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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Sep 19. 2020

전업주부 엄마가 돈을 벌어왔다

일평생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딱 한 번 일을 했던 적이 있다. 아, 전업주부로서의 노동은 30년 넘게 무월급, 무연차, 무보너스 ‘3無’ 상태로 하고 있지. 그럼 어딜가서 돈을 벌어왔던 적이 딱 한 번이라고 하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엄마는 선을 봐서 결혼했다. 주선자는 사촌언니와 그의 친구. 언니의 친구는 본인의 동생을 소개했다. 그 남자가 바로 아빠다. 선을 보면 응당 결혼해야 된다고 생각한 엄마는 별 장고 없이 짝을 골랐다고 했다. 왜 그랬어 27살의 엄마아아아아!!!! 결혼 상대는 그렇게 고르는 것이 아니여어어어어!!!!!!!     


흘러가는 대로  결혼은 흘러가는 대로 수월하진 않았다. 그럴 만도  것이 공무원이었던 아빠가 수줍게 내민 노란 월급봉투  금액이 수줍어도 너무 수줍었다. 엄마는 생각했다.  양장 원피스   값도  되는  돈으로 어떻게  사고 고기 사고 분유 사지. 그리고  생각했다. 주선자인 사촌언니와 이젠 시누가  언니 친구를. 역시 주선은 잘해야 술이 석잔, 못하면 뺨이 석대인데 엄마는 평생을 사촌언니와 시누의 싸대기를 마음속으로 후리며 사는 것이다.      


그래도 애가 두 명일 때까지는 못 입고 못 먹으며 그럭저럭 살았다. 그런데 결혼 10년차에 막둥이가 들어섰다. 밥 달라며 입 벌리고 있는 자식 새끼가 세 명으로 늘었으니 외벌이로는 택도 없었다. 엄마는 도저히 생활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됐으리라. 그렇게 엄마는 막둥이가 유치원에 갈 때 즈음, ‘아모레 카운슬러’가 됐다. 동네 아줌마들에게 화장품을 파는 방판 아줌마가 된 것이다.      


누구에게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 부탁을 할 일도 없이 살아온 엄마가 어떻게 화장품 방판을 한다는 것인지 초등학생인 나로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1을 받으면 2를 주고, 다시 3을 받으면 아예 6을 줘버리며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영업을, 장사를 한단 말인가. 그냥 예전처럼 학교 다녀오면 떡볶이 해주고, 우리 목욕 시켜주고 그러면 좋을 텐데. 아 피아노 10번 치는지 안치는지 확인 안 하는 건 좋았다.     


처음 시작은 좋았다. 화장품 방판은 도매가로 들고 온 화장품을 정가에 팔면서 수익이 남는 구조였다. 온 동네 아줌마들이 우리집으로 몰려들었다. 직업의 이름과 달리 엄마가 다른 가정을 방문하지 않고 아줌마들이 우리집으로 오는 것이 엄마는 더 수월했다. 애들을 챙기면서 돈도 벌 수 있었으니까. 한 번씩 사무실도 나갔다. 소디엄마, 소디엄마 소리만 듣다가 희정 카운슬러님 소리를 듣는 것도 꽤 근사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백화점에서도, 상점가에서도 똑같은 화장품을 파는데 왜 동네 아줌마들은 엄마에게 화장품을 살까. 비결은 샘플이었다.


엄마는 화장품을 사면 서비스로 주는 샘플을 말 그대로 ‘퍼’줬다. 고객에겐 서비스지만 엄마는 사무실에서 그걸 돈 주고 사왔다. 엄마는 아줌마들이 비닐에 담긴 샘플보다 미니어처에 담긴 샘플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닐 샘플은 보기에도 서비스 같고 쓰기에도 불편했다. 대신 미니어처 샘플은 본품과 똑같이 생긴 작은 용기에 보기 좋게 담겨있었다. 특히 스킨+로션+앰플+크림을 4종으로 묶어 박스에 예쁘게 포장된 미니어처 세트 샘플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 샘플 중엔 가장 비쌌지만 엄마는 그걸 대량으로 구매 해 동네 아줌마들에게 마구마구 퍼줬다.


그렇게 엄마가 화장품을 계속 잘 팔아서 이달의 영업왕도 되고 올해의 카운슬러도 되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2년이 채 안 돼 방판 일을 그만뒀다. 일을 시작할 때엔 동네 아줌마들도 팔아주고 지인들도 팔아주고 하니까 잘됐지만 이 비싼 화장품을 매달 사 쓰기엔 그들도 곤란했으리라. 또 엄마는 본인을 믿고 사주는 그들이 고마워 화장품 정가에서 3000원, 4000원 싸게 주고 또 샘플은 이따시만큼 퍼주고, 그럼 남는 게 없고, 결국 아모레 퍼시픽만 배를 불리게 되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된 것이다.      


사실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은 방판 일은 아니었겠지. 삼남매를 키우면서 살림엔 방해가 안 되는 것들을 찾으니 방판 일 밖에 남지 않았겠지. 우리 삼남매가 없었다면 엄마는 지금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어느 유수의 기업에서 유리천장을 뚫고 부장님 소리 들으며 멋진 전문직 여성으로 살고 있지는 않을까. 27살의 엄마에게 소리친다. 희정아!!! 도망쳐!!! 결혼하지마!!!!!!!!!!!! 그럼 아빠는 어떡하냐고? 아몰랑. 역시 인생,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그 뒤로 엄마는 설화수만 쓴다. 역시 아모레 퍼시픽 배만 불린다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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