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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Jan 04. 2021

옥련이 동생 재순이

옥련씨의 집에 여동생 재순씨가 놀러 왔다. 코로나 때문에 1년간 못 만나다가 아들의 차에 실려 함안에서 부산까지 왔다. 옥련씨는 나의 외할머니니까 재순씨는 나의 이모할머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 '할머니'와 제2의 엄마 롤을 맡은 '이모'가 조합된 '이모할머니'. 어찌 반갑지 아니한가. 


88살의 옥련씨와 85살의 재순씨는 그동안 매일 전화했다. 했다 하면 1시간이다. 응 그래. 들어가자. 못한 이야기는 다음에 만나서 하고. 그녀들이 전화통 붙잡고 있던 시간을 헤아려보면 못 한 이야기는 없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둘은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첫째인 옥련씨는 차분하고 소심한 성격인데 둘째인 재순씨는 둘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적극적이고 대범하다. 옥련씨는 어딜 가도 나이보다 적게 보는 동안이고 재순씨는 어딜 가도 나이보다 많게 보는 노안이다. 둘이 같이 다니면 재순씨를 언니로 보는 사람도 많았더랬다. 정반대의 외모와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시스터즈다. 


그런 성정이 삶에 반영된 건지, 아니면 그런 삶 때문에 성정이 발현된 건진 모르겠지만 재순씨는 옥련씨에 비해 고난한 세월을 살았다. 열여덟 재순씨의 사촌동생 희야가 재순씨보다 먼저 시집을 가던 날. 재순의 아버지는 재순에게 말했다. "동생이 먼저 시집을 가면 새이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콱 우물에 빠져 죽으삐지. 뭐한다고 뒷방에서 혼자 울고있노" 어렸을 때부터 재순을 못났다고 구박했던 아버지였다. 아니, 할머니! 시집 못 간 게 죽을 일이에요? 분기탱천하며 열을 내뿜는 내게 재순씨는 답했다. 그래도 하늘 같은 아버지 말씀이라 대꾸도 못하고 울기만 했네. 그 쪼깨난 거 한테 우찌 그런 악담을 퍼부으셨을꼬. 옆에서 듣고 있던 옥련씨는 거의 울듯했다. 내가 먼저 집을 나와서 몰랐네. 아이고. 우리 아버지 참 잘못했네. 잘못했어.


재순씨는 이듬해인 열아홉에 시집갔다. 열아홉이라니. 이게 늦은 나이라니. 앳된 재순씨는 신혼여행도 없이 남편이라 부르는 남자의 집에 들어가 식모듀스101를 찍었다. 시부모의 밥을 차리고 냇가에 가서 빨래를 하고 마루를 닦았다. 그렇게 사흘째되던날. 아궁이에서 불을 때던 재순씨 곁으로 시모가 다가왔다. 첫째 며느리가 마뜩잖았던 시모는 둘째 며느리라도 초장부터 잡아야 한다며 날이 서있었다.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다다다다 하는 시모의 말을 싹둑 자른 재순씨. "어머님, 숭늉에 데었다고 냉수에도 데는가요" 아버지의 악담은 참았다. 낳아주고 길러줬으니. 하지만 만난 지 사흘 된 남편의 어머니의 이유 없는 악담은 참지않긔. 와, 할머니! 2010년을 사는 나도 우리 어머님께는 못 할 말을 할머니가 하셨네! 만다고 참을끼고. 재순씨는 당당했다.


새댁 3일 차에도 할 말은 하고 살았던 재순씨는 이후에도 할 말은 하고 살았지만, 어째 할 말을 해도 눈물이 났다 했다. 돈이 없어 아들에게 육성회비를 못줄 때 "미안하다"고 했고, 남편이 저 세상으로 너무 빨리 갔을 때 수군대는 사람들을 보며 "내 앞에서 말하라"고 했고, 깡촌에서 홀로 살지만 사회복지사의 도움은 거절하며 "아직은 괜찮다"고 했다. 날도 추운 데 가지 말고 자기랑 있자는 언니 옥련씨를 뿌리치고 재순씨는 닷새만에 함안으로 돌아갔다. 새이야. 응 내다. 집에 잘 왔다. 안 왔으면 큰일 날뻔했다. 고구마 박스 들여놓은 거에 쥐새끼들이 잔치를 벌렸다. 수도관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함안이 곱절은 추운 거 같다. 응 그래도 내 집이 제일 편하지. 새이야 닷새 잘 놀다왔데이. 건강 챙기재이. 벌써 나는 재순씨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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