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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Nov 21. 2020

내 옆자리 동료의 정체

5년 전 이 회사에 경력직으로 이직했다. 첫 직장에서 첫 출근하던 날보다 경력직으로 첫 출근하는 날이 더 떨렸다. 당시 나는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있었고, 그걸 이력서에 적었고, 그런데 뽑혔고, 그랬기에 많은 이들의 관심 대상이 됐다. 긴장됐고 초조했다. 어떻게 일을 해야 이 콧대높은 성골들을 제치고 한 자리를 차지하는 육두품이 될 수 있을까. 니가 얼마나 잘하는지 한 번 보자 팔짱끼고 나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마 이마이 잘하니까 뽑혔겠지 뻗대고 싶었다.


이 업계는 경력직 이직을 하면 이전 회사의 경력을 깎는다. 너 작은 회사에서 큰 회사 왔지? 그러니까 그 경력이 이 경력과 같겠니? 그러니 감가상각이 필요하겠지? 하는 어이없는 논리다. 이전 회사에서도 경력직으로 이직한 선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선배들은 굉장히 불쾌해했다. 필요해서, 잘해서 골라 뽑았으면서 그러기 위해 쌓은 경험치는 인정해주지 않는 부당함. 그래서 자기보다 연차 낮은 직원에게도 선배라는 호칭을 못 듣는 억울함. 그때의 나는 성골이었기때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 육두품 선배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기수 문화가 확실한 곳에 입사한 기수 없는 경력직. 다른 경력직 선배와 "선배는 청기, 나는 백기"하며 자조했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나 또한 나와 같은 해에 입사한 이 회사의 성골 3명에게 선배라고 부르기 싫었다. 사실 부서가 달라 부딪힐 일도 없고 해서 그냥 땡땡씨라고 부르면 그만이었다.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번 씩 묻기도 했지만 당사자와 엮일 일은 없었으니 괜찮았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생겼다. 인사발령을 통해 그 3명 중 한 명이 우리 부서, 내 옆자리로 와버렸다. 오마이갓.


또래인건 알았는데 정확한 나이는 몰랐다. 그녀가 내 옆자리로 온 첫 날, 쑥쑥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 "소디씨랑 동갑이에요" 으잉? 내 나이를 알고 있었네? 오 그렇군. 잘 지내야겠다. 동갑인데 말 편하게 하셔도 되어요 라고 나름 배려 아니 배려를 했는데 다시 돌아온 대답. "아 이렇게 훅 들어오시면 좀... 저는 말 높이는게 편합니다" 아 내가 앞서갔구나. 실례였네. 근데 선 긋네. 오키. 알았다. 나도 말 높이는기 편하다!!!


땡땡씨는 새로운 부서에 적응하며 버벅대면서도 무표정하고 침착했다. 옆자리니까 간식을 나눠먹는 정도의 교류가 있었다. 사실 말수가 적은 것 그런건 중요치않다. 회사에선 일만 잘하면 된다. 뭐 나이가 같다고 다 친구가 되는건 아니다. 그렇게 3주가 흘렀다. 주말을 앞둔 퇴근시간이 됐다. 부장들의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간, 땡땡씨가 자취를 한다길래 이것 저것 말을 섞다보니 본가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본가가 멀지 않았다. 뿅뿅동. 그 동네에 살았던 나와 동갑의 여성. 분명히 내가 나온 고등학교를 나올수밖에 없다. "땡땡씨, 근데 혹시 고등학교 어디 나왔어요?" "흐흐여고요" "땡땡씨 저랑 동갑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저도 흐흐여고 나왔어요! 어머나 세상에" "아 그러셨어요?" "문과 4개 반 밖에 없었는데.. 땡땡씨 혹시 저 알았어요?" "아니요" "너무 신기하다!!!!! 진짜 너무너무 신기한데요?? 아니 근데 나만 신기해요?"


너무 놀란 나와는 달리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하고 침착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을 회사 옆자리에서 만나는건 쉽지 않은 일 같은데. 그리고 서로를 아예 몰랐다는것도 진짜 쉽지 않은 일인데. 나는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물으니 다 그녀를 알고 있었다. 나와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에 친구들도 깜짝 놀랬다. 이 사실에 놀라지 않은 사람은 땡땡씨 뿐이었다. 왜 놀라지 않았을까, 나를 이미 알고 있었을까, 나 고등학교때 나쁜 짓도 안하고 그냥 쪼래비처럼 카트라이더나 하던, 쉬는시간에 체육복 입고 이효리 애니모션 웃긴 춤 추던 그냥 똥꼬발랄 여고생이었는데.  


집에 와 남편한테 이야기를 하니 나보고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며 땡땡씨는 이미 나를 알고 있었고, 혹시나 그런걸로 엮일까봐 나에게 미리 선을 쳤고, 이 사실이 알려졌어도 별로 감흥이 없었기 때문에 동요도 없었던 것이라며 뭐한다고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어하는 사람에게 호들갑을 떨었냐고 타박했다. 아, 그래서였나. 내가 반갑다 친구야 하며 얼싸안고 춤출까봐 벽을 쳤나. 오래전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던 동기간이었던 사람도 친구는 될 수 없는 그런 곳이 회사이구나. 그런 곳에서 나는 밥을 벌어먹고 사는 것이구나. 그렇게 또 다짐을 한다. 일만 열심히 하자. 다른건 필요가 없다. 내 몫만 적당히 해내자. 욕 안먹을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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