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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Nov 17. 2020

아들의 전화는 소듕하니까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7층에 다다르면, 난 옥련씨가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는지 알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못 들을수도 있는 TV소리가 나에게는 쩌렁쩌렁 들린다. 막장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고래고래 소리치는 소리, 뉴스에서 방송기자가 스크립트를 읽는 소리, 생생정보통에서 손님이 음식이 맛있다며 엄지를 추켜세우는 소리. 나는 보통사람보다 청각이 예민하고, 옥련씨는 보통사람보다 청각이 둔하다. 그리고 우리는 일주일 중 4일 정도를 함께 지낸다.


옥련씨가 보청기를 맞춘지는 이미 수년이 넘었다. 보청기 가게 사장은 옥련씨의 귀를 보고 '함몰 귓구멍'이라고 했다. 귓구멍이 구불구불한 동굴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안들린다고. 귓구멍도 사람마다 다 다른지 그때 알았다. 여하튼 기백만원이나 하는 보청기를 끼면 잘 들릴거라 믿었는데, 옥련씨는 보청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이팟을 귓구멍에 깊숙히 넣어 하루종일 있는다 생각해보니 옥련씨가 적응을 못할만도했다. 그러는사이 옥련씨네 TV음량은 점점 높아만갔다. 


옥련씨 옆에서 저녁 드라마를 함께 보고 있자니 멀쩡한 내 고막마저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야한다면 잘 들리는 사람보다는 잘 안들리는 사람에게 맞춰야 할 것 아닌가. 내 귀엔 엄청난 소리도 옥련씨의 귀엔 앵앵거리는 소리로만 들린다니 하는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 걸려온 이모들의 전화. TV소리에 묻혀 딸들의 목소리가 안들리니 옥련씨는 연신 어? 어? 뭐라고? 좀 크게 이야기 해보래이 만 되풀이한다. TV를 끄면 되는데, 그러진 않는다. 드라마 장면도 놓칠 수 없고, 통화도 놓칠수 없어서일까. 


그런데 외삼촌이 전화가 오니 상황이 달라졌다. 휴대폰 화면에서 작은 아들의 얼굴을 확인한 옥련씨는 재빠르게 리모콘을 잡아 전원 버튼을 누른다. 엇 옥련씨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인데 이거. 그러고는 아무일도 없다는듯 아들의 전화를 받는다. 어, 그래. 별일 없제. 밥은 묵었나. 코로나 조심하고. 항시 조심해야 한다. 맨날 옆에서 듣지만 맨날 내용이 똑같다. 뭐 안부전화가 으레 그렇기는 한데, 이전의 딸들 통화와는 너무 다르다. 아들의 목소리를 방해하는 그 무엇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기개로 TV를 끄는 옥련씨의 모습. 낯설다, 옥련씨.


엄마에게 카톡을 보낸다. 엄마, 할머니 외삼촌 전화올때만 TV 끄시는거 아나. 연이어 걸려온 엄마의 전화. 옥련씨는 TV를 끄지 않는다. 엄마의 목소리가 섞인다. 옥련씨에게 물었다. 할머니. 왜 외삼촌 전화올때만 TV 꺼? 아니 내가? 그런적 없는데? 아예 인식하지도 못했다는 듯이 옥련씨는 답한다. 아들이 그리 좋을까. 아들은 왜 좋을까. 아들은 어떤 존재일까. 아들은 무엇일까. 다시 화면에 집중하는 옥련씨를 보며 나혼자 있지도 않은 아들에 대해 상상해본다. 


엄마와 나눈 카톡 ㅋㅋ 실행력 빠른 우리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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