선 연일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했다며 호들갑을 떠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알고리즘 선생은 3억 회가 넘게 재생된 이 영상을 나에게 추천하지 않는다.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엔 싸이월드 시절 노래만 가득한 나를, 제철 노래는 제껴두고 맨날 듣는 노래만 반복하는 나를, 이 똑똑한 알고리즘 선생은 진짜로 꿰뚫는 것일까. 소오름! 어제 밤에는 이상은의 '담다디'가 추천 영상에 떠있었다. 이제 대학가요제에서 강변가요제로 넘어가는 순간인가.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 담 담다리 다담 담다리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