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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Jan 24. 2021

뽀로로 니가 왜 거기서나와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안방 문을 살짝 연다. 오늘도 나의 외할머니 옥련씨는 침대에 걸터앉아 부처님을 부르고 있다. "할머니, 어제는 잠 좀 주무셨나" 한 달 넘게 내가 드리는 문안인사. 우리 옥련씨가 아프다.

옥련씨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작년 2월 옥련씨의 유일한 놀이터인 아파트 경로당이 문을 닫은 게 그 시작이었을까. 꽃피는 5월엔 자식 손자 다 모인 어버이날에 엉덩방아를 찧어 엉치뼈에 금이 갔다. 좀 나아지나 했더니만 8월엔 듣도 보도 못한 봉와직염이란 병에 걸려 코시국에 입원을 하고. 또 나아지나 싶더니만 10월부터 지금까지 극심한 두통이 옥련씨를 감싸는 중이다.

옥련씨는 평소 엥간하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옥련씨가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면 진짜 비상상황이다. 옥련씨 입에서 먼저 대학병원 이야기가 나왔다. 어쩌지. 보통 일이 아닌게야!! 그런데 막상 까고보니 모두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옥련씨의 머릿속은 깨끗했다. mri를 보던 신경과 의사는 "일자목이라 어쩔 수 없다"며 잘 주물러드리면 나을 거라 했다. 그런데 그 주무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형외과 도수치료는 70세가 넘는 환자는 안 해준다 했다. 몇 군데를 찾아가도 똑같았다. 옥련씨 말대로 나이 먹어서 좋은 게 정말 하나도 없다.

겨우겨우 옥련씨를 받아주는 정형외과를 찾았다. 옥련씨를 진찰하는 의사도 옥련씨처럼 나이가 많았다. 옥련씨는 동생뻘로 보이는 의사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일어서면 다리가 아프고, 앉으면 허리가 아프고,  누우면 머리가 아파요. 우째야됩니꼬" 누군가를 보살피기보다는 보살핌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의사가 답했다. "우짜기는. 애먼 데 사진을 찍으싰네. 머리를 만다 찍었어요. 허리랑 목을 찍지. 주사 맞으면 낫는 건 아니고 좀 개안아요" 걱정이 많은 옥련씨는 다시 물었다. "그거 스테로이든가 그거 아입니꼬. 아들이 그거 맞으면 안된다카든디" "아이고, 할매. 맞아도 안 죽어요" "내사 마 죽는 거는 상관없는데요. 빨리 죽는 거 있음 맞고 저세상 가고 싶은데요. 부작용 있어서 자슥들 고생시킬까바예. 알았습니더" 와. 옥련씨. 죽는 건 걱정 안돼도 자식은 걱정하는 크라스. 정말 이럴때마다 난 부모의 위대함을 느낀다. 인정.


초진에 주사, 물리치료까지 받으니 병원비가 12만 원 정도 나왔다. 옥련씨는 현금을 꺼냈다가 카드를 꺼내며 머신 일이고를 연발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머신 일이고는 이어진다. 5분 다다다다 하는 체외충격파가 왜 이리 비싸냐느니, 이제 안 가야겠다느니 하며 내 속을 긁는다. 옥련씨는 돈이 많다. 젊어서 뼈가 부서져라 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늙어서 뼈가 진짜 부서질 정도로 아픈데도 돈 걱정을 한다. 자식에게, 손자 손녀에게는 펑펑 쓰면서. 왜 본인 몸 고치는 병원비는 아까워하냔 말이다. 참으면 되는데 결국 소리친다. "할머니, 진짜 돈 없어서 치료 못 받으면 얼마나 서럽겠냐고! 좀 제발 좀 쓰고 사소 본인한테!!" 나의 기세에 눌린 건지, 나의 싸가지에 눌린 건지. 옥련씨는 아이고 하며 침대에 몸을 뉘인다. "소디야 여기 파스 좀 발라봐라" 옥련씨는 허리도 쭈굴쭈굴하다. 그 쭈굴한 살결 위 귀엽게 웃고 있는 뽀로로 스티커 밴드. 병원에서 간호사가 주사 맞고 붙여줬나보다. 귀여운 뽀로로를 보니 후회가 밀려온다. 괜히 소리쳤어. 그냥 좋게 말하면 되는데. 이 뽀로로처럼 웃으면 되는데. 오늘도 아무 도움 안 되는 민폐 손녀는 선 고함 후 후회다.



뽀로로 기여워 기여운게 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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