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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Dec 01. 2020

오마카세를 처음 먹은 날

그 날을 기억한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가장 친한 친구와 일본 오사카로 자유여행을 떠났다. 난 자유여행이라고 해서 정말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인 줄 알았다. 부모님 없이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으니까.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무지랭이였다. 친구의 구박을 듣고 나서야 여행사를 통해 비행기와 숙소를 잡았다. 그때는 와이페이모어도 없었고 에어비앤비도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몰랐다. 면세점에서 뭘 사야 할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면 절대로 다니지 않을 코스들로 슉슉 3박4일을 다녔다. 그러던 중 만났다. 일본의 초밥. 먹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져서 찍힌 사진이 싸이월드에 남아있다. 아, 일본 사람들은 이런걸 먹고 사는구나. 아, 초밥이라는 것은 이런거구나. 그런데 초밥이 뭐지?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학교 앞을 보니 참 초밥집이 많았다. 회전초밥집도 있고, 로바다야끼도 있고, 일식집을 흉내낸 분식집도 있었다. 일본에서의 맛은 나지 않았으나 그럭저럭 먹고 다녔다. 그게 초밥인 줄 알았으니까.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무지랭이였다. 먹는 데에는 항상 진심이었기 때문에 개중 맛있는 초밥집을 찾아다니긴 했다. 길다란 접시에 광어초밥, 도미초밥, 참치초밥, 계란말이초밥, 조개초밥 등이 놓여있었다. 유부초밥도 초밥이라고 올려져있긴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본에서의 맛은 아니었다.


나만큼이나 먹는 데에 진심인 남자친구를 만났다. 정말 먹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남자친구였다. 어느날 맛있는 초밥집이 있다며 나를 데려갔다. 그런데 1인분에 45000원이라고 했다. 헐. 좀 비싸지 않니? 일단 가보자.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으니까.


부산 장산의 '김철수 스시선수'. 들어서자 마자 직감했다. 여기다. 일본에서 먹었던 분위기가 바로 이거야!!! 테이블이 아닌 일렬로 다찌에 앉아있는 사람들, 셰프가 하나하나씩 쥐어주는 초밥, 그러면서 손님과 교감하는 멋찜. 아 일본뽕에 취하네. 분명 이름이 김철수일 그 셰프님은 이렇게 먹는 걸 '오마카세'라고 알려줬다. 주방장 특선. 주문할 음식을 가게의 주방장에게 일임하는 것이랬다. 그래서 무슨 초밥이 나올지도 모르고 언제까지 나올지도 모른다고. 손님은 맛나게 먹기만 하면 된다고. 친절한 응대와 맛있는 음식. 지금까지 초밥이라 불렀던 모든것들을 배신하는 새로운 '스시'의 등장. 그리고 시작되었다. 남자친구와 나의 스시 탐방이.


전국의 이름난 스시 오마카세란 오마카세는 힘 닿는 데 까지 찾아다녔다. 부산에 있는 오마카세는 거의 다 섭렵했고 제주도, 서울, 일본까지 다녔다. 비싸다고 생각했던 김철수 스시선수의 오마카세는 사실 저렴한 편이라는 것도 그 때 알았다. 생선의 종류에 따라, 업장의 분위기에 따라 가격도 맛도 천차만별이었다. 미친듯이 맛있어서 울면서 먹은 곳도 있고 진짜 돈이 아까워서 먹다 뱉고싶은 곳도 있었다. 그렇게 6년 정도를 다니니 내 입앗에 맞는 집들로 안착했다. 그 사이 들어간 돈은 얼마일지 사실 가늠도 안된다. 역시 뭐든 진심은 통한다. 그게 스시였다는 사실이 좀 웃기긴 하지만.ㅋㅋㅋ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스시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에 오다 생각했다. 나와 첫 자유여행을 떠나 일본의 초밥을 먹었던 내 친구와는 재작년에 다시 오사카로 향했다. 10년 만의 리마인드 오사카 여행(ㅋㅋㅋㅋ)이었다.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그 초밥집에 다시 찾아갔다. 10년동안 때가 묻어서 그런지 그 맛은 안났지만 참 기분이 오묘하면서도 좋았다. 나에게 오마카세를 처음 소개해줬던 내 남자친구와는 결혼했다. 먹는 걸 너무 좋아하는 둘이 만나 호동이 포동이가 됐지만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나를 이렇게 온전하게 이해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매번한다. 초밥과 스시와 친구와 남편.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이 맛있는 음식과 엮였다는 사실이 고맙고 감사하다. 아, 배고프다. 스시 먹어야징 룰루


가장 최근에 먹었던 스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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