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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Sep 28. 2020

라면, 널 너무 사랑해

라면. 너무 맛있지. 환장하지. 군침이 싹~ 돌지. 매일 먹고 살라해도 살 수 있지. 사실 매일까진 아니고 주 3회 먹고 살라하면 살 수 있지. 그러니까 하루 걸러 한 끼는 거뜬하지. 질리지가 않지. 물리지도 않지. 지겨울리 없지. 과한거 아니냐고 내게 묻지.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학창시절, 엄마는 라면을 못 먹게 했지. 왜지. 나쁜 음식이라고 생각해서였지. 영양가도 없다고 했지. 본인이 한 맛있는 집밥이 있는데 왜 라면을 먹으려 하냐고 했지. 라면은 우리집에서 전쟁이 나야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이었지.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집에서 라면 먹을 일은 없었지. 엄마는 단호했지. 라면을 주지 않는 엄마. 좋은 엄마지. 자식의 건강을 생각해서 그런거니까. 근데 난 그때부터 삐뚤어졌지. 거 좋은 말로 할 때 라면 내놓으시죠. 그렇지 않으면 밖으로 나도는 수가 있어요 어머니.      


결핍은 무서운 법이지. 생각이 매몰되고 부족함만 갈구하게 되지. 집에선 못 먹는 라면. 난 호시탐탐 라면 먹을 틈만 노렸지. 친구집에만 가면 말했지. 라면 있나? 나 라면 끓여줘. 중1 첫 남자친구에게도 물었지. 라면 먹으러 갈래? 아, 라면 먹고 갈래? 랑은 결이 다르지. 남친은 나에게 되물었지. 라면은 집에서 먹으면 되지 않아? 아니야 넌 날 몰라 우리 헤어져. 아니다, 헤어지면 김밥천국 2000원짜리 라면을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지. 야 잠깐만. 일단 우리 라면 먹으면서 우리의 관계를 좀 생각해보자.      


몰래 먹는 라면은 더 짜릿하지. 아예 집을 나가버리자. 자취를 하는 거야. 예상보다 독립의 시기는 빨리 왔지. 다른 도시에서 취직을 했지. 대한독립만세. 라면독립만만세. 이제 난 엄마가 없는 집에서 몰래 라면을 끓여 먹고 완전 범죄를 위해 창문을 열어 냄새를 빼고 봉다리를 꾹꾹 접어 꼭꼭 숨기는 짓을 하지 않아도 되지. 당당히 물을 올려라. 대차게 냄새를 풍겨라. 먹고 난 냄비는 개수대에 팽개쳐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지어니. 우하하하.      


자취방으로 이사한 첫날, 엄마는 바리바리 반찬을 해 조그마한 냉장고를 꽉꽉 채웠지. 혼자서 어떻게 살겠냐는 엄마를 등 떠밀어 보낸 뒤 나만의 팬트리를 꾸몄지. 진라면 참깨라면 짜빠게티 비빔면 오징어짬뽕 스낵면. 일렬종대 각 맞춰 찬장을 꽉꽉 채웠지. 왔노라, 보았노라, 끓였노라. 아 신라면은 제외지. 안성탕면도 내 스타일은 아니지. 개취이니 존중해주시죠.      


물 양은 밥공기 꽉 차게. 후레이크는 넣지 않지. 100도씨 못 기둘리. 기포 올라오자마자 면을 넣어버리지. 뿌수면 화낸다? 스프는 면 다음이지. 뚜껑은 안 덮는다. 라면 끓는 순간 바라보는거 못 잃어. 계란 안 넣는다. 파는 넣는다. 퍼진 것 보다는 아예 배 안에서 익히는 게 낫지. 암. 꼬들거리는 면발을 한 젓가락 집어 테이스팅. 완벽해.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내 사랑, 라면! 


진라면은 진리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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