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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Feb 02. 2021

할머니의 편식

오랜만에 만난 나의 외할머니 옥련씨가 어딘가 이상하다. 뭔가 허전하다. 어느 하나가 비는 것 같어. 할머니, 뭐가 바뀌셨어? 물어봐도 대답 없는 옥련씨. 뭐지. 뭘까. 하는데 이내 눈에 들어오는 옥련씨의 오물오물 입. 옥련씨의 윗니가 빠졌다. 아니, 윗니 마저 빠졌다.

옥련씨의 이가 빠지기 시작한 건 10년도 넘었다. 대신 옥련씨는 가짜 이를 얻었다. 틀니였다. 빠진 이를 쏙쏙 메꿔 빈 부분을 채웠다. 그런데 그 가짜 이도 영원한 건 아니었다. 잇몸이 헐고 뿌리가 약해지며 틀니는 덜그럭거렸다. 치아 교정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차라리 먹는 걸 포기할 만큼 불편한 그 느낌을. 교정은 1년 혹은 2년이면 끝나지만 틀니는 그 불편함에 리미트가 없다. 결국 옥련씨는 매일 밤 칫솔로 벅벅 닦던 틀니마저 벗어던졌다.

가짜 이 마저 없어지니 몇 개 남지 않은 진짜 이가 사달이 났다. 아랫니부터 하나씩 하나씩 없어졌다. 불고기를 먹다가 툭, 김치찌개를 먹다가 툭. 뿌리째 뽑히지도 못하고 그냥 부서진 아랫니는 부드러운 무나물을 먹다가도 툭 나왔다. 대중이 없었다.

그래도 옥련씨는 잘 드셨다. 더 이상 새로운 경험도, 사람도, 일도 일어나지 않을 옥련씨의 인생에 어찌 보면 새로운 것은 음식뿐이었기에 더 잘 드셨을지도 모른다. 옥련씨는 피자헛 골드 리치 슈퍼 슈프림 피자를 좋아한다. 맥도날드에선 달달한 불고기 버거 하나와 후렌치 프라이 반통이 양에 딱 맞다고 했다. 파스타는 토마토 보단 크림 쪽이다. 마카롱도, 까눌레도. 그 쪼깨난기 삼천 원이라고? 하면서도 냠냠 잘 드신다. 아랫니들만 빠졌을 땐 가능했던 메뉴들이다.

그런데 윗니까지 빠지면서 옥련씨는 이제 제대로 뭘 씹을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씹을 수 없는 삶엔 제약이 많다. 고기는 언감생심 콩나물 한가닥도 넘기기 어렵다. 그저 부드럽고 뭉뜽그러진, 갈리거나 다져진 음식만 먹을 수 있다. 선호하는 음식만 먹는 '편식'이 아니라 치아 상태에 맞춰 편하게 먹어야만 하는 '강제된 편식'이다.

할머니. 근데 뭐 드시다가 윗니 빠졌어? 누워있는 옥련씨 옆에서 내가 물었다. 아니 뭘 먹다 빠진 게 아니라 그냥 식탁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빠졌어. 아랫니가 빠질 때도 서운했는데 윗니가 빠지니 눈물이 콱 나는기라. 이제 이빨마저 끝났다는 생각에 많이 서운하데. 어여 가야지. 어여 가야 돼야. 오늘도 옥련씨는 자의로는 이루지 못할 소망만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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